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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5일 "북한이 우라늄농축 핵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다"는 제임스 켈리 미 특사의 주장으로 촉발된 제2차 북미 핵문제가 2007년 현재 중요한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은 잠시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핵문제의 각 당사국들은 1994년 제네바합의서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동일 양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 1994년 제네바합의서는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제1차 북미 핵대결(1993~94년)의 결과물로 탄생한 제네바합의서를 들여다보면, 이것이 필연적으로 제2차 핵대결을 잉태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 양측에서는 제네바합의서가 자국의 승리로 끝났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 제네바합의서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실질적 접근 없이 사태를 대충 봉합한 것에 불과하다. 제네바합의서의 형식상 문제점과 내용상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형식상 문제점으로서 제네바합의서의 정식 명칭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흔히 북·미 제네바합의서라고 번역되고 있지만, 북·미 양국은 실제로 합의서(agreement)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국제법적 의무가 수반되는 합의서나 협정의 형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제네바합의서의 정식 명칭은 무엇이었을까? 제네바합의서의 영문 명칭은 'Agreed Framework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다. "미합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Agreed Framework"으로 번역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Agreed Framework'는 합의서라고 번역되기 힘든 표현이다. 정확히 말하면, '합의 틀' 혹은 '합의 대강' 정도가 될 수 있을 뿐이다. '합의 틀'이나 '합의 대강'이라고 하면, 이 합의가 국제법적 구속을 받는지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또 이를 갖고는 훗날 상대방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기도 힘들다.
양국이 이처럼 애매모호한 형식으로 문제를 봉합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양국의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측으로서는 제1차 핵대결 당시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북한의 굴복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서둘러 문제를 봉합하려 한 측면이 있다. 초기만 해도 북한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흑연감속원자로를 동결(제네바합의서 제1조 3항)하는 조건으로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동 합의서 제1조 1항·2항)하기로 하는 등 도리어 더 많은 부담을 떠안고 말았다.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을 폐기시키기는커녕 그 일부를 '동결'시키는 대신 자국이 훨씬 더 많은 재정적 부담을 떠안았기 때문에, 가급적 합의서나 협정의 형식을 피하고 애매모호한 형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만약 당시의 클린턴 정부가 정식 합의서의 형식으로 경수로 및 중유 제공이라는 부담을 떠안았다면, 미국 정부는 대내외적으로 크나큰 망신을 당했을 것이다. 북한 핵을 폐기시킨다면서 전쟁 위협까지 가하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다가 도리어 위와 같은 부담만 떠안고 물러난다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편, 북한 입장에서도 김일성 사망(1994년 7월 8일) 이후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미국과의 모험적 대결을 계속 끌고나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사태를 하루빨리 봉합하기 위하여 합의서가 아닌 합의 대강이라는 모호한 형태의 결과물로 만족하고 말았던 것이다.
위와 같이 1994년 제네바합의서는 실제로는 정식 합의서의 형식을 띠지 못함으로써 각 당사자를 국제법적으로 구속하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제2차 핵대결을 낳는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본래는 제네바'합의서'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표현에 따라 편의상 제네바합의서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다.
제네바합의서의 문제점은 형식적 측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용적 측면을 들여다보면, 북·미 양쪽 모두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고 싶었지만, 미국이 달성한 것은 '고작' 북한의 흑연감속원자로를 동결시키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조건부였다. 미국이 경수로 및 중유를 제공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런 약속을 받아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경수로 및 중유 제공의 의무를 게을리 한 이상,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였다고 하여도 미국이 북한을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북한의 핵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미국이 얻어낸 또 하나의 성과는 제3조 2항의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 있게 취한다"(The DPRK will consistently take steps to implement the North-South Joint Declaration on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는 규정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 이행과정에 대한 합의가 수반되지 않은 추상적 규정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리고 북한 역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북한은 '핵문제의 근원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북한 역시 그러한 자국의 입장을 제네바합의서에 충분히 담지 못했다.
북한이 얻어낸 것은 제3조 1항의 "미국은 미국에 의한 핵무기의 위협이나 사용과 관련하여 북한에 영속적인 보장을 제공한다"(The U.S. will provide formal assurances to the DPRK, against the threat or use of nuclear weapons by the U.S.)는 규정이었다.
이 조항을 통해서 '한반도 핵문제의 근원은 북한 핵이 아니라 미군 핵'이라는 점이 일정 정도 시사되기는 하였지만, 그러한 메시지를 확실한 문구로 정리해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행하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 조항도 만들지 못했다.
이와 같이 북·미 양국은 제네바합의서에서 상대방의 핵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고 말았다.
그리고 제네바합의서와 관련하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합의서가 미국에게 너무 많은 짐을 부과함으로써 미국이 경수로 및 중유 제공의무를 회피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2000년을 전후하여 국제유가의 상승으로 인해 연간 중유 제공비용이 종전의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수준으로 오른 것도 미국이 대북 중유제공을 기피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제네바합의서가 미국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안겼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약속을 이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장밋빛 희망을 주고 그 약속의 불이행으로 인해 제2차 핵대결의 부담을 다음 정권에게 떠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위와 같이 1994년 제네바합의서는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가 결여된 상태에서 미국에게 너무 많은 재정적 부담을 부과함으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끝내 미국이 의무를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향후 북·미 양국이 체결할 합의서는 1994년 제네바합의서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다.
우선 형식면에서도, agreed framework 같은 모호한 형식이 아니라 국제법적 구속력을 분명히 갖는 합의서나 협정의 형식을 띠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각 당사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고자 한다면 관련 시설을 폐기하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 합의를 끝까지 이루어야 할 것이고, 북한도 한반도 및 인근 지역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미군의 핵과 관련하여 자국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다 해야 할 것이다.
제네바합의서보다 훨씬 더 충실한 내용의 합의서가 도출되지 않으면 제3차 핵대결을 방지하기 힘들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하고 명확한 합의서를 도출하는 것이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6자회담의 속도를 조절하는 원동력은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라는 장기적 고려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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