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 ⓒ 후마니타스 제공

2004년 8월 5일 오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그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 간헐적으로 전화통화를 했지만 그것도 세월의 길이만큼 드물어졌다. 그 후 3년.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를 통해 다시 그를 봤다. 여전히 깊은 인상. 표정은 묵직했다. 한동안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3년 전 그가 떠나던 인천공항 출국장은 마지막까지 평탄치 못했다. 그를 초청했던 정부기구에서 10개월 만에 되돌아가는 독일행 비행기표를 제대로 마련해놓지 않아 부인 정정희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항의하던 표정이 아직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송두율(63) 교수. 2003년 9월, 37년 만에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찾아온 송 교수에게 한국정부는 수갑을 채운 뒤 포승줄로 묶었다.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와 국정원을 오가며 출퇴근 조사를 받던 송 교수는 그해 11월 구속돼 8개월 동안 재판받았다. 사람들은 이 재판을 '제2의 드레퓌스 사건'이라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조중동 보는 사람 70%, 그 결과는 비참"

11일 오후 전화로 다시 만난 송 교수의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천식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는데 최근에는 꽃가루까지 날리는 통에 부쩍 힘들어져 주사까지 맞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3년 전과 다른 느낌이었다. 부활절 방학이 끝나 다시 뮌스터로 내려가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송 교수와 30분 동안 전화로 인터뷰했다. 오랜 단절의 느낌은 사라지고 반가운 만남이 이어졌다.

송 교수는 "이른바 '송두율 사건'은 매우 시끄러운 사건이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 속에서 모두 사라졌다"며 "어떤 식으로든 내가 먼저 이야기를 풀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미완의 귀향 그 이후>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이어 "국가보안법이 그저 단순한 법 하나가 아님에도 왜 철폐되지 않는 것인지, 답답하다"며 "사람의 행동이나 도덕, 사고까지 모든 체계를 규정해서 결국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교수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한국 사회 발전에 역효과를 주고 억제하는 데 가장 앞장서 있다"며 "그런데도 이 신문을 보는 국민이 70%나 된다니… 그 결과는 비참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무엇보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실질적인 반북환원주의를 들이대고 잘못된 비교수준을 자꾸 제공하면서 모든 것을 사회주의다, 빨갱이다, 친북이다, 친일보다 친북이 나쁘다는 식으로 매도하며 아직도 사회발전을 오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송 교수는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 해도 겁낼 일이 아니다"라며 "역사를 길게 보면 정권교체는 당연한 것이며 문제는 평화체제나 남북관계, 통일을 대비한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따라서 올해 대선에 '올인'하지 말고 대범하게 큰 판을 그리며 5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송 교수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정적으로 뛰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성에 빠지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영원히 굳어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은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또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다음은 송두율 교수와 나눈 인터뷰 전문.

송두율 교수.
송두율 교수. ⓒ 후마니타스 제공
- 2004년 8월 5일 출국한 후 처음으로 책이 나왔다. 책을 내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가 참 빠르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이른바 '송두율 사건'은 참 시끄러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기억에서 사라졌다. '기억의 문화'랄까. 물론 이것이 한 인간이나 한 사회를 망령처럼 억누르면 곤란하지만, 아예 '기억의 문화'가 없는 것도 문제다. 내가 독일로 돌아온 후 한국에서 백서나 영화 <경계도시>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먼저 이야기를 풀어야하지 않나 생각했다. 물론 아직도 그때 충격을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또 아직도 내 자신이 한국 사회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그 거리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결국 내가 먼저 정리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당초 백서를 통해 모든 기록을 남기고, 나는 그저 <서울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중심으로 책을 내려 했다. 그런데 이것은 고통을 건너뛰는 기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함께 독일에 온 박상훈 박사와 얘기가 잘 돼서 책을 내게 됐다. 박 박사를 비롯한 출판사 분들이 1주일 동안 우리와 머물면서 기록하고 녹음한 내용을 정리했다. 다른 어떤 책보다 교감이 깊이 있게 진행된 책이라는 생각이다."

진보지식인의 위선 그리고 고발

- 책에서 이른바 '송두율 사건'에서 나타났던 진보진영의 이중성을 지적했는데.
"원래 그게 주목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화두를 꺼내고 전개하다보니 그렇게 된 면이 있다. 그 당시 선의로 나를 초청한 사람도 있고, 또 여러 사람들이 이 사건으로 충격받기도 했다. 또 그 충격의 장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말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충격의 장에 뛰어들어 나와 우리 가족,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갈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하며 행동의 장에 나섰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2004년 겨울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단식했던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런 분들의 투쟁과 노력이 정치판에서 무력화되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국가보안법이 그저 단순한 법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다 잘 알지 않나. 일종의 레짐 즉 체계다. 법을 넘어 사회 구성원의 행동거지, 도덕, 사고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체계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너무 피상적으로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일부에서는 내가 와서 '죽은 국가보안법을 꺼낸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국가보안법이 그냥 법이 아니라 모든 의식세계를 지배해온 법이라는 것을 진보진영이 잘 알고 있으니까, 스스로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까지 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 한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이 좀체 불붙지 않는다.
"또 다시 지하실에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87년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법이 있다는 것은 의식체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는 국가보안법 테두리, 그 체제 안에서 통제받을 수밖에 없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밖에 없고. 너무 간단히 법 환원주의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올해 정권이 바뀌면 어떤 상황이 될지, 그건 또 모르지 않나."

- 이번 책에서도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언론의 변화가 가장 늦은 것 같다. 87년 체제 이후 한국 사회에서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게 언론이라고 본다. 87년 체제는 정치사회에서 상당히 권위주의를 마멸시켰다. 정치적 권위주의를 없애는 긍정적인 과정이었는데, 그 이후에 경제사회 분야에서는 IMF 세계화 과정에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민주화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이 많이 흔들린 것을 느끼고 있다.

언론이 빈부문제, 부동산문제를 언급하면 곧장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3불 정책도 사회주의 발상, 개정된 사립학교법도 사회주의적 발상…. 우리 사회가 정치사회에서는 권위주의가 없어지고 안정돼가지만, 경제사회에선 역시 옛날의 시각으로 냉전적 시각이 여전하다. 유치한 수준이다.

내가 자주 칼럼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국유화와 공유의 개념도 구분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토지나 부동산 문제를 보면 정말 그렇다. 한국 사회 발전에 역효과를 주고 억제하는 데 언론이 가장 앞장서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조중동을 보는 사람들이 국민의 70%라고 하니, 그 결과는 비참한 것이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읽을 게 없어 조중동을 봤는데,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썩은 내 나는 신문'(<오마이뉴스> 2004년 7월 22일자 참조)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상황 그대로, 논리에도 못 미치는 논리를 이해관계 중심으로 전파하고 있다. 실질적인 반북환원주의다. 잘못된 비교수준을 자꾸 제공하면서 모든 것을 사회주의다, 빨갱이다, 친북이다, 친일보다 친북이 나쁘다는 식으로 매도하면서 아직도 사회발전을 오도하고 있다."

뉴라이트, 왜 네오콘이라 커밍아웃하지 않나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씨. ⓒ 후마니타스 제공
- 이번 책에서 한국 사회의 뉴라이트가 미국의 네오콘과 같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뉴라이트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네오콘과 가장 가깝다. 뉴라이트는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독일에도 있다. 타이틀을 뉴라이트라고 한 것은 과거 보수, 반공보수, 맹목적 보수와 차이를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새롭고 신선하다고 주장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유주의에 대한 기초도 없다. 심지어 남의 인권(을 존중하고), 적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며 그들이 하는 행동까지 인정하는 것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기본 아닌가.

그런데 기본적으로 재벌경제를 눈감아주고, 반자유주의적 현실에 대해서는 엉뚱하게 다른 소리를 하고 모든 것을 반북으로 환원하는 점에서 과거 보수와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뉴라이트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친일보다 친북이 나쁘다'고 했다. 결국 반북환원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여기 독일 뉴라이트도 인종주의가 심하며 민족주의를 상당히 강조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뉴라이트와 개념이 다르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일본, 미국과 호흡을 맞추는 게 갈 길이라고 하는데 여기 독일 뉴라이트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 마디로 문화도 없는 저급한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 차기 대선에선 뉴라이트 계열인 한나라당 집권이 우세하다고들 한다. 차기 대선, 어떻게 전망하는가.
"너무 멀어서 현실감각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 해도 겁낼 일이 아니다. 역사를 길게 보면 정권교체는 당연하다. 문제는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화 흐름에서 한국 경제, 통일, 남북관계, 평화체제 유지, 동북아 문제 등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그 바탕 위에서 5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올해 대통령선거, 보궐선거에 '올인'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범하게 큰 판을 그리기 위해 고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 2·13합의 이후 북미관계정상화를 비롯해 한반도 평화체제로 곧 이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는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직결돼 있다. 6자회담이 발전적으로 이뤄지면 평화체제까지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생길 수 있다.

유럽연합 통합과정을 보면 동북아와 유럽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EU가입으로 모두 27개 국가가 EU에 가입했다. 그중 트리오랄 수 있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 세 나라가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옆에 있는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동유럽의 작은 나라까지 모두 함께해야 하는 상황이다. 몇 나라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동북아는 상황이 다르다. 거대한 중국이 있고, 세계경제 넘버2인 일본도 있으며, 미국과 러시아도 있다. 거대 국가들이 한반도 주변에 포진돼 있다. 이런 걸 생각하면, 남북이 지혜를 모아 활동반경과 영향력을 넓히는 체제를 짜야 한다.

그래서 난 진보진영이 대선에 연연할 게 아니라고 본다. 큰 그림 속에서 남북 평화체제 수립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북미관계가 해결되면, 바늘과 실처럼 북일관계는 따라올 것이다. 이번 북미관계 해빙이 해방 후 60년 동안 비정상적이고 불안했던 관계가 최초로 안정되는 정상화 단계로 접어드는 초기 단계가 아닌가 싶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평화체제 수립을 갈망하고 헌신하는 세력이 프로세스를 견고히 하는 쪽으로 판을 만들어놔야 한다. 남북정상회담도 단기적으로 보지 말고 프로세스로 강화시키고 촉진해야 한다. 국제관계가 한반도에 버거운 구조라는 것, 이런 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평화체제를 빠른 속도로 진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송두율 교수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시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송두율 교수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시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 후마니타스 제공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까닭

- 한국을 떠난 지 3년인데, 다시 안 오나.
"한국이 정치사회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안정되면 공간이 열릴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말하면 중도통합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정치·지역·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하나로 통합하는 지적인 노력과 정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책 제목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다. 제목을 '미완의 귀향'으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씁쓸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미완성교향곡은 어떤 면에서는 완성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 미완성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작곡가들이 악장부터 여러 갈래로 만들어봤지만, 역시 원래 느껴지던 음색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미완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지속되지 않는 미완이 아니라, 지속되는 미완이어야 한다. '그 이후'라고 붙인 것은 앞으로도 진행되는 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책 가운데 '경계인의 비망록' 마지막 대목에 이런 글이 나온다. "2003년과 2004년의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여름 동안 그 시끄러운 굿판을 벌여온 네 마리의 원숭이-국정원, 공안검찰, 썩은 내 나는 신문, 그리고 위선적인 지식인-의 벌거벗은 모습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다섯 번째 원숭이, 즉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시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가슴을 울리는 말인데, 이 다섯줄을 통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뭔가.
"달리 생각한다는 것은 발상을 달리 한다는 것이고, 새 세계를 향해 열정적으로 뛴다는 것을 말한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 원숭이는 그저 지켜진 룰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고. 멍청이 짓을 하는 관성에 빠지지 말고 한 번은 자신에게 의문을 던져, 영원히 굳어 변할 것 같지 않은 것을 변화시키는 그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말이다.

칼 마르크스의 말처럼 이 세상에 영원히 굳은 것은 없다. 항상 변화한다는 것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룩된다. 그래서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 고통스럽다. 다함께 움직여 함께 변화하면 참 좋은데, 늘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