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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는 이상호 기자.
지난달 28일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로부터 공로상을 받고 있는 이상호 기자. ⓒ leesangho.com
지난 4월 1일, 그와의 전화 통화는 자주 중단됐다.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애 숙제 좀 봐주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이상호 기자는 전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삼성 X파일을 확신에 찬 어조로 보도하던 기자도, 아이 앞에서는 천상 말랑말랑한 아빠였다.

최근 그에게 벅찬 감격을 느끼게 만든 일이 있었다. 지난달 28일, 연예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가 "연예인 노예계약과 PR비 비리 등 다수 고발보도를 통해 대중문화 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복지향상에 기여했다"며 이상호 기자에게 공로상을 수여한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남몰래 눈물을 흘렸어요. 2001년 노예 계약 보도 그리고 2002년 PR비 비리 보도로 회사 동료에게 피해를 줬기 때문이죠. 나 때문에 옷을 벗어야 했던 선배들, 나 때문에 옥고를 치러야 했던 연예 관계자들, 오랜 시간 동안 맘 한 구석에 큰 숙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과연 정의로운 것인가, 나의 정의가 독선은 아닌가'하는.

그런데 이번에 연예인들 스스로 당시 보도를 평가해주고, 그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날에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나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나 혼자만의 정의는 아니었구나'는 생각, 그리고 '옳았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 참 고맙더군요. 정말 감개무량했어요."

"지난 6년 동안 남몰래 눈물 흘렸다"

5년 8개월 만의 일이었다. 2001년 7월,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연예인과 제작사의 불공평한 계약 관계를 보도하면서 이른바 '연제협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편파 보도"라며 사과 방송을 요구했고, 이에 MBC가 응하지 않자 소속 연예인들의 출연을 거부했다. 유명 인기 연예인 100여명도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며 이상호 기자 처벌을 요구했다.

"대한민국 톱가수들이 다 모였더라고요. 나는 그들을 위해 기사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들이 노예가 아니라고 외치니 다리에 힘이 빠지더군요. 보도 나가고 소송 6개가 동시에 들어왔어요. 매일 일 끝나면 소송 준비하는 것이 일과였죠. 연예인들은 데모하지, 사내 여론도 굉장히 안 좋지. 당장 출연 거부로 방송이 파행을 빚게 됐으니까요."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상처는 깊었다. 특히 노예 계약 보도 당시 내부 고발자 역할을 감수했던 가수 이은미씨가 겪은 고통은 이상호 기자에게 두고두고 큰 빚으로 남았다.

"취재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누가 어떻게 그랬냐'고 물으면, 아무도 얘기 못해요.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제 3자 입장에서 너무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를 해줬어요. 깜짝 놀랐죠. 솔직한 사람을 만나기 대단히 어렵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참 거침없이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제작사나 대형 기획사들, '이은미씨 나오면 출연거부 하겠다', '우리 톱스타들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보이콧을 하는 겁니다. 이은미씨가 몇 년 동안 공중파에 출연하지 못한 이유였죠. 항상 그 분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노래처럼 진실한 가수란 생각 때문에 열렬한 팬이 됐지만(웃음)."

- 연예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어느 부서로 가든지 사회부 기자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부에 갔다고 정치부 기자, 경제부에 갔다고 경제부 기자. 해당 부문의 구조적 담론에 기자가 종속되는 순간, 출입처 대변인이 하는 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내부 논리에 따른 기사 쓰기 때문에 주류 언론이 쇠퇴한다고 봅니다.

연예부 기자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부 기자의 관점으로 바라봤어요. 그랬더니 그야말로 물 반, 기사 반이랄까. 물론 나중에 연예부 기자들이 수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게 됐어요. 그만큼 연예계 문제를 드러내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죠."

경기 북부로 발령난 이상호 "출입처는 중요하지 않다"

2005년 7월, MBC <뉴스데스크>는 삼성의 불법 대선 자금 제공 내역을 담은 안기부 도청테이프를 전면 공개했다. 당시 이상호 기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MBC가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2005년 7월, MBC <뉴스데스크>는 삼성의 불법 대선 자금 제공 내역을 담은 안기부 도청테이프를 전면 공개했다. 당시 이상호 기자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MBC가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 당시 MBC 화면 촬영
그리고 2002년 'PR비' 비리 보도. 이번 '내부고발자'는 이상호 기자 본인과 <시사매거진 2580>이었다. 파장은 엄청났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대형 연예 기획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됐다. 방송사 PD와 연예 기획사 및 제작사 간부가 잇따라 구속됐다. '탐사 고발 전문 기자'라는 호칭을 얻게 됐지만, 내부고발로 인한 마음고생은 혹독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MBC 동료PD들이 피해를 봤어요. 너무 힘들어서 아내한테 그랬어요. 이민 가서 세탁소 하면서 살면 어떻겠냐. 헌데 출근길에 집사람이 제 등을 툭툭 쳐줘요. 당신은 천상 카메라 출동 기자니까 열심히 나가 싸워라, 걱정 말고 싸워라. 큰 힘이 됐죠. 2580 동료들의 격려도 잊지 못해요. 저를 신뢰해줬고, 그래서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선후배들이 보여줬던 따뜻한 동료애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뒤늦게 노예 계약 '고발 보도'와 PR비 비리 '내부고발'의 열매가 열린 셈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5년 8개월 전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구찌 핸드백'을 내부 고발했고, 삼성 X파일의 실체를 고발 보도했다. 다른 점이라면 순서가 뒤바뀌었을 뿐, 혹독한 칼바람은 맵다. 아니, 더 지독하다. X파일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고, 최근에는 수도권팀 의정부 지국으로 발령이 났다. 이제 곤란한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 마음고생이 심할 것 같은데요.
"어떤 기자도 후폭풍에 휘말리기 싫어하게 마련이죠. 하지만 독자나 시청자는 그런 기사를 원합니다. 결국 싫어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기자들의 업보죠. 그동안 체득한 공식인데요. 후폭풍 기사 공식. ①기사가 나간다 ②여론이 들끓는다 ③언론 중재가 들어온다 ④민·형사 소송이 들어온다 ⑤긴 소송이 시작된다 ⑥여론이 잠잠해진다 ⑦법정에 남는다 ⑧문제 기자로 찍힌다. 매번 똑같더군요.

X파일 보도 그리고 핸드백 사건 있고, 너무 힘들어서 어떤 선배랑 소주 한 잔 했어요. 힘들다고 그랬더니 선배가 '기자 생활 처음부터 너를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네가 굉장히 힘들어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아니다. '정말 힘들다'고 했더니 '어떻게 힘든걸 아는 놈이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냐"고 하시더군요.

생각해보니 그래요. 뒤늦게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며, 깨닫게 됐어요. 노예 계약 보도, PR비 비리 보도가 또 그랬어요. 기사 한 번 나가면 막 혼나다가 또 까먹고 다시 기사 쓰고…. 당시만 해도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스스로 실감하지 못했던 거죠. 애를 낳을 때 무지무지 고생하고도 또 출산의 기쁨에 눈이 멀어 아이를 갖는 내 아내나 다른 어머니처럼. 다만 이번에는 좀 더 길고, 생각보다 더 깊은 것 같습니다만… 본질적으로 다른 '후폭풍'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 보복성 인사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 혼자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철이 들었다고 할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내게 고통과 좌절 그리고 시련을 안겨줬던 기사들, 다 MBC를 통해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MBC에서 주변의 도움을 얻어 함께 보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결국 이 모든 게 내가 MBC 기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PR비 비리나 노예계약 기사로 고통 받을 때, 나를 사려 깊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그래도 격려하고 함께 해줬던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바라보니까, 모두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란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지금 겪는 건 그런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내 진심입니다. 인정해요. 솔직히 나도 아쉬움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내가 소통하지 못해 생긴 문제가 컸습니다. 좀 더 다가가고 소통해야겠다. 그리고 더욱 낮아져야겠다는 반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X파일 보도, 삼성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보도였다"

ⓒ leesangho.com
- 한편으로 '이제 이상호 기자가 너무 힘든가 보다, 그래서 회사에 고개를 숙이는 모양이다'란 생각도 듭니다.
"(한숨 그리고 또 한숨. 질문을 받은 이상호 기자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간단히 말하죠.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 MBC는 우리 언론 사회에서 너무나 소중한 자산입니다.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 만 2년 만에 취재 현장에 복귀했는데요. 앞으로 계획은.
"카메라 출동하다 연예 뉴스를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나더군요. 모든 기자는 사회부 기자일 뿐이다. 어디에 있든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던 그때가요. 그 마음 그대로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 농담 같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X파일 보도 당사자는 대기업과 정치권이었습니다. 다시 6년이 지났을 때 이번처럼 감사패를 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X파일 보도는 삼성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보도였습니다. 기업들이 윤리경영, 감동경영, 투명경영을 얘기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경영'을 돕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언젠가 이건희 회장이 아닌, 삼성의 노동조합으로부터 '고맙다'는 의미의 공로상을 받을 수 있다면, 그때 역시 이번처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상호 기자의 홈페이지(www.leesangho.com)에 올라 온 3월 8일자 공지사항을 덧붙인다.

'2년여 만에 다시금 취재 현장에 돌아왔습니다. 경기 북부를 취재하는 의정부 주재 기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기자는 사건기자일뿐 출입처는 중요하지 않다'고 믿어온 제 신념을 현장에서 좋은 기사를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 같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한수 이북 경기북부 지방의 각종 애로사항과 부조리, 비리, 사건사고 등 생활 주변의 다양한 문제를 제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대한 사안일 경우 지역은 문제되지 않으니, 다른 지역의 문제도 기탄없이 제보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기획취재기자단' 응모 글입니다.


#인터뷰#이상호#안기부 도청테이프#검찰#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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