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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서울대 앞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운 대표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중단'을 외치며 분신한 허세욱(현재 입원 중)씨에게 보낸 편지 전문입니다. 김 대표는 7일 '한미FTA 체결 저지' 범국민대회 현장에서 이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편집자주>
허세욱씨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모습.
허세욱씨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모습. ⓒ 민주노총
허세욱 동지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허 동지를 일으키는 일이 한미FTA를 무효화화는 것입니다. 기필코 우리가 동지를 살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전태일 열사가 되셔야 합니다.

허세욱 동지, 꼭 쾌유하셔서 우리 곁으로 다시 오셔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 병상에서 온몸을 붕대로 감으시고 마취의 깊은 잠에 빠져 계실 동지를 생각합니다.

동지의 분신 앞에 저는 부끄럽습니다

지난 4월 1일 서점에서 일하다가 동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망국적 한미FTA 폐기하라, 굴욕·졸속·반민중적 협상을 중단하라,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고 마지막 남은 힘을 내서 외치시던 분이 바로 동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온몸이 큰 쇠망치에 맞아 뻣뻣하게 굳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지가 너무나도 걱정됐습니다. 동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저들에게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또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하셨는지, 왜 저를 또다시 그렇게 부끄럽게 만드셨는지.

그렇습니다. 동지는 항상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셨습니다. 그 거울을 보고 부끄러움을 일깨워주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지역 행사에서, 집회에서, 제가 일하는 서점에 찾아오셔서 뵐 때마다 항상 반갑게 두 손을 맞잡고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하셨지요. 제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겸손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동지가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 용산미군기지 월례집회, 평택미군기지 투쟁, 택시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유인물과 포스터를 가져오셨기에 서점 앞은 항상 동지가 가져온 포스터로 도배됐고 책상에는 동지가 가져오신 각종 투쟁을 알리는 선전물이 끊어질 날이 없었지요.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한미FTA 저지와 허세욱씨 쾌유를 바라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한미FTA 저지와 허세욱씨 쾌유를 바라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점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아시고 요즘 학생들이 사회적 모순을 인식할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 공부를 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그날이오면> 서점 후원회에 가입하셨죠. 그 적은 택시운전사 임금을 쪼개 그 많은 단체들에 회비를 내고 후원을 하시면서도 말입니다. '<그날이오면>을 위한 신영복 선생 강연회' 포스터들을 한 묶음 가져가셔서 여러 곳에 나눠주시고, 강연회에도 직접 오셔서 많이 후원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셨지요.

죄송하다니요. 많이 후원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20만원어치나 되는 상품권을 사러 오셨습니다. 사가지고 가시다가 저에게 전화를 하셨지요. 뭔가 미흡하신 듯한 어조로 도서상품권을 서점에서 사는 것이 서점에 도움이 되는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이오면> 자체 상품권을 사시면 좀 더 도움이 되기는 한다고 하니까, 한참 가셨던 차를 다시 되돌려 오셔서 <그날이오면> 상품권으로 바꿔가셨습니다. 조카도 직접 <그날이오면>에 와서 책을 사면 더 좋을 거라고 하시면서요. 조카가 오면 좋은 책을 추천해서 읽게 해달라고 저에게 부탁하시면서 마치 큰 부탁이라도 하듯이 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전태일 열사'가 되셔야 합니다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금 동지가 계신 병원에서 며칠 전 알게 된 일입니다. 동지가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에서 저를 그렇게 자랑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동지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저를 말입니다. 사경을 헤매며 누워 계신 병원에서 들은 그 얘기는 정말 저를 더욱 참담하고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허세욱 동지! 동지가 계실 곳은 병상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입니다. 한미FTA를 무효화하는 그날, 노동해방의 그날, 통일의 그날이 기필코 오게 하기 위해 동지와 함께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에겐 동지가 정말 필요합니다. 그 길을 끝까지 함께 하기에 부족한 저희들 곁에 항상 계셔서 긴장을 풀지 않게 하시고 열심을 품게 하셔야 합니다. 허세욱 동지! 동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 일이 한미FTA를 무효화하는 일이고 동지를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몰아간 적들에게, 이 땅 민중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적들에게 복수하는 일입니다. 이제 기필코 우리가 동지를 살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전태일 열사가 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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