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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2일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같이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칭찬'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전 대표는 지난 미국방문 때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한미FTA를 제외한 다른 노무현 정권의 정책은 모두 바뀔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자기 진영(열린우리당)의 대선주자들로부터 인색한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해 대조를 이룬다.

보수언론의 평가도 후하다. 용기와 결단이란다. 노 대통령과 보수언론이 사사건건 각을 세운 것을 돌이켜보면 '희한한 광경'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 모양새를 두고 노무현-한나라당-조중동 삼각동맹으로 묶어 'FTA 전선'을 치는 시각도 있지만 거기까진 억지스럽다.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보인 FTA 행보를 이념적 노선 보단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업적주의와 함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 하에 밀어부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노 대통령의 퍼스낼리티가 보수·진보의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며 "또 정치적 자존심이 강해서 흙탕물을 뒤집어쓰더라도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FTA 대국민담화에서도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원칙과 소신에 의해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기존 정치권의 비겁한 플레이에 대한 똥고집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레임덕 없는 대통령의 승승장구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현재 20%대다. 조사기관별로 다소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작년 북핵 위기와 부동산 파동으로 바닥을 친 뒤,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례를 들자면, KSOI의 지난 3월 27일 조사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는 20%였다. 작년 말에 비해 두 배로 뛰었는데 30~40대 남성들 사이에서 지지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일부 유입도 눈에 띈다. 정운찬, 김근태, 천정배, 노회찬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3개월, 노 대통령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핵실험 위기에 치닫던 북핵 문제가 2·13 합의로 한반도에 해빙무드가 조성되고 있고,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진보 논쟁'도 시작했다. 여기에 한미FTA가 보태졌다.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정치, 사회, 외교, 안보 분야의 의제들이다.

이같은 '큰 그림'을 그려가며 대국민 직접 소통으로 정면 돌파할 기세다. 집권하자마자 레임덕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대로라면 노 대통령은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이 될 것 같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특수성에 대해 박성민 대표는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노 대통령에게는 '정치세력'이 없다"며 "승부를 볼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이고, 그건 바로 의제 설정권"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권력은 당적과 임기뿐이라던 노 대통령 입장에선, 당의 요구에 따라 당적까지 버렸으니 보다 홀가분하게 대통령의 의제 설정권을 행사할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주변이 온통 '반(反)노' '비(非)노'로 둘러싸인 노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은 그럼 왜일까? 김헌태 소장은 "노무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유일하게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대표는 "이명박도 결단한 게 없다, 현안을 다 피해가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선 '이슈'가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이슈를 다루는 것은 사람이고 '리더십'이다.

한미FTA로 물건너간 '통합신당'

최용규 통합신당모임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의 과제와 전망`토론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최용규 통합신당모임 원내대표와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의 과제와 전망`토론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여권으로 가보자. 열린우리당은 '대통합' 노래를 불러왔다. 이름은 다양했다. '평화' '민주' '개혁' '미래'라는 단어의 조합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이다. 하지만 대통합의 원칙은 불분명했다.

정동영 전 의장의 '왜 신당인가'라는 물음은 맞다. 하지만 아직 답을 구하진 못한 것 같다. 여권의 대통합론은 노선과 이념에 따른 것이 아니다. 세력 간 합종연횡이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가 있고, 기존 정치권과 거리는 둔 제3지대의 손학규, 정운찬이 있고, 개혁진영의 문국현, 박원순, 강금실 등이 거론되고 있다.

호남 지분을 가진 민주당이 또 일정한 지분을 쥐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머리에 쥐나게 대통합의 명분과 동력을 찾고 있지만 난망한 상태다.

그러다가 한미FTA가 불거졌다. 정부에선 4년 동안 준비했다고 하고, 실제 협상은 14개월 동안 이뤄졌다. 단식 배수진을 친 김근태와 천정배는 "협상 무효" "체결 저지"라며 확실히 반FTA 전선에 섰다. 정동영은 FTA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플러스 협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도저도 아닌 스탠스를 취했다. 손학규, 정운찬은 '찬성'이지만 약간의 온도차는 존재한다.

'중도통합'이라는 한목소리를 냈던 이들이 한미FTA로 인해 진보와 중도로 갈리는 모양새다. 실제 김근태·천정배 의원은 한미FTA에 관한한 민주노동당과 공조 보조를 취했다. 대통합의 명분으로 '반한나라당' '반수구보수대연합'의 기치를 내걸었던 것과 달리, 소수의 진보정당과 거대 보수정당 구도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한미FTA 전선으로 긋자면, 이번 대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대결이 되는 것이 맞다.

한미FTA를 통해 여권의 통합론이 얼마나 엉성한 새끼줄로 엮여있었는지가 드러난 셈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전략통은 "FTA 문제는 국민투표나 대선 후보의 공약으로 넘겨질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이 같은 전망은 낯설지 않다. 정부의 비준안 제출시기가 대략 오는 9월 정기국회로 예상되지만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자극할 이슈를 안고 갈 리 만무하다. 한칠레FTA도 1년 6개월이 소요됐다. 찬성 입장인 한나라당도 농촌, 지방 출신 의원들의 반발을 감안해 미룰 가능성이 높다.

그럼 FTA라는 '이슈'는 휘발되고 FTA 찬반으로 쪼개진 '세력'은 남는다. 통합은 결국 몇 갈래로 찢어진 세력 간 연대로 가능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된다. 김헌태 소장은 일찌감치 "찢어지는 정계개편"을 예고해왔다. 억지로 헝겊을 이어 붙여 이불보를 만드느니, 노선별로 찢어져 나중의 여지를 보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얘기다.

김대중·노무현 극복하기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근 여권 인사들을 만나면 인사말처럼 주고받는 말이 있다.

"통합 될 것 같아요?"
"아뇨."
"신당의 형태론 안될 것 같아요."
"그럼요?"
"막판에 '후보 연합' 하는 거죠."

이 같은 흐름을 간파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가 절묘하다(참고로, 김 전 대통령은 FTA 찬성론자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CBS와의 인터뷰에서 "양당제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밝히면서도 "단일정당으로 하기가 어려우면 연합이라도 해서 단일후보를 내면 된다"는 새로운 '워딩'을 추가했다. 단일 후보로 정권교체를 한 뒤, 그 사람 중심의 통합신당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다.

선거를 좌우하는 건 흐름, 구도, 인물이라고 한다. 흐름은 노 대통령이 쥐고 있다. 구도는 김 전 대통령이 짜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인물은? 선거는 "1명의 대선주자와 3500만 유권자 사이의 커뮤니케에션"이라고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원칙과 소신에 대한 자기 희생이 있었다. 남북 문제였고 지역주의였다. 여권의 대선주자들은 무엇에 자신을 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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