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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싱겁게 끝났다. 6개 정파 원내대표가 개헌발의 유보를 요청했고, 청와대가 조건부로 받아들였다.
'갈 데까지 가보자'던 기세는 '가봤자 별로'라는 태도로 바뀌었다. 이렇게 태도가 돌변한 데에는 '가면 손해'라는 계산법이 작용했다고 한다.
개헌안을 발의해봤자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발의를 강행하고 이에 동조하면 잃는 게 많다. 청와대는 부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안아야 하고, 열린우리당은 또 다시 분열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그럴 바에는 한미FTA 협상 타결 이후 조성된 호의적인 여론을 유지하는 게 낫다.
언론의 분석은 이렇다. 열린우리당은 앓던 이를 뺐고, 청와대는 울고 싶던 차에 뺨 맞은 꼴이라고 한다. 토를 달 게 없다. 다른 점을 짚자.
6개 정파 원내대표가 만든 합의문에 이렇게 적혀있다. "개헌문제는 18대 국회 초반에 처리하기로 한다." 주목하자. '4년 연임제 개헌'이 아니라 '개헌문제'다.
6개 정파 원내대표가 왜 이렇게 모호한 표현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일각에서는 차후에 발을 배기 위해 일부러 모호하게 표현했다고 분석하지만 실상은 알 수 없다.
알 필요도 없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되묻자. 이왕 18대 국회로 넘길 것이라면 원 포인트 개헌에 국한할 이유가 뭔가? 그럴 이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직접적인 이유는 상황 때문이었다. 대선과 총선이 맞닿아 있는 시기적 특수성, 대선 이전에 개헌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적 촉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18대 국회로 개헌안 처리를 넘긴다면 이런 특수상황은 더 이상 고려할 필요가 없다. 굳이 원 포인트 개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포괄 개헌을 모색하는 게 맞다. '4년 연임제 개헌'이 아니라 '개헌문제'를 처리하는 게 옳다. 6개 정파 원내대표가 합의한 '개헌문제 처리'를 자구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구대로 실천하라고 압박하면 된다.
다수의 언론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17대 국회의 약속을 18대 국회가 지키겠느냐고 묻는다.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이다. 국회의원은 가도 정당은 남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지만 이 또한 미지수다. 대선 때마다 재건축을 해온 게 바로 우리 정당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국회 결의로 개헌추진기구를 만들면 된다. 외부 인사 중심으로 개헌추진기구를 만들고 여기에 권한을 부여하면 된다. 그러면 이 기구가 17대 국회와 18대 국회를 잇는 가교가 될 수 있다.
기술적인 측면만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포괄개헌을 할 것이라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두루 수렴하고, 전문적인 검토도 병행해야 한다. 개헌추진기구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은 필수다.
청와대가 그랬다. 각 정당이 차기 국회에서 개헌을 하겠다는 것을 당론으로 결정하고, 정당간 합의를 통해 국민들에게 책임있게 약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노무현 대통령이 정당 대표들과 개헌 일정과 내용을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청와대의 이런 입장엔 전제가 깔려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발의하려는 개헌안이 바로 원 포인트 개헌안이란 점이다. 그렇기에 검토와 연구, 조정 절차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사실상 결단만 하면 되는 단순사안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정당간 정치협상을 운위하는 것이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처리해야 할 개헌안이 포괄안이라면 애기가 달라진다. '개헌 내용'을 놓고 정치권이 노무현 대통령과 협상할 게 아니라 개헌추진기구가 국민과 대화하는 게 우선이다.
물론 그 전단계로서, 대통령과 정치권이 "개헌 일정"을 확정하는 '협상'은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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