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빌트인이 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니다.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 때 특정 쟁점을 5년 후에 논의하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이 빌트인이다.
개성공단은 몇 년 후에 논의하자는 게 아니다. 한국 기업이 북한의 역외가공지역에서 생산하면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는 시스템을 인정받은 것이다. 북한에 10개의 공단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10개를 모두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받을 경우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덕수 총리)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는 잘못됐다. 이번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합의에 따라 북한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미국에 수출하도록 허용한다는 조항은 없다. 개성공단 제품 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단 역외가공지대 문제를 논의하는 위원회를 만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캐런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연합뉴스>에 따르면 바티아 부대표는 4일(현지시각)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현재 한미FTA의 적용을 받지 않게 돼 있다"고 재차 확인하면서 "우리는 적성국가들과 교역 문제를 관장하는 재무부 산하 외국자산관리실(OFAC)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합의된 한미FTA에서 개성공단을 위한 이른바 역외가공무역위원회를 놓고 한미 정부 대표의 말이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정리하자면 한국은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아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하고, 미국은 개성공단의 '개'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양쪽 설명의 차이가 다시 정부와 전문가들 간의 평가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개성공단 조항 해석,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일단 정부는 개성공단을 '성과'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4일 오전 국회 통외통위에 낸 업무보고 자료에서 "개성공단과 관련, OPZ(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지정을 통해 특혜관세 부여를 원칙적으로 인정했다"며 "향후 개성공단 생산품에 대한 특혜관세 부여를 협의할 장치를 구체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한반도OPZ위원회에서 일정기준 하에 OPZ를 지정할 수 있는 별도 부속서를 채택했다"며 개성공단의 FTA 포함 조건으로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환경기준·노동기준 및 관행을 꼽았다.
외교부는 또 "양국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한반도한반도OPZ위원회는 FTA 협정 발효 1년 뒤 연다"며 "여기서 OPZ가 될 수 있는 지리적 구역, OPZ 선정기준의 충족여부 판정, OPZ의 생산품이 특혜관세를 받기 위한 요건 등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도 "한미 양국 정부의 해석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국내적으로 어떻게 설명하는지의 문제이지 큰 사안은 아니다"라며 "이전에 미국이 FTA에서 개성공단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봤던 것에 비하면 '역외가공무역위원회'는 개성공단 한 개를 넘어 앞으로 더 많은 (북한지역 내) 공단이 포함될 수 있어 훨씬 진전된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도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고 "북측 관계자들도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계기로 공단사업이 더욱 발전하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하면서 "한미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의 4일 자료에서 드러났듯이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는 관건은 결국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이제 개성공단의 한미FTA 포함 문제는 전적으로 북한에게 달려있다"며 "결국 북한의 비핵화가 관건이다, 역외가공무역위원회를 설치해 'MADE IN DPRK' 제품을 인정받도록 한국이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을 북한이 만들어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덕수 총리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의 말이 다른 것은 유권해석이 다를 수 있는 것"이라며 "개성공단의 근로조건 등도 언급되는데 그것은 작은 문제로, 이는 어차피 정치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개성공단 문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가 관건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성과 자랑을 비판적으로 봤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는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와 결부된 정치적인 문제로 한미FTA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데 정부가 근거도 없이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 개성공단 제품이나 북한산 제품을 아예 미국에 수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 비록 액수는 적지만 북한산 제품이 미국에 수출된 사례도 있다.
단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받았고 적성국 교역법의 적용 대상이다. 따라서 북한산 제품은 정상관세 대비 최소 2배에서 최고 수십 배에 이르는 초고율의 보복관세를 부여받는다. 이 정도 관세가 붙으면 북한산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저가 중국산·베트남 산 제품과 경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실상 수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는 결국 관세문제"라며 "개성공단 문제는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고 적성국 교역법의 대상에서 빠지는 것에 달려있는 정치적 문제이지 한미FTA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FTA가 체결되지 않았다고 해도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당연히 북한산 제품은 미국에 수출할 수 있다"며 "북미 수교는 6자회담의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에서 논의한다, 따라서 어떻게 개성공단이 한미FTA의 성과가 될 수 있는가? 이는 현 정부의 생색내기"라고 비판했다.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었는데 만약 한미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태라면 개성공단 제품은 정상관세로 수출될 것이며, 체결된 상태라면 무관세로 수출될 수 있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한덕수 총리는 개성공단이 '빌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빌트인이지 어떻게 빌트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고 덧붙였다. 빌트인은 현재 해결하지 못한 쟁점을 미뤘다가 나중에 논의하는 것이다.
"개성공단 문제가 성과? 정부의 생색내기"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하든 말든 북한산 제품의 금지관세가 풀린다"면서 "우리 정부가 FTA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서 한국산 인정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설명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핵화의 진전 등 개성공단을 북미 관계와 연동시켜 놓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미국이 무조건 개성공단은 언급할 수 없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합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북핵문제뿐 아니라 노동·환경문제, 인권문제 등까지 관련되어 있다면 상당히 복잡하고 지루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나온 역외과공무역위원회가 지난 1987년 체결된 미국-이스라엘 간 FTA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는 관측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FTA를 더 확장하기 위해 특화산업단지(QIZ : Qualifying Industrial Zone)를 설치했다.
즉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팔레스타인인 집중거주지역), 요르단 내 QIZ에서 생산한 제품 가운데 일정 요건을 갖춘 제품에 한해 미국에 무관세·무쿼터로 수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04년 이집트에게도 이런 혜택을 부여했다. 이집트 영토 내의 특정지역에 위치한 특정한 기업이 이스라엘에서 생산한 원자재를 11.4% 이상 사용하여 제품을 제조한 뒤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면 무관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사례 역시 요르단과 이집트가 미국과 수교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해 9월 바티아 부대표는 <조선일보>와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공동주최 세미나에서 이집트 내 이스라엘 공단을 이스라엘과 FTA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 "그 경우는 (이집트의) 정치개혁에 대한 분명한 약속과 개혁방향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