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유명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공연과 국내 뮤지션들의 수준 높은 공연이 자주 결정되고 있다. 그 중 몇몇 공연은 평생 다시 볼 기회가 얼마나 될까 싶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지방에 살고 있으면 마음만 간절할 뿐 여의치가 않다. 다른 이유로도 차마 공연을 보러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직접 보는 공연의 맛은 못 느끼지만 방송에서라도 그들의 '라이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워낙 유명한 아티스트니까 방송3사의 음악 라이브 프로그램에는 나오지 않을까?
헛된 기대는 애초에 가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비주류' 음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배려마저 실종된 것이 우리나라 방송 음악프로그램의 현실이다. 소비적이고 감각적인 음악만이 득세하고 있다.
과거에는 MBC <수요예술무대>가 일본의 퓨전재즈 그룹 티스퀘어(T-square)의 공연에 몇 시간을 할애하던 때도 있었지만….
보이밴드, 섹시여가수... 천편일률 음악 프로그램
현재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이른바 '음악 프로그램'은 그 숫자가 많지만, 질적인 속내를 들여다보면 외려 단순하게 나뉘어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우선, 과거 순위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여 이제는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10대 위주의 가요 프로그램. 다른 하나는 <이문세 쇼> <수요예술무대>를 기반으로 한 심야 라이브 음악프로그램. 마지막으로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제3세계 음악이나 재즈, 클래식 그리고 그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등이다.
각각 명확한 선을 그으며 제각각 방송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저마다 겹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커다란 맥락을 짚어보면 세대별, 계층별, 장르별로 이질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처음 언급했던 가요 프로그램은 특히 그렇다. 일본 쟈니즈 계열을 그대로 데려온 듯한 보이밴드들, 가족끼리는 확실히 보기 민망한 섹시 콘셉트의 여가수들. 그리고 언제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는 가수들이 마치 일렬로 나열되어 차례대로 등장하는 천편일률적 진행방식이 그러한 역할을 가중시킨다.
이들 프로그램은 인디계열 뮤지션들과 해외 팝 음악. 그리고 음악적 다양함은 고사하고 20대들이 찾는 음악들조차 홀대함으로써, 그 매력과 재미 그리고 그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의 경우 얼마 전 아쉬움 속에 종영한 MBC <김동률의 포유>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는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배철수의 콘서트 7080>, 그리고 최근 SBS <신동엽 이수영의 음악공간>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심야시간에 방영되고 10대를 위한 가요 프로그램들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음악 선곡과 진행방식으로 20대 이상의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들도 어느 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깊은 고찰이나 탐색과, 비주류 음악장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빠져 있다.
특히나 최근에 와서는 음악 외적인 게스트들의 잦은 출현과 마치 토크쇼를 연상하는 진행 방식, 그리고 프로그램 자체가 기존 가수들의 새로운 음반과 콘서트 홍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측면도 없지 않기에 그러한 아쉬움은 더욱 크다.
끝으로 국내에서 대중음악과 해외 팝 음악을 제외한 '제3부분'의 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인데, 사실 이들은 시청자들에 인지도나 그 선호 크기를 가늠해보는 수준을 떠나서 기존에 마니아층 외에는 주목을 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출발한다.
그래서 그런지 KBS <클래식 오디세이> 외에는 당장 떠오르는 프로그램이 공중파는커녕 지상파에서조차 없다. 심지어 재즈와 같은 몇몇 장르는 이젠 라디오에서조차 듣기 어려워졌다.
음악이라는 거대한 소리의 범주 안에 자신이 원하는 소리와 더불어 그들의 연주를 여타의 대중음악이나 팝 음악처럼 TV로 편안하게 시청하기를 바라는 것은 진정 이 TV라는 공간에선 너무나 과한 욕심일까.
그래서 빛난다, EBS <스페이스 공감>!
대중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여 문화의 이질성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방송사는 이러한 측면에서는 어쩌면 다분히 폭력적이라 할 만 하다. 주류에 따르지 못하는 문화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음악'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개인의 문화적 음악 욕구는 결국 개인의 발품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직접 찾아야 하며, 직접 나서야 한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전제로 해서 제3부분의 음악과 비주류 음악. 혹은 TV에서 방영되지 못하는 음악들을 듣고 즐기는 이들은 참으로 불행하다. 단지 개인의 문화적 성향에 의해 남들보다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그렇게 힘들고 지친 자들을 위해 '진짜 음악'을 허한 곳이 존재하니, 그곳이 TV 공간에선 매주 주말 저녁 10시부터 방영되는 EBS 최초의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이며, 실제 공간에선 평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리는 서울 도곡동에 있는 EBS '스페이스 홀'의 공연장이다.
얼핏 보기에도 좁아 보이는 151개의 조촐한 객석, 바로 그곳 스페이스 홀에서 벌어지는 음악의 향연은 앞서 말한 제3부분의 음악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기계적으로 찍혀 나온 듯한 요즘 음악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허용된 조그마한 음악적 창구이다.
여기서 그 '조그마하다'라는 소심한 나의 표현과는 달리 그 곳에 등장하는 뮤지션들과 음악들은 가히 세계적이라 할 만 하여 TV를 보면서도 황송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고, 이들에게 열광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참가신청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151석이 연일 만원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기존 방송 3사에 어느 한 음악 프로그램이라도 이들처럼 다시 한번 예씨 반 룰레(Jesse Van Ruller)의 기타연주나 하비 메이슨(Harvey Mason)의 드럼연주를 1시간 이상 들려주는 곳이 있다면, 난 그것을 감히 기적이라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야금부터 락까지, 라이브 뮤지션들의 열린 향연
그렇다고 EBS <스페이스 공감>이 여타의 음악 프로그램과 비교하여 높은 진입 벽을 내세우는 것은 또 결코 아니어서, 그저 '라이브 연주'가 가능한 뮤지션이라면 장르와 연주 방식을 떠나 얼마든지 공연할 수 있다. 기존 팝 밴드, 가야금, 하모니카, 해금 연주자, 락 밴드, 퓨전 밴드, 포크 밴드, 일렉트로니카 밴드 등등 그들은 음악을 듣는 우리들에게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게나 이처럼 제대로 된 '공간'을 허락한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함 속에 개인은 원하는 음악을 골라들을 수 있으며 때론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가능하고, 모두가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는 공연에 대해서는 맑은 HD 화면을 통해 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내 거실 소파에 앉아 HD 화면으로,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의 피아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단지 라이브 연주가 가능한 뮤지션이면 대부분 수용한다. 원칙치고는 너무나도 열린 마인드로 꽤 단순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단지 그것 하나 때문에 EBS <스페이스 공감>은 특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수에 초점을 맞추지 아니하고 연주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음악을 음악으로 대한다는 것을 말하며,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실 진정한 음악 프로그램의 전형이다.
2004년 4월 처음 문을 연 EBS <스페이스 공감>은 올해로 3주년을 맞았다. 그 때문에 또 다른 기획공연을 준비한다고 한다. 이름하여 '언플러그드(Unplugged) 공감'. 말 그대로 전자 사운드를 배제하고 '진짜 악기'로 연주를 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출연자들은 자우림, 크라잉넛, 신해철, 소희, 멜로우 이어, 조규찬, 프로젝트 3*3*4 등 국내 뮤지션들로 이루어진 기획 공연이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자악기 없이는 음악을 만들지 못하는 요즘 시대에 가히 EBS <스페이스 공감>만이 세울 수 있는 기획이기도 하다.
방송, 더 많은 공간을 허하라
우리 삶에 있어 음악이라는 것은 그것대로 분리하여 설명하기 불가능한 존재라 생각한다. 또한 우리들이 즐기는 대중문화에 있어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는 부분도 분명 음악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그러한 측면에서 개인이 즐기는 문화적 요소인 음악적 욕구의 성질 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TV에선 연일 10대 팬클럽의 함성과 얼핏 듣기에도 거기서 거기인 듯한 음악만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 그러한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거기다 방송사에 사정을 운운하며, 라이브를 하고 싶어하는 뮤지션에게 대신 립싱크를 강요하는 관행의 소리나 가요의 질적인 사안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들을 여기저기서 접하고 있노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EBS <스페이스 공감>의 존재는 더욱 빛이 난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공간'을 열어 그곳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 그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 점은 반대적 측면에서 볼 때에 왠지 모를 씁쓸함을 남기는 점도 없지 않지만, 이것이 출발이 되어 다른 곳에서도 더 많은 '공간'이 열리고 그곳에서도 여기처럼 음악이 허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