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만 두는 것이 경제적으로 낫겠다 싶기도한데 정리하자니 그동안 투자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하고…, 그만 둔다고 딱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지난 5일 찾은 전남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양돈농장 단지. 마을에서 돼지 1000여마리 이상씩을 기르고 있는 여덟 농가가 집단 단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정부는 지난 2일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직후 "가장 큰 피해는 농업분야"라고 하면서도 "양돈농가들은 큰 피해가 예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돈농가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불안감은 '존폐'를 고민해야 할 만큼 컸다. 기자의 질문에 정아무개(43)씨는 한숨만 쉬면서 좀체 입을 열지 않고 먼 산만 바라봤다. 담배를 한 대 피우던 정씨는 "지난해 축사에 불이 나서 이제 겨우 복구해 놨는데 한미FTA 체결 소식을 들으니깐 죽을 지경"이라며 "미국산 돼지와 우리 돼지는 생산 비용부터가 경쟁이 안된다, 싼 미국산 삼겹살이 들어오면 가격 경쟁이 도저히 안된다"고 체념하듯 말했다.
'예상보다는 차분한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차분이 아니고 그냥 멍하다, 폐업보조금도 어떻게 줄지 모르지만 빚이라도 없어야 그만 두기도 쉬울 텐데 그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삼중고에 시달리고 샌드위치될 것"
양돈산업은 농업 부문 중 그 생산액에서 쌀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문으로 지난 2002∼2004년 평균 2조4978억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추정치·양돈협회는 연평균 3조8000억여원으로 추정)에 이르며 축산분야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또 국내 육류 소비량의 50%가량이 돼지고기가 차지할 정도다. 양돈농가 수는 1만3000여호로 한우농가 수(20여만호)에 비해작다.
한국은 그 동안 돼지고기에 대해 22.5%(냉장육)∼25%(냉동육)의 관세율을 적용해 왔다. 그러나 한미FTA 타결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부위인 삼겹살·갈비·목살(냉장육)은 10년에 걸쳐 관세를 폐지하고 세이프가드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 도체와 이분도체 등 냉장육과 냉동육·식용설육·돼지고기 가공품 등은 2014년 1월 1일부터, 소시지는 5년 후 관세가 폐지된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에서 1500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임중기(57)씨는 "정부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모두 한우농가에만 신경쓰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하다"면서 "왜 양돈농가의 피해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도 안쓰고 느긋한지 모르겠다, 농가 수가 적다고 무시하면 안된다"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양계 등 축산업만 35년 째인 임씨는 "전두환 시절에는 소를 키우다가 미국 쇠고기 폭탄을 맞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생산비는 높고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가격경쟁력에서 도저히 미국산에 견디낼 수 없다, 줄 도산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1500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박병섭(50·전남 함평)씨도 "함께 양돈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한숨만 쉬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 비해 생산원가가 높은데 원료자체가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배합사료 값이 옥수수 가격 상승으로 올해만 해도 벌써 3번이나 올랐다"면서 "생산비는 오르는데, 지금까지는 괜찮았던 가격하락은 뻔하다, 불안심리 때문인지 벌써 1Kg당 600원정도가 떨어졌다"고 우려했다.
신규태(59·전남 무안) 전남양돈협회 회장은 "양돈농가로서는 이번 한미FTA 타결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쇠고기 가지고만 이야기하면서 상대적으로 관심있게 보지 않았던 양돈산업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대처했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5년 이내에 5000여 농가는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돈 피해는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정부의 다소 대소롭지 않다는 예상에도 양돈농가들이 존폐까지 언급하고 나선 것은 한국 양돈산업이 현재 처한 경쟁력 부실에 원인이 있다. 양돈업계는 ▲국제 옥수수 가격 상승에 따른 사료 비용 상승(미국 : 한국 대비 마리 당 생산비 68%∼51%) ▲생산성 저조(폐사율 18%) ▲수입육 가격하락에 따른 소비층 이동 ▲값 싼 미국산 쇠고기 수입시 돼지고기 소비층 이동(소비성향·교차탄력성) 등으로 3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도 생산비와 가격에서 경쟁력이 부족한데 돼지고기와 교차탄력성이 강한 미국산 쇠고기가 대량 수입될 경우, 가격 하락은 물론 소비층을 쇠고기 부문으로 잃게돼 이로 인한 간접피해도 크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부위인 삼겹살·목살의 경우, 가격경쟁력에서 한국산 대비 미국산 가격은 1Kg 당 각각 32%, 38%에 그치고 있다.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가 완전철폐될 경우 가격 차이가 더 크게 나고, 수입육의 가격 하락이 한국산 돼지고기 가격 역시 동반 하락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쇠고기·돼지고기 관세철폐시 최고 1조원까지 피해예상"
한미FTA 타결 직후 정부는 "돼지고기 수입은 이미 상당히 다변화되어 있어 한미FTA 체결로 인한 피해액이 높지 않을 수 있다"면서 "특히 냉동삼겹살의 경우 미국산보다 가격이 높은 필레나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 미국으로 수입선이 전환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피해액 추정은 연구기관과 연구자, 분석 근거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피해 예상(관세 즉시 철폐시)액을 단순 열거하면 2500억원에서 1조여원까지 차이가 크다.
최세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8월 농림부 주최 '한미FTA 농업계 대토론회'에서 '주요 농산물별 파급영향 및 민감품목 선정 방향'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하면서 "돼지고기의 경우 관세가 철폐되면 수입가격은 18∼20% 하락하고, 이로 인해 국내시장 가격은 평균 4.8% 내려가는 한편, 생산액 감소는 2000억∼2500억원(평균 23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김민경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지금 당장 피해 규모를 세밀하게 분석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양돈산업만 감안했을 경우(직접 피해)가 최대 4000억원까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김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돼지고기 관세가 완전철폐 될 경우, 미국산 쇠고기와 한국산 돼지고기의 교차탄력성(0.10∼0.20)에 따라 국내산 돼지고기 가격이 16.97∼22.38% 하락해 최소 8200억여원∼최대 1조800억여원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돼지고기 보다는 쇠고기를 더 선호한다"면서 "우리의 경우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교차탄력성이 상당히 높아서 싼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올 경우 양돈시장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축산경영학회는 한우농가 피해를 연간 1조원 정도로 추산하면서 "양돈농가까지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축산업계가 입게 될 피해규모는 2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헤럴드경제 참고).
지난 2002년 이후 돼지고기 수입량이 꾸준히 늘면서 2005년 자급율이 82%에서 지난해에는 77%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그 만큼 수입육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지 가격과 소비량 등은 소폭 상승했다. 이는 미국 광우병 발생, 지난 2003년 돼지 구제역 발생 등 여러 요인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정부는 한미FTA 타결과 관련 지난 2002부터 2005년까지 돼지고기 총수입량 대비 EU(유럽연합)가 평균 42.2%, 캐나다 23.8%, 미국 16.2%로 나타났다는 통계자료를 소개했다. 미국산 돼지고기 비율이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가별·연도별 수입량 추이를 보면 다른 현상을 볼 수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무역정보에 따르면, 돼지고기 총수입량은 지난 2002년 13만1000여톤에서 2006년에는 33만3000여톤으로 3배 가량 늘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수입량이 6배, 칠레는 10배 늘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수입량이 큰 폭으로 늘었으며, 지난 2002년 1만7000여톤(13.16%)에서 2006년 8만7000여톤(26.1%)으로로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덴마크 등 EU 4개국의 점유율은 2002년 4만3500여톤(33.14%)·2005년 7만5000여톤(27.04%)·2006년 8만1000여톤(24.43%)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최세균·김윤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칠레FTA 이행 3년 농업부문평가' 자료 참고).
세이프가드 실효성 있나... 양돈협회 "뜯어보면 별 의미 없다"
정부는 냉장육에 대해 10년 후 관세 철폐 대신 세이프가드 조치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그 피해를 줄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돈농가들은 "내용을 뜯어보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까지 세이프가드 발동 기준 수입량과 발동시 관세 부과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대한양돈협회에 따르면 냉장육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기준 수입물량은 1년차 8250톤을 시작으로 매년 6%(복리적용)씩 기준 물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1만3938톤까지 늘릴 예정이다. 발동 적용 관세율은 1∼5년차에는 100%, 6년차부터는 70%을 적용(매년 5%씩 감소)한다는 것이다. 냉동육은 세이프가드 대상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이병석 대한양돈협회 홍보과장은 "세이프가드 조치를 제대로 시행해서 피해를 줄이려고 했다면 냉장육이 아니고 냉동육에 적용해야 한다"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한양돈협회의 수출입 현황 자료에서 냉장육과 냉동육 수입 비율에서 그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수입량 중 냉장육 비율은 2004년 2.21%·2005년 3.67%·2006년 4.80%로 늘어나고 있지만 미비하다. 결국 지금의 냉장육 수입량 추세라면 세이프가드의 효과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과장은 "쇠고기 쇠고기하면서 돼지고기 협상은 끼여넣는 식으로 너무 쉽게 내 준 것"이라며 "육류 전체 소비량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돼지고기 시장을 이렇게 협상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양돈협회는 이와 관련 "한미FTA 체결로 1000두 이하 중·소농가 등 50%에 가까운 농가가 몰락할 것"이라며 "FTA 체결은 양돈산업을 구조조정하려는 정략적 시도이자 생존권을 위협해 양돈산업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며 국회 비준 저지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인들이 선호하고 가격경쟁력(미국 대비 3배 이상 낮음)있는 안심 등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한국산 돼지고기의 수출 길은 꽉 막혀있다. 지난 2003년 구제역 발생 이후 수출이 금지됐다. 미국과의 수출입 교차비교에서 손익계산서를 작성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농림부 한 관계자는 "아직 미국측에 작업장 위생 상태 등에 대한 동등성 평가를 못받았다"며 "일본 역시 수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질병 예방 주사를 놓으면 항체가 생기는데, 이것이 예방접종에 의한 것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확실치가 않다"고 했다.
생산성 증대·고급브랜드화 등 과제
정부는 피해가 예산되는 양돈산업에 대해 폐업보조금 지원, 경쟁력 강화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양돈농가들에게는 "혁명적 대책"은 고사하고 현재 언급되고 있는 정부 대책마저 "지난 10년전에도 읊조려왔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돈농가들은 "폐업보조금, 이런 말 먼저 꺼내지 말고 구체적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정책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그러면서 피해 강구책 등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순의 임중기씨는 "정부가 무책임하게 전업농 육성한다면서 집단화 시켜놓으니깐 사육 환경이 좋지않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친환경 운운하는 것은 현 구조로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돼지고기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생산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소모성 질환 방지대책 ▲친환경 양돈 환경조성 ▲폐사율 하락을 위한 보조금 정책 ▲분뇨처리 전문화 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미FTA 타결로 인한 양돈농가의 피해액 규모에 대한 추정치는 연구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우농가 못지않은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수입 냉동육의 경우 식당이나 학교급식, 병원급식 업체 등에서 대량으로 소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병석 대한양돈협회 홍보과장은 "처음에는 한국 소비자들이 싼 미국산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양돈산업의 경쟁력 상실로 몰락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자급율이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미국이 결국에는 가격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비자의 선택 기준,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돼지고기와 한국산 돼지고기의 교차탄력성이 어느 정도나 드러나느냐에 따라 그 피해 규모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답답하기만 하다"는 양돈농가들에게 농림부를 비롯한 정부가 구조조정만을 유도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