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도의 경우는 일종의 지지율 버블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갈 만한 형편이 아니다. OECD 자살률 1위, OECD 출산율 꼴찌, 최근 5년간 정신과 환자 5배 증가. 우리나라는 지금 아이도 안 태어나고, 태어났어도 탈출하거나(폭증하는 유학, 이민) 자살해버리거나 미쳐버리는 실정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악의 지지율로 임기를 마치는 편이 자연스러웠다. 그랬다면 마치 미국의 카터 대통령처럼 임기 후에 재평가받으면서 주가가 올라갔을 것이다. 주식으로 치면 바닥을 다진 후에 상승하는 것이 진짜 무서운 대세 상승이다. 정치인은 국민이 때릴 땐 맞아서 바닥을 다지는 것이 정도다.
한미FTA로 급등한 지지율은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버블이다. 마치 코스닥 열풍 당시 폭등했던 주식들과 같다. 코스피 주식들은 실체가 있는 것이었지만, 당시 코스닥 주식들은 대부분 아무런 실체가 없는 사업기획 진열장에 불과했었다. 대중은 그 기획의 미래가치에 열광했다.
미래가치는 실체로 실현되지 못했다. 코스닥 주가는 버블에 불과했다. 허망한 실체가 확인되자 곧 삭풍이 몰아닥쳤다. 대중이 한미FTA에서 기대하는 건 실체가 없는 미래가치일 뿐이다. 사람은 원래 희망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 희망을 배반당했을 때의 절망은 깊다. 참여정부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안 한다는 것을 자부심의 증표로 여기는데, 임기말에 지지율 부양을 한 셈이 돼버렸다. 부양된 지지율은 미구에 사라질 신기루다.
대중이 한미FTA를 희망으로 여긴다면 위험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지금 우리 국민은 파탄에 직면해있다. 파탄에 빠진 국민은 정치적으로 우경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경화든 좌경화든 뭔가 교착된 상황을 시원하게 돌파하길 원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희구로 나타난다.
2007년 대선은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줄 강력한 대안적 리더십이 나와야 하는 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급등하는 대통령 지지율과 한미FTA 지지율이 위험한 것은 대중의 열망을 엉뚱하게 임기가 다 된 대통령과 한미FTA가 가로채갈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개방으로 IMF 파탄이 오고, 개방으로 지금의 내수파탄, 민생파탄 사태가 온 것이 명약관화한데도 여전히 우리 국민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근원을 모르고 있다. 심지어 90년대부터 개방 반대했지만 우리 경제 잘만 돌아가지 않았느냐는 선동까지 횡행하고 있다.
그 얘긴 한미FTA의 결과가 설사 나쁘게 나와도, 국민들의 개방 자유화에 대한 신뢰가 상당 기간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이것은 한국 정치의 우경화를 의미한다. 현재 원내 1, 2당이 모두 한미FTA당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린 1987년 이래 처음으로 보수반동으로 역진하는 역사를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좋았던 그 시절과 한미FTA는 닮은꼴
사람은 어려울수록, 불확실성에 직면할수록 좋았던 과거를 회상한다. 어느 사회이던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철저히 과거의 제도적 관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과거 경제적 활력이 넘치고, 경제지표의 성장과 국민 삶의 질 성장이 밀착됐던 시절에 대해 국민은 이런 기억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반미좌파 세력 때려잡고 미국과 친하면, 여러 가지 안 좋은 꼴은 좀 보지만 어쨌든 경제는 잘 돌아가더라. 미국 자본 받고 미국 시장 열면 기업이 살더라.'
물론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지금처럼 미국의 자본을 받은 적이 없다. 과거에 우리는 단지 미국으로부터 돈을 꿨을 뿐이다. 지금은 자산과 지분(주식=소유권+이익청구권)을 내다 팔고 있다. 또 과거엔 국산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지만 한미FTA는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입품 천지를 만들려 한다. 과거엔 미국과 아무리 외교적으로 '친해도' 경제적 실리는 철저히 챙겼다. 지금은 다 열어주지 못해서 안달이다.
고통과 절망에 빠진 국민은 이런 통찰을 할 여력이 없다. 국민은 지금 탈출구를 열망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선진국된다는 바람은 잔뜩 잡아놨는데 십몇 년째 정체감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실질소득도 늘어나던 나라였다. 그 흐름이 90년대 이래 끊겼다. 국민은 변화와 도약을 갈망한다.
이럴 때 한미FTA가 내거는 구호와 한미FTA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세력들 간의 대립 양상은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민주화 우파가 한미FTA를 지지한 것 말고는 한미FTA 대립 지형이 과거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서 한미FTA 지지율의 일부가 민주화 우파의 수장(대통령)에게도 배분된 것이다.
최근 급등한 대통령 지지율은 박정희 지지율, 이명박 지지율, 박근혜 지지율과 그 성격이 같은 셈이다. 구체제에 대한 향수 어린 지지율은 현재의 삶이 그만큼 각박하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국민의 삶을 더욱 각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럴수록 국민은 더더욱 한미FTA와 과거의 향수에 매달릴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언제든지 자신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법이니까.
국민주권 탄핵과 지지율은 상관이 없다
1972년 11월 21일 91.5%의 국민이 유신헌법을 찬성했다. 히틀러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국민이 고통과 혼란에 빠져있을 때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을 민주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난 한미FTA가 일종의 국민에 대한 탄핵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첫째, 절차적 부당성을 들 수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이유이고, 둘째, 한미FTA는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앗아가 투자자에게 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본질적인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화국은 절대적 평등성의 주권 원리와 사적 재산권의 시장 원리 두 축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한미FTA는 사적 재산권 시장 원리만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반헌법적이라고 주장했다.
주권과 사적 재산권은 사람이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화국은 이것을 '천부의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만큼 이 두 가지는 공화국을 이루는 핵심 원리다. 이 중에서 사적 재산권은 양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주권은 양도 불가능하다. 공화국의 시민은 주권을 양도할 자유/권리가 없다.
사적 재산권의 경우에도 모든 물질적 부를 남김없이 양도해 남에게 예속될 만큼 가난해질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적극적인 공화국이다. 왜냐하면 남에게 예속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주권을 온전히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에 빠진 시민은 종종 자신의 주권을 양도해버린다. 박정희, 히틀러. 이런 사태를 일컬어 '대중독재'라고 한다. 이건 국민이 국민을 탄핵한 경우다.
한미FTA는 공화국의 헌법과 상충되고, 주권 원리를 공격하면서 사적 재산권 원리만을 강화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화국의 시민에겐 한미FTA를 반대할 자유/권리는 있어도, 한미FTA를 찬성할 자유/권리는 없다. 만약 국민의 100%가 한미FTA를 찬성한다면 국민이 국민을 탄핵한 것이고, 대중독재 상황이 도래한 셈이 된다.
그러므로 국민주권, 헌법 원리 등을 주장하는 한미FTA 반대 세력에게 한미FTA 추진자들이 국민의 높은 지지율을 들면서 반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공화국의 주권 원리는 다수결과 상관없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코 다수결로 주권을 탄핵할 순 없다. 그 순간 공화국의 생명은 끝난다.
한미FTA 추진측은 '기대 이익'의 나열로 국민에게 미래가치를 주입하고, 그에 따라 급등한 지지율로 반대측을 누르려 하지 말고, 본질을 말해야 한다. 한미FTA와 주권 원리, 공화국의 헌법 원리가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본질이다. 만약 한미FTA와 주권 원리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추진측이 증명하면, 설사 국민 100%의 반대 속에 한미FTA를 강행한다 해도, 국민탄핵이라는 나의 주장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
사적 재산권 절대화의 전복이야말로 제2의 6.29
공화국은 시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책임진다. 공공서비스는 사적 재산권 원리에서 벗어난 영역이다. 절대적 평등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주권 원리에서 천부인권이 나오고, 기본권이 나온다. 시장 원리는 이익을 위한 거래의 영역이라서 기본권과는 상극이다. 왜냐하면 기본권은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공공영역'이라는 단어가 시장과 별개로 존재한다.
원리적인 차원에서 어느 국민도 기본권을 양도할 자유/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것을 보장해주기 위해 공화국은 공공영역을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으로부터 분리해, 공공서비스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미FTA는 투자자유화이면서 서비스부문 자유화를 목표로 한다. 여기서 '자유화'란 이익 추구의 자유를 뜻한다. 그러므로 서비스부문 자유화와 공공서비스는 근본적으로 서로 충돌한다.
한미FTA 추진자들은 이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만약 한미FTA가 공공영역을 축소하고, 공공서비스를 자유화한다면 그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지지율과 상관없이 공화국을 탄핵하는 것이 된다.
공공영역뿐만이 아니라 사적 재산권영역의 서비스에도 기본권 원리는 구현되어 있다(각종 쿼터, 규제, 경쟁 제한, 보호, 조정 등). 한미FTA로 미디어 서비스 부문, 고등교육 서비스 부문(난 고등교육 서비스를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하나 이 정부는 사적 영역이라고 규정함) 등이 자유화된다는 것은 기본권의 후퇴를 의미하는 셈이다. 이런 것도 탄핵이다.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서비스업을 개방하지만 미국은 이미 전 세계 최강의 서비스업 강대국이고 우리나라는 후발 약체국이다. 얻는다는 경쟁력은 구경도 못하고 기본권만 탄핵당할 위기에 처했다.
내 주장이 맞는다면 언젠가 진실이 드러났을 때 대통령 지지율의 추락, 아니 역사의 오명은 비극적인 수준일 것이다. 지금의 지지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비극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이 된다. 정부와 언론은 스포츠 중계 같은 이해득실 나열표로 국민을 혼란시킬 것이 아니라 본질을 말해야 한다. 이번 논란을 통해 만약 사적 재산권의 절대화라는 90년대 이후 자유화 개혁의 기조가 전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2의 6.29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