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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박상천 후보가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박상천 신임 민주당 대표가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3일 오후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박상천 후보가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박상천 신임 민주당 대표가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상천(69) 전 대표최고위원이 3일 민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의 등장은 민주당 50년 역사의 정통성을 강조해온 '올드보이'의 귀환이자 '구정치'의 복귀로 받아들여진다.

박 대표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 등 법조3역을 두루 거쳤다. 가족은 김금자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생활신조는 유의필성,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88년 평화민주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4선(13·14·15·16대) 의원을 지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에 발탁되어 제1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3회)와 법무장관 그리고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개성강한 '강골' 정치인이다.

DJ 앞에서도 첫째, 둘째, 세째 짚어가며 '할 말은 하는 사람'

국회의원 시절에는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 실적이 많았다. 하루 두 갑 이상을 피우는 '체인 스모커'로서 동료 의원들에게 민폐를 많이 끼치는 '구름 제조기'이기도 했다.

말투와 표정이 무뚝뚝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개성이 강하다. 또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며 날카로운 논리성을 갖추고 원칙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판검사 시절부터 청렴하고 강직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오히려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주장을 "첫째, 둘째, 셋째"라고 조목조목 짚어가며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스타일은 DJ를 연상시킨다. 한번은 당 총재인 DJ가 광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느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총재님, 이건 이렇습니다" 하면서 '첫째, 둘째, 셋째' 짚어가며 끈질기게 설득하는 바람에 DJ도 손을 들었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로 집요한 면이 있다.

그의 집요함은 4일 당대표 선출 뒤에 DJ를 예방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민주당이 공개한 면담 대화록에 따르면, DJ의 발언은 1,108자(258 단어)인 반면에 박 대표의 발언은 1,090자(254 단어)로 거의 같았다. DJ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발언 수위도 아슬아슬했다.

박상천 : 민주당이 강해지면 그런 사람들은 민주당 지지로 돌아올 것이다. ‘도로 열린당’을 하는 것보다는 각각 가면서 경쟁을 하다가 여론을 보아서 단일후보로 가면 된다. 바로 합치게 되면 지난 4년간의 실정을 함께 심판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대선필패로 이어진다.
DJ : 아무튼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조용히 들으면 들린다. 열린당이 당을 깨고 나간 것은 국민의 소리에 역행한 것이다. 민주당도 나가려면 빨리 나가라고 했기 때문에 일부 책임이 있다.
박상천 : 아니다. 나가라고 한적 없다.
DJ : 아니다. 신문에서 많이 봤다
박상천 : 그들이 하도 ‘나간다 나간다’ 하니까 오래된 당원들이 감정에서 한 말이다. 누가 현직 대통령더러 당을 나가라고 했겠는가.
DJ : 누가 보아도 열린당의 책임이 크고 민주당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정 안되면 후보연합이라도 하라.
박상천 : 그것은 한다. 이겨야 하니까.


올드보이를 불러들인 '강성'의 힘

그는 2003년 민주당 분당 당시 현 열린우리당 창당세력인 신당파와 사수파간 대결국면에서 '민주당의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을 이끌며 사수파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그때도 '50년 정통성을 가진 민주당을 해체할 수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했다가 2004년 4월 총선 때 '대통령 탄핵' 역풍에 휘말려 고배를 마셨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신중식 의원(나중에 민주당 입당)에게 아슬아슬하게 패했다. 박주선 전 의원의 출마 때문이었다.

원래 박 전 의원의 지역구는 보성·화순이었다. 그런데 그가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수감되어 감옥에 있는 동안 고향 보성이 고흥으로 묶여버렸다. 졸지에 선거구가 공중 분해된 박 전 의원은 명예회복 차원에서 옥중 출마를 단행했고 박 대표는 그 유탄을 맞은 셈이다.

그와 박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초기에 법무부장관과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춰온 광주고·서울법대·법조계 선후배 사이다. 지난 총선에서 박 대표 및 박 전 의원과 겨뤄 승리한 신중식 의원은 현 민주당 공직후보자 추천특별위원장이다.

따라서 다음 총선에서 박 대표가 비례대표로 나서지 않는 한 신중식 의원 및 박 전 의원과의 지역구 조정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범여권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지난 3년간 비주류 원외위원장이었다. 그가 3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당대표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원외위원장들의 집단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역의원 수가 많은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을 반대한다. 당이 통합되면 다음 총선 공천에서 현역에 비해 불리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박 대표 또한 전당대회 연설에서 '민주당 중심의 중도정당 건설'과 '열린우리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반대'를 전면에 내세워 강성 대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당 대표 선출 뒤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박 대표는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논의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당대당 통합'보다는 '후보간 통합'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한 정당이 됐을 때 민주당은 현역의원 수가 적어 열린우리당이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고 민주당은 흡수소멸된다. 이는 대선승리의 길이 아니고 민주당 소멸의 길로 가는 것이라서 지금 단일정당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첫째] 원군을 넘어서라, 현역의원을 추슬러라

박상천 신임 민주당 대표가 손을 들어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상천 신임 민주당 대표가 손을 들어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이제 그는 비주류 원외위원장에서 원·내외를 아우르는 주류가 되었다. 주류가 된 이상 그는 이제 당대표로서 전대에서 상대편을 지원했던 세력을 포용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그를 지원했던 '원군'은 역설적으로 이제 그가 넘어서야 할 극복 대상이 되었다.

당대표로서 그에게는 세 가지 결정적 고비가 남아 있다. 범여권 통합과 12월 대선 그리고 내년 4월 총선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세 가지 고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가 넘어야 할 세 가지 고지가 있다. 현역 의원들로 대표되는 통합세력과의 융화와 지역주의 극복 그리고 시민세력과의 조화가 그것이다.

범여권 통합에 적극적인 김효석 원내대표와 이낙연·신중식·최인기·이상열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이번 전대에서 박 대표가 아니라 장상 전 대표를 지원했다. 통합에 반대하는 원외위원장들의 지원을 받은 박상천 체제가 들어설 경우 범여권 통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이들은 그동안 열린우리당 재선그룹과의 통합논의 및 '통합신당모임'과의 교섭단체 구성 논의를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통합 논의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박 대표와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박상천 체제가 통합론에 반대해 완강하게 당을 사수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현역 의원들이 탈당해 이른바 '제3지대'에서 통합신당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박 대표도 이런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통합파인 민주당 현역의원들이 탈당한다는 분석도 있다"는 질문에 "저를 지지한 의원도 있다"면서 "현역의원들이 왜 탈당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당내 공식기구로 중도개혁세력통합추진특별위원회를 설치해 활동해왔다. 박 대표는 "당내 중도개혁세력통합추진위는 계속 유지할 계획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재구성하겠다, 지금 30명인데 효과적인 통합추진이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김효석 원내대표가 주도하고 있는 중도개혁세력통합추진위는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 그리고 당직자 등 30명으로 구성돼 있다. 박 대표가 말한 '재구성'이 통합추진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전권을 위임한 소수 협상팀으로의 재편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중도개혁세력통합추진위의 활동이 앞으로 통합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호남과 DJ, 이제는 벗어나야

박상천 체제의 등장으로 지역성이 더 고착된 것도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87년 체제 이후 창당된 평화민주당과 3당통합 이후의 통합민주당 그리고 '국민회의'를 계승한 민주당은 그렇지 않아도 열린우리당과의 분당으로 지역성이 더 강화되거나 각인되었다.

3일 서울 올림픽공원내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제5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행사 중간중간에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민주당 50년 역사를 압축적으로 소개한 영상물이 상영되었다. 신익희·조병옥·장면· 정일형 박사 등 민주당을 이끌어온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 극복,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 등 김대중 정부의 업적 등이 자랑스럽게 소개되었다.

또 전당대회장 곳곳에는 '자랑스런 민주당 국민과 함께 미래로' '중도개혁의 중심, 민주당이 희망이다' 같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날 현재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 대의원 현황을 보면, 총 재적 대의원 842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호남 출신으로 사실상 '그들만의 축제'였다.

이를테면 총 재적 대의원 가운데 국회의원과 당직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 당연직 대의원(1549명)을 제외한 선출직 대의원 6871명 가운데 호남지역 대의원 수(전남 1873, 광주 723, 전북 565)가 반수(46%)에 이르렀다. 전남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서울(1371명)과 경기(784명) 대의원의 상당수가 호남 출신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주당 대의원의 절대 다수는 호남 연고인 셈이다.

물론 이런 취약성과 지역성은 분당으로 인해 호남을 제외한 민주당의 모든 지역 조직이 열린우리당 조직으로 흡수되어 당조직이 현저하게 약화된 탓이 크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분당된 뒤에 민주당이 과연 지역당을 탈피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전대에서도 당대표로 출마한 후보들은 저마다 '김대중 선생'을 호명하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광'을 팔면서 득표 활동을 했다. 어떤 후보의 선거홍보물의 구호는 '김대중이 선택한 리더십'이었다. 심지어 전대를 당원들의 축제로 이끌기 위해 식전행사에 초청된 가수를 소개할 때도 '신안 출신 아무개'라고 소개되었다.

분당으로 더 고착화된 지역성을 극복하는 길은 결국 통합뿐이다.

민주당 대표 선출을 위해 3일 오후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이 대표선출 투표를 하고 있다.
민주당 대표 선출을 위해 3일 오후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이 대표선출 투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셋째] 시민사회의 마음을 잡아라

호남 출신 대의원의 절대적 비중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호남 그리고 민주당의 오랜 특수관계를 감안하더라도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이런 모습은 박상천 체제가 넘어야 할 세 번째 고지인 시민사회와의 조화를 더욱 어둡게 하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중도개혁세력 통합에서의 '민주당 중심론'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범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과 '제3지대'에서 대선행보를 이어가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물론 시민사회 세력은 '민주당 중심 통합론'에 냉담한 반응이다.

민주당의 통합론자들이 '구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박 대표에 비해 여성계와 시민사회 대표성이 더 강한 장상 전 대표를 지원한 것도 시민사회 세력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서울시민들이 3선인 맹형규·홍준표 의원보다 초선인 오세훈 전 의원을 서울시장 후보로 더 선호한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박 대표는 다른 구정치인에 비해 청렴하고 강직한 정치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16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 하루 전인 그해 5월 28일 후원회가 보관중인 의정활동 잔여금 1억2368만원 가운데 7천여만원을 장애인 단체 등 복지시설과 장학기금 등으로 기부하고, 나머지 5천여만원은 민주당 전남도지사 선거지원 명목으로 민주당에 전달했다.

'도로 민주당'과 '도로 열린우리당' 사이

결국 범여권 통합의 최대 걸림돌은 '도로 민주당'과 '도로 열린우리당'을 둘러싼 상호 불신이다. 민주당 중심론을 내세울 경우 '도로 민주당'이라는 거부감 때문에 통합이 제대로 될리가 없고, 열린우리당이 중심이 되면 결국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비판 때문에 대선에 승리할 수 없다는 불신이 그것이다.

따라서 박 대표가 열린우리당에 비판적인 민주당 강경 원외세력의 목소리를 의식해 '민주당 중심론'만 내세울 경우 '도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면서 범여권 통합을 둘러싼 정파간 주도권 경쟁을 가열시킬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박 대표도 대표직 수락연설에서 "그동안 단호히 배척했던 열린우리당과도 오는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도가 높은 쪽으로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면서 "그렇게 해서 민주당이 다시 한번 정권을 창출하는 쾌거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선후보 단일화 대선승리후 당통합'론이다.

박 대표는 "민주당 해체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민주당 해체 불가론은 통합에서 민주당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협상전술이라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범여권 통합에 대한 일반적인 관측은 원외세력의 지원을 업은 '박상천 체제'가 들어섬에 따라 'FTA 변수'에 이어 '민주당 변수'까지 합쳐짐으로써 '범여권 대통합의 방정식'은 풀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 협상의 역설을 범여권 통합에 적용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반미 이미지가 강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극적으로 타결했듯이, 반열린우리당 성향이 강한 박상천 대표가 오히려 더 극적인 통합을 이뤄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열린우리당 통합추진파와의 접촉 의향을 묻자 단호하게 "의견이 다르더라도 만나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돌아온 '올드보이'가 당내의 원외 강경세력과 '도로 민주당'에 반감을 가진 범여권 정파 및 시민사회 세력 사이에서 어떻게 절충점을 찾아 통합의 촉매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어차피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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