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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으로 이사 간 뒤 둘째 아들(고3)을 봉평고등학교로 전학시킨 친구에게서 요청이 왔다. 전교생이 130여 명, 그 가운데 고3이 44명인데 간절히 원하는 학생들에게 논술특강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 학원 강의 더하기 관리 업무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말기 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병원에 마지막으로 입원해 계시지만, 딱 하루 쉬는 날 월요일을 할애하기로 했다.
내가 뭐, 무슨 봉사정신이 투철해서? 아니다. 그저 자식 같은 학생들이 원한다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였다. 말 많고 탈 많은 사교육 덕에 밥술깨나 뜨는 나로서는, 기회가 된다면 눈곱만한 봉사나마 꼭 하자는 다짐을 평소 갖고 있기도 했다.
가산 이효석 생가가 있는 마을, 그리고 아이들
산 속 친구 집에서 봉평고등학교 고3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각이 저녁 6시 30분. 아이들 눈망울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서먹함을 풀기 위해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봉평고등학교는 미남미녀 아니면 안 뽑니? 공기 좋은 고장이라 그런지 인물들 장난 아니네?(아이들 웃음)"
실은 녀석들, 눈빛부터 시작해 너무나 맑고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정말 예쁘고 착했다. 고교등급제 부활논리와 함께 "특목고를 비롯해 우수학교의 우수한 학생들은 장차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인재들인데(중략)"라는, 소위 전문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마구 싣는 일부 신문들에게 묻고 싶다(조선일보 3월 24일자 등).
우수한(?) 학교와 학생들이 아니면, 즉 시골학교의 푸릇한 이 아이들은 장차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인재들이 아니란 말인가?
"선생님은 얼굴이 커서 다들 얼큰샘이라고 불러. 너희들도 앞으로 그렇게 불러라. 사실 중학교 때는 별명이 말대가리였단다(와라락 웃음)."
3교시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자료를 나눠주고 2008학년도 입시부터 달라진 내용들을 설명하는 시간. 마치 입시설명회를 방불케 할 만큼 아이들은 진지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들 눈빛을 보며 갑자기 가슴놀이 언저리가 저렸다. 함께 시간 내준 두 후배 강사들도 다른 때와는 또 다른 열성으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우수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아이들은 간절히 원하고 선생들이 한껏 베푸는 수업.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베푸는 게 아니라 티 한 점 없는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우는 수업이었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선생이란 직분은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
고교등급제 이야기도 심도 있게 나눴다.
"지방에 따라, 학교에 따라 학력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현행 수능 성적이 전국 최고권은 아니라고 해서, 수도권 대학 수학 능력에서도 차이가 난다고는 인정 못해요."
"지역균형선발제와 농어촌특례입학 같은 제도를 모든 대학이 도입하고 확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교등급에 차이를 두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역차별, 학교차별이에요."
"특별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런 인재들을 수용하고 교육할 별도 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한 거지요. 수능과 내신이 전국권이라고 해서 정말 뛰어난 인재인가요? 고교등급제 부활론은 수도권 몇몇 대학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학생들만 싹쓸이하겠다는 이기적 발상 외,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교등급제 부활론이 불거지는 상황에 대해 아이들 모두 속상해 했다. 무엇보다도, 미친 거시기 널뛰듯 시도 때도 없이 변하고 중심 잡지 못하는 입시정책에 대해 분노했다. 더러는 한숨을 쉬고….
11시 반이 넘어서야 아쉽지만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났음에도 궁금한 것들을 계속 질문했다. 마치…, 우리를 다시 못 볼 것처럼.
"매주 오기는 힘들지만 2주에 한 번이라도 꼭 오마. 약속할 게. 그리고 다음 번 수업 때는 밤이야 못 새지만, 시간을 더 충분하게 두고 수업할 거리를 준비해 올 게."
그제야 아이들 얼굴이 밝아졌다. 누군가 꼭뒤(뒤통수)를 잡아채는 것처럼 당겼고 아팠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차를 돌려 귀가하는 새벽길. 칠흑 같은 사위 속 봉평 밤하늘 멀리,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말간 보름달이 한껏 쏟아지며 따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