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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덧 조폭 삼총사들과 꼬냥이의 사이도 그런 대로 순탄해지고, 꼬냥이는 다시 예전의 페이스를 되찾아(뭘 잃을 거나 있었냐) 엘레강스한 취미생활을 마음껏 즐기게 되었다.

이젠 레벨도 좀 높아져 어지간히 하지 않으면 레벨업도 어려웠고 일단 시작한 거 '지존이 되어보세' 하는 마음가짐으로 좀 더 강도높은 플레이에 임했다. (누가 보면 국가대표라도 되는 줄 알겠다, 응?)

보통 게임을 하다 보면 밤낮이 제멋대로 바뀌곤 하는데, 당시 나의 수면 주기는 새벽 4시에 자고 오전 11시 기상. 하느님이 보우하사 다행히 잠탱이는 아니다.

우유배달 강도님, 번지수 잘못 찾으시어 절단 나셨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4시쯤에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롱아롱 헤롱헤롱, 얼핏 잠이 들었을까. 밖에서 누군가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거의 반수면 상태로 문앞으로 기어갔다.

"누구세요?"
"우유 배달이요."


밖에서는 오토바이 세워놓은 소리가 들리고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우유배달을 왔단다. 참… 사람이 그렇다. 밖에서 우유배달을 왔다니 잠결이라도 그거 한번 먹어보겠다고 나도 모르게 문을 철커덕! 열려고 하더라는 것. 거의 반쯤 잠금장치를 열려는 순간, 정신이 갑자기 번쩍 들었다.

"어…? 저 우유 안 먹는데요?"
"어서 주고 가야 돼요, 문 열어봐요."
"우유 원래 안 먹어요."
"문 열어 보라니까요! 시간 없는데…."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 평생 어릴 적, 병우유 이후로는 소젖과 친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우유배달을 왔으면 놔두고 가면 되지, 왜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르시고 난리댄스질일까! 덜컥 겁이 났다.

"난.우.유.안.먹.어.요!!!!!!"

이 정도 했으면 돌아갈 만도 한데 이 우유강도, 가관이다.

"아, 시간 없다니까!!!"
"안 먹는다고!! 안 시켰다고!!"
"야! 문 안 열어?!!"


허! 이건 강도가 아니라 지가 집주인이네, 그려. 이 강도, 자칫 창문이라도 타고 들어올 기세. 내 아무리 막가파 꼬냥이라도 이 정도 되면 온몸이 후들후들 떨릴 수밖에 없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건….

"오빠!!!!!!!!!!!!"

조폭 오빠가 재벌, 첫사랑, 테리우스 오빠보다 낫더라

두둥!

샤랄라∼ 샤랄라 라라라라라∼ (꽃그림 몇 개 들어가 주시고 배경음악 모나코∼)

어느 오빠였을까…?

열일곱 살, 폭풍우 같던 첫사랑의 주인공 오빠였을까. 축구하다 나를 보며 인사를 한다는 것이 축구공을 날려 내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었던 그 선배오빠였을까. 화실에서 나도 손이 있거늘 꼭 지가 해주겠다며 오도방정 떨다 식빵이 아닌 내 캔버스에 케챱을 짜갈기던 화실 오빠였을까….

▲ 수많은 멋진 오빠들, 그러나 그들은 날 구하지 못한다. 아니 안한다. 췻!
ⓒ 박봄이
모두 아니다. 모두 아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오로지 송화맹호도의 주인공, 막내 조폭의 얼굴이었다. 지 급하니까 그냥 오빠 소리 나오더라. 현실적으로 생각하여 그 상황에서 준땅 오빠라 한들 날 구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그 양반이 날 구하기야 하겠냐만은. (쩝)

삐그덕-.

오오!!!!!

옆집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대문과 옆집 창문이 붙어있어 이 정도 소리지르면 잠자지 않는 이상은 들리게 마련이거든.

"뭐야? 새벽에 시끄럽게, 옆집 아가씨, 무슨 일이야?" (어느덧 말놓는 다정한 이웃사촌)

역시 나의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그냥 딴 짓 하다 안잔 건지 막내 조폭의 목소리였다.

- 구해줘, 뽀빠이!! 구해줘, 뽀빠이!! 구해줘, 뽀빠이!! 모드 돌입!!

"밖에 아저씨가 자꾸 문 열라잖아요!!! 나 우유 안 먹는데!!"

우호호!! 각오해라, 우유강도!

"당신 뭐야, 우유배달 맞어? 우유 어딨어?"
"아…, 저기…."


후다닥!!

"거기 안 서?!!"

투다닥!!

대충, 이런 상황. 우유강도를 붙잡아 물고를 내고, 막내 조폭에게는 기사 작위라도 수여하려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우유강도가 워낙 신출귀몰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튀어주셔서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막내 조폭.

"아가씨, 괜찮아? 문 좀 열어봐."

문을 열고 그 듬직한 막내 조폭의 얼굴을 보니 왜 그리 안심이 되던지…. 갑자기 우리 둘 사이에 놓였던 커다란 신분의 벽은 (뭔 벽) 손가락에 엉겨붙은 솜사탕마냥 녹아 없어졌다. (간사한 것)

그제야 비실비실 나오시는 첫째 조폭과 둘째 조폭. 어이, 거기 영감들은 좀 들어가시고!

조폭의 경호를 받다

이후로 막내 조폭 마치 꼬냥이 전용 수호기사처럼 경호를 해주었다. 새벽에 게임방 갈 일 있으면 데려다 주고, 늦게 들어오는 날은 택시 정류장에서 기다려 주고…. 가끔 자잘한 전구 갈아 끼우는 일이나 옆 건물 파키스탄 총각의 관음질에 되도 않는 영어로 위협하는 임무 수행 등. 이 정도면 사설경호원 못지 않지.

사실…, 그저 죄라면 남들보다 조금 청소 안 하고 조금 막가파라는 것밖에 없었는데 유별나게 까탈스러운 이웃 만나 고생하던 조폭 삼총사. 특히 꼬냥이를 보면, 말 지지리도 안 듣다가 13살 때 집나가 소식 끊긴 여동생이 생각난다 했던 막내 조폭. (왜 떠오르는데, 왜???)

밖에서야 어깨에 힘주고 나쁜 짓 하고 다닐지 몰라도 일단 건물에만 들어오면 순한 얌생이가 되어 버거운 이웃 꼬냥이의 히스테리를 다 받아주는 착한 이웃이 되었다. 지금 생각 해보면 쥐똥만한 여자아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혼자 사는 이웃집 아가씨에 대한 나름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그들이 독한 조폭이 아니었던 까닭도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 기사로도 썼었던 귀신난리질 사건이 겹치면서 난 이사를 가야 했고, 마지막으로 뭐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조폭질도 알아야 해먹는다!' 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받도록 해주는 것, 바로 게임방 나들이.

'조폭 삼총사의 게임방 나들이'는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거의 한 달만에 쓰네요. 그동안 일이 좀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부산에 계신 할머니가 다리가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한동안 내려가 있었던 것이죠. 어르신들 날 풀리며 안심하다가 삐긋 삐긋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정정하시던 양반이 거동이 불편하신 것을 보니 그저 건강이 최고란 생각 또 한 번 절실하게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음 편 올리도록 할께요. 감사합니다.


태그:#옥탑, #옥탑방, #조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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