첫째, 한심한 주한미군 : 1960년대 초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주둔한 미국 청년이 있었다. 징집영장을 받아든 청년은 간장을 병째 마시며 징병을 피해보려 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한국으로 보내졌다.
상관에 대한 경례는 고사하고 바락바락 대들기 일쑤며, 복장은 늘 불량하다 못해 툭하면 단식투쟁까지 벌이던 '고문관'은 결국 변압기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는 보직으로 발령받는다. 도대체 이 한심한 주한미군은 제대로 인생을 살아갔을까?
둘째, 세계적인 등반가 : 북한산 인수봉에는 취나드길이 있다. 거대한 크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대 난이도는 5.10b에 이른다. 5.10b라면 체계적인 교육과 1~2년 이상의 전문적인 훈련이 있어야 등반이 가능한 암벽 난이도에 해당된다.
더구나 취나드길은 그 길이가 177m에 이르는 곳으로서 난이도에 비해 제법 용기가 필요한 등반루트다. 이 루트를 개척한 사람은 미국인 등반가였다. 전문적인 장비가 거의 없던 시절, 암벽화도 없이 이 길을 한나절 만에 개척하였다. 그는 청년 시절 요세미티에서 가장 모험적인 등반을 주도하며 거벽등반의 새로운 장을 열더니 곧 알프스로 넘어가 빙벽등반의 고수가 되었다. 이 세계적인 클라이머는 누구인가?
셋째, 세계적인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사주 : 파타고니아(Patagonia).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남쪽 지대를 부르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 명칭이기도 하다.
파타고니아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파타고니아의 경영철학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함께 얻는 것이다. 그래서 파타고니아의 상표는 낡을수록 가치가 돋보인다. 일례로 2005년 일본 e-bay에는 파타고니아사의 1980년 재킷이 4000불에 나온 적이 있다. 이런 세계적인 브랜드의 사장은 어떤 사람일까?
넷째, 급진적인 환경운동가 : 이윤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자본주의. 그 심장 미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며 환경운동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사업이라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고, 토착문화를 파괴하고, 없는 이들에게서 빼앗아 있는 이들을 배불리고, 공장폐기물로 지구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과격한 좌파 활동가의 격문 같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다소 극적인 위 4가지 캐릭터는 모두 한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그의 이름은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
또 하나의 역겨운 CEO 자서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이본 취나드의 자서전이자 그의 경영 철학, 환경 철학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운 좋게 성공한 기업의 CEO들이 의례 펴내는 자서전쯤으로 알면 오해다. 대형서점의 진열대에 즐비한 그 많은 경영철학서들이 사실 그들의 성공담을 세련되게 자랑하고 있을 뿐 '철학'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들이나 산으로 쏘다니길 좋아하던 소년 이본 취나드. 엘리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얼뜨기에 불과하던 이본 취나드는 아직도 수학공식을 외우던 시간이 가장 아깝다고 회상한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10대 후반부터 요세미티에서 움막 생활을 하며 암벽등반에 빠져든다.
제대로 된 장비가 없던 시절, 그는 손수 대장장이가 되어 쇠붙이를 녹이고 두들겨 자신이 사용할 암벽등반 장비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때 만들기 시작한 피톤은 당시 암벽 등반가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었고, 결국 '취나드'라는 이름으로 암벽 장비들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그때까진 무슨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형편없었다. 그저 자신이 사용할 장비를 만들면서 서너 개 더 만들어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파는 식이었으니 밥값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위에 목숨을 걸어본 사람이면 안다. 잘못된 장비 하나가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음을. 그래서 허구한 날 요세미티에 살며, 혁신적인 등반방식으로 거벽등반을 시도하던 이본 취나드가 만든 장비들은 많은 등반가들에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본 취나드는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곧 자신의 피톤 제작을 중단한다. 강철로 만들어진 피톤은 너무 단단해 바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사업가이기 전에 등반가였고, 등반가이기 전에 '마땅히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환경운동가였던 것이다.
바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용가능한 등반장비를 고안하고 생산하던 이본 취나드는 '취나드'라는 브랜드로 본격적으로 등반장비를 생산해냈다. 그래봐야 주위의 등반 동료들과 그의 '대장간'을 조금 늘린 격이었다. 뒷마당 대장간에서 시작된 신화는 이후 '취나드'를 거쳐 현재는 전 세계 클라이머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인 '블랙다이아몬드'로 이어진다.
환경 철학이 경영철학을 지배한다
이본 취나드는 아웃도어 의류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후 자신의 혁신적인 등반방식처럼 아웃도어 의류에서도 혁신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가령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석유로 만든 화학섬유가 오히려 면제품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목화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산림을 베어내야하고, 방독면을 써야할 정도의 농약을 뿌려야하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과감하게 파타고니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인 면 의류 생산을 중지하기에 이르렀으며, 전 세계를 수배한 끝에 유기농 목화밭에서 수거한 순면만을 사용하여 제한적으로 면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화학섬유는 당연히 재생 가능한 제품이며, 화학섬유제품은 PET병을 수거하여 재생산한 옷감을 사용한다.
이본 취나드의 환경 철학은 기업의 경영철학을 지배한다. 그는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수준의 성장률을 5%로 설정하였고 그 이상의 성장을 절제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웹사이트에는 항상 당면한 '환경보호를 위한 행동지침(Environmental Activism)'이 게재되어 있다.
단순히 환경이 중요하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나마나한 막연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해야할(What We Do) 행동지침을 제시하고, 또 기업 차원에서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본 취나드의 파타고니아는 총 매출의 1%를 환경운동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이익의 1%가 아니라 매출의 1%이므로 적자가 나도 내야한다. 파타고니아는 여느 대기업처럼 주식회사나 유한회사가 아닌 이본 취나드의 개인 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본 취나드는 사회적, 환경적 책임에 제한을 두는 유한회사나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극한적인 환경파괴를 일삼는 기업을 혐오하므로 자신의 환경 철학, 경영철학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업의 덩치를 키우는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본 취나드는 파타고니아의 환경 철학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제대로 알아보며 살자 ▲자신의 행동부터 정화한다 ▲참회하라 ▲시민 민주주주를 지지한다 ▲다른 기업들을 일깨운다. 그는 1% 기부 캠페인이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서 사업을 경영하는 자의 최소한의 '참회'라고 주장한다.
이 시대 살아하는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할 책
이 책의 원 제목은 'Let my people go surfing'이다. 즉 내 사람들, 직원들을 서핑을 하게 하라는 뜻이다. 그는 파타고니아의 직원들이 파도가 칠 때는 근무를 때려치우고 언제든지 서핑을 할 수 있도록 자유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본사에는 1984년 이미 어린이집을 설립돼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회사의 트레이드마크 음향이 되었다. 이렇다보니 젊은 인재들이 파타고니아를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의 하나로 손꼽는 것은 당연하다. 또 임신과 육아 때문에 숙련된 고급인력이 빠져나가지 않으므로 회사 입장에서도 이익이다.
이본 취나드의 주장과 실제 그의 경영경험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여성들의 출산율 저하 등 재앙에 가까운 사회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이란 얼마나 재미없을까? 그건 교과서 아니야?
그러나 전문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와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모든 자연주의자들, 전 지구적인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환경운동가들과 그 동조자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들과 기업 경영자로서 성공하고 싶은 청년들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본 취나드 저, 서지원 역, 화산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