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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타결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두번째 진단대상은 '투자자-국가제소'입니다. <편집자주>
▲ 정부는 투자자-국가제소권(ISD) 대상에 부동산 정책은 제외됐다고 최종 타결문에는 '예외적은 경우 허용한다'고 명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부동산 시장은 FTA 적용을 받는 건가요?"

정부가 한미FTA 분야별 최종 협상결과를 발표한 4일 한 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부에선 투자자-국가제소권(ISD) 대상에 부동산 정책은 제외됐다고 밝혔으나 최종 협정문에는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한다'고 명시돼 있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미FTA가 발효되면 국내 부동산 시장은 그 영향을 받게 된다.

부동산정책 제외,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가 남았다

이번 한미FTA 협상과 관련해 국내 부동산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ISD이다. 예컨대 부동산 정책이 ISD 적용을 받을 경우 투자자가 정부 정책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한다면, 국제중재재판소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실상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무력화되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부동산 정책이 ISD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실제 정부는 지난 2일 협상 타결 직후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 등 정당한 정부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정부의 공공정책이 간접적으로 투자자의 기대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했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 우리 정부는 "부동산 정책이 ISD 적용을 받지 않게 됐다"며 이를 이번 협상 성과 가운데 하나로 뽑았다.

그러나 지난 4일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최종 협정문에는 '예외적인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예외 조항은 정부 조치의 강도가 '극도로 지나쳤을 경우' 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원칙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투자자의 이익을 해치면 정부가 투자자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통상전문가들과 일부 국회의원은 최종 협상안 내용에 들어있는 이 같은 '독소조항'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예외규정을 둠으로써 사실상 부동산 규제정책이 ISD 대상에 포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결국 집 없는 서민엔 재앙, 1%의 땅부자들만 불로소득을 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분양가 상한제, 원가공개는 '부동산가격정책'?

정부가 원칙적으로 밝힌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의 범위도 논란이다.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은 주로 담보대출비율 규제 등 금융정책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 경우 분양가 상한제, 원가공개 등이 가격 안정화 정책에 포함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남근(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변호사는 "부동산의 경우 가격안정화 정책만 예외에 포함되고, 신도시 계획, 그린벨트 등 공급과 관련한 정책은 모두 소송 대상이어서 향후 위헌 논란과 함께 정부 정책이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기에 분양가 규제 등 지난해 말 집값 폭등 이후 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대책들은 물론 과거에 정부가 내놓았던 부동산 정책도 미국 투자자의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최재천(무소속) 의원은 "정부는 조세정책과 부동산정책을 ISD에 예외 적용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 타결된 내용을 보면 '부동산정책'이 아니라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이라고 명시돼 있다"며 "이 경우 부동산가격 안정책을 제외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ISD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인 투자자에게 제소당한다면....

▲ 분양가 상한제, 원가 공개 등 최근 정부가 내놓은 각종 부동산 대책들도 미국 투자자의 소송 대상이 돼 정책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15일 부동산안정화방안 관련 관계장관 합동브리핑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처럼 '예외적으로' ISD 적용 대상에 부동산 정책이 포함됨에 따라 향후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분야의 주요 정책에서 중재 제소를 통해 미국 투자자가 우리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공적 성격인 부동산 정책이 대부분 훼손될 우려가 크다.

가령 한국 부동산에 투자한 미국인이 있다고 치자. 만일 한국 정부의 개발이익 환수조치에 대해 이 투자자가 "개발이익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과세가 지나치다"고 판단한다면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실상 정부의 개발이익 환수를 통한 부동산 규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

최재천 의원은 "이번 협정문을 통해 공공적 성격의 부동산 정책이 대부분 훼손될 우려에 처해있음을 확인했다"며 "개발이익환수나 토지의 이용과 개발을 제한하는 과거 8·31대책(2005년)과 3·30대책(2006년) 등 미래의 도시개발을 위해 현재 개발 행위를 제한하는 행위가 막혀버릴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또 신도시 개발을 위해 토지수용을 할 때 현금이 아닌 채권으로 보상하거나 미국인 투자자가 기대하는 '공정한 시장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면 제소대상이 될 수 있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결국 이대로라면 일부 정부의 금융정책을 제외하고 부동산 법률에 근거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미국 투자자로부터 제소대상이 될 수 있다"며 "부동산투기를 규제하고 균형있는 국토개발을 위해 제정된 법률이나 정책이 무력화돼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 등에 대해 공공정책을 사용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소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회 비준 과정에서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의원은 "우리 협상단이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ISD를 어정쩡하게 협정문에 포함시켰다"며 "투자자-국가분쟁의 위험이 부동산 정책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 협상단과 건교부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박은석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은 "최종 협정문에 국한할 경우 제소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제소 과정에 비용과 기간이 많이 드는 만큼 제소할 때 조심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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