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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준 촬영
연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요.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러한 식물적인 특성이 다양한 상징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연은 그 크기와 아름다운 색과 맛과 독특한 향기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림의 소재로서 연꽃은 모란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란이 꽃 가운데 왕이라면, 연꽃은 화중군자라고 할 수 있어요.

박물관에 가보면 연과 관련된 유물이 대단히 많습니다. 미술사학자 강우방 선생님은 한 저서에서 고대미술뿐만 아니라 근대에 이르기까지 연꽃과 용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면 한국미술사의 줄거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미술 속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 중 연과 관련된 문양이 가장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특히 불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사찰에서는 부처나 보살을 안치하는 대좌(부처·보살 또는 천인·승려 등이 앉거나 서는 자리)를 연꽃으로 장식합니다. 그래서 연화대라고 부릅니다. 특히 불상의 대좌로 사용되는 것은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혼탁한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고 세상을 구제해주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외에도 불전을 구성하는 불단과 천장, 문살, 탑, 부도, 외벽, 기와, 암·수막새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담장까지도 연꽃이 장식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연꽃만큼 내밀한 불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드물지요. 연꽃은 불교의 정신세계와 신자들의 부처를 향한 신앙심을 짙게 투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연은 '물'에서 싹트고 꽃핍니다. 엄마의 자궁이 그러하듯 모든 생물체는 물에서 시작되고 물과 관련되지요. 물이 가진 우주창조와 빛과 생명의 상징성이 곧 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불교와 관련해서 폭넓은 상징체계를 이룹니다.

극락정토를 향해 피는 꿈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극락세계로 가서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해요. 그래서 만개한 연꽃 위에 보살과 동자가 앉아 있는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이것이 모두 연화화생의 상징 때문이에요.

이승에서의 번뇌와 집착을 벗고 극락정토(불교에서 이르는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정토. 더없이 안락하여 즐거움만 있다고 함)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불자들의 공통된 소망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모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연꽃이 그 모태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청정한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내는 연꽃은 또한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손에 활짝 핀 연꽃이나 연꽃봉오리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은 보살의 청정과 무염 또는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좌를 연꽃으로 장식하는데요. 보통 여덟 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팔엽 연꽃문양은 불교의 신앙체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불법의 진리는 팔엽을 가진 연화의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고 해요. 그래서 불상이나 탑등이 팔엽연화 가운데에 앉게 됩니다.

이제부터 불상이나 석탑을 보게 되면 진짜로 연꽃이 있는지, 과연 여덟 장의 꽃잎인지 확인해 보세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기에 나타나는 연꽃은 불법을 상징합니다. 범종과 풍탁, 금고 등을 연화문으로 장식하는 것은 연꽃의 중심부분을 쳐서 불법의 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그 은은한 소리가 퍼져나가 불법이 전파되어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비유이기도 해요.

불교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경전 가운데 하나인 <묘법연화경>에서는 불법의 근원적인 가르침을 연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불교와 도교, 유교까지 모두 끌어안은 꽃

ⓒ 유연준 촬영
이렇듯 연꽃은 단연 불교의 꽃입니다. 그렇지만 도교에서도 신성한 꽃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천도를 먹고 선녀가 되었다고 하는 신선은 항상 연꽃을 들고 다닙니다. 이때 연꽃은 고결함과 선의 경지를 상징합니다.

모란을 이야기하면서 주돈이의 '애련설'의 한 부분을 소개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이 시는 원래 모란에 대한 시는 아니에요. 다만 시 안에서 모란이 부귀와 풍요를 가리키는 대목이 있어 인용한 것입니다. 사실 '애련설'은 제목처럼 연꽃을 찬미한 것입니다.

애련설

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 때 대학자로 추앙받는 주무숙도 "국화는 꽃 중에서도 세속간을 떠나 숨어사는 은둔자와 같다, 모란은 부자나 귀인과 같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연꽃은 학덕이 높은 군자와 같다"라고 하여 연꽃을 때 묻지 않은 군자에 비유하여 칭찬하고 있습니다.

진흙에서 나와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모습을 세속에 물들지 않는 청아하고 고고한 모습을 간직한 군자에 비유한 것이지요. 이처럼 연꽃은 불교사상을 상징할 정도로 불교의 대표적인 꽃으로 치지만 유교에서도 불교 못지않게 군자의 꽃으로 찬양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옛 그림에서 '연꽃'을 읽다

옛 선비들은 연을 심고 가꾸며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고사관수도로 유명한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연 기르는 기쁨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벼슬을 버리고 강호를 소요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공무의 한가한 틈에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향기 진한 연꽃과 그림자 뒤척이는 줄이나 부들을 대하거나, 작은 물고기가 개구리밥과 수초 사이로 뛰노는 광경을 만날 때마다 옷깃을 풀어헤치고 거닐거나 노래를 읊조리면서 노닌다면, 몸은 명예의 굴레에 묶여있지만 마음은 세상사에서 벗어나 노닐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연꽃만을 그린 고운 채색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궁중의 장식병풍으로 제작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고급스럽고 화려한 채색화조화가 민간에게 까지 퍼져 나가 민화) 화조로 이어져 크게 유행하게 돼요. 민화의 소재로 나타나기시작하면서 연꽃은 모란과 더불어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소재로서, 불교와 관련이 없이도 길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또한 연의 독음이 같아서, 즉 연꽃의 연(蓮)자가 이어진다는 뜻의 연(連)과 독음이 같아 '連'자를 써야 할 곳에 대신 연꽃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연꽃그림은 꽃이 피면서 꽃 안에 열매가 동시에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이어서 태어난다는 연생의 의미로 연생귀자라고 해요. 연달아 아들을 많이 낳길 바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죠. 화병에 연꽃이 꽂혀 있으면 득남기원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한 연꽃의 열매가 많다는 점에서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연밥에 촘촘히 박힌 연자, 연실은 아들형제가 많은 것을 상징하며 풍작과 풍요를 기원합니다. 농경시대에는 힘이 센 아들이 많아야 농사를 잘 지었을 테니까요.

연꽃은 또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연밥 속에 들어있는 연자를 재물로 바꿔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연꽃과 갈대가 만나면 시험 합격?

ⓒ 유연준 촬영
그림 안에서 연꽃과 함께 종종 갈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대의 한자어는 '노(蘆)'입니다. 노는 발음이 로(路)와 같으므로 갈대를 하나 그리면 일로가 되고 여기에 연밥, 즉 연과가 결합하면 '일로연과(一蘆蓮果)'가 됩니다.

이것은 '일로연과(一路連科)'와 음이 같지요. 이 말은 단 한번에 문무과 과거 시험에 합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때론 갈대 대신 백로가 대신 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갈대와 백로 모두 그려지기도 하구요. 일로연과는 사대부 가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었겠지요.

다른 한편 연의 자연적 생태에 착안해 그린 것으로 연꽃 그림을 본고지영(뿌리가 굳으면 가지가 번성한다)으로 읽는 것이 있어요. 연의 생태를 보면 비록 뿌리는 더럽고 탁한 진흙 속에 몸을 담고 있을지라도, 거기서 난 잎과 꽃은 깨끗하고 화려하므로 '부모가 궂은 생활을 견디며 치가함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연을 뿌리째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뿌리가 퍼지면서 마디마다 잎과 꽃이 자란다는 점에서 화합과 화목으로 집안이 번성하기를 축원하는 뜻을 담고 있는 경우지요.

연꽃과 연잎이 군자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데도 불구하고, 연뿌리만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이것은 연뿌리의 형태구조에서 얻은 우의 때문인데요. 연뿌리가 겉에서 보기에는 잘록 잘록 끊어져 있으나, 그 속에 구멍은 계속 관통되어 있거든요. 이처럼 형제는 비록 다른 몸으로 되어 있으나, 그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정이 흐르고 있다는 형제애를 뜻합니다.

우리가 연뿌리라고 부르는 부분은 사실은 연의 땅 속 줄기에 해당하고, 잘록한 부분에 난 털 같은 것이 실제 뿌리래요.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사실 이전에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여 이를 음미해 가며 살던 선조들의 진지한 생활에 새삼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에 대해서도 격을 부여하고 의미를 구하는 태도는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우리들이 반드시 찾아 간직해야 될 귀중한 유산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겠지요.

이번 여름에는 연꽃이 등불처럼 피어있는 연못에 가서 꽃피는 것을 꼭 보려고 해요.

덧붙이는 글 | 허균의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우리민화읽기>, 윤열수의 <민화이야기>, 조용진의 <동양화 읽는 법> 등을 참조·인용 했습니다.


#한국미술#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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