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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도나우(MD) 운하는 바벨탑 이후 인류가 저지른 가장 무식한 사업이다."
운하의 나라 독일의 하우프 전 교통부장관이 했다는 말이다. 독일의 MD운하(일명 RMD)를 찬양하면서 그것을 모델 삼아 경부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명박씨와 그의 추종자들과는 전혀 다른 평가이다. 왜 이런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하우프 전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11일 '21세기 한국의 수자원 보전과 한반도대운하'란 주제로 열린 한국 육수학회 창립 40주년 특별 학술심포지엄에서 소개됐다. 이날 경부운하 반대토론자로 나선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18-19세기에는 토목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증가된 물류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운하 건설이 활발했다. 그러나 철도의 출현으로 운하의 역할은 축소됐고, 도로의 건설은 철도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즉, 교통사적 입장으로 보면 18세기까지를 운하의 시대라고 하면, 19세기는 철도의 시대, 그리고 20세기는 도로의 시대이다. EU-25개국 화물수송 현황(2005년)을 살펴보면 도로 44.3%, 철도 10.0%, 내륙운하 3.4%, 파이프라인 3.3%, 해운 39%, 항공 0.1%를 점하고 있다. 이같은 통계는 운하가 물류운송수단으로는 사양사업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여전히 '제 2의 국운융성의 길'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경부운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이 있다. 우선 운하의 생태 환경과 관련한 양측의 인식차를 보여주는 한 사례를 소개한다. 위의 동영상은 이날 찬성토론자로 나선 조원철 연세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의 6분짜리 발언 내용이다.
미국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새로운 인종 탄생?
조 교수는 찬성토론에 앞서 운하가 건설되면 생태계 파괴가 불보듯하다는 발제자들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생태계를 이야기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한강 물고기가 낙동강 물고기를 만나면 교잡종이 돼서 생태계 파괴'(한강과 낙동강 수계를 잇는 경부운하 사업을 지칭하면서)라고 하는 데, 우리 실상을 들여다 봅시다. 외국인 노동자가 40만명이 넘게 우리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농촌 총각의 40%가 외국인과 결혼했습니다. 농촌 출신 인구의 58%가 소위 혼혈입니다. 미국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새로운 인종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 22세기 환경에 맞는 새로운 리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어류의 교잡종 문제 실상을 말하겠다면서 외국인과의 결혼 문제를 예로 든 조 교수. 찬성론자들의 환경생태적 인식 수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이에 대해 주기재 부산대학교 교수는 "학자 10명만 모였어도 교수님 집에 못가십니다(웃음), (교잡종 관련) 이게 엄청난 사건입니다. 종을 보존하는 게 국가 경쟁력이고 거기서 유전자 경쟁력을 확보하고, 위급할 때 그 종이 다른 종을 땜방하면서 생태계가 돌아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주 교수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 것일까?
난 경부운하 찬성론자들로부터 이런 황당한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가령 최근 독일을 방문했다가 만난 연방수로국 뉘른베르그 지부의 스테파니 텝케 부국장은 "강과 운하는 다르다"고 말했다. 즉, 라인강은 자연하천으로 배가 다니는 수로이고, MD운하의 경우는 인공적으로 판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라인강은 유속이 비교적 빠르고, MD 운하는 배가 다닐 수 있는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갑문을 통해 거의 가둬놓은 정체수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발제자로 참석했던 정동양 교원대학교 기술교육학과 교수는 경부운하의 수질 악화 우려를 일축하면서 라인강의 수질이 좋아졌다는 도표를 들고 나왔다. MD운하를 그토록 강조했던 그가 정작 수질 문제에 대한 반론으로 라인강의 수질을 예로 든 것은 동문서답 아닐까.
더 억지스러운 주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토론회에서 그가 "경부운하에 배가 다니면 스크류가 공기를 물 속으로 집어넣기 때문에 수질이 좋아진다"고 말한 대목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김익수 전북대 생물과학부 교수와 김범철 강원대 환경과학과 교수, 배연재 서울여자대학교 환경생명과학부 교수는 그간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해온 구체적인 데이터와 통계 수치를 제시하면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수질 악화로 인해 생태계와 환경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했다.
이날 심포지엄이 끝난 뒤 정 교수를 만나 "그렇다면 수질이 악화된 댐에 많은 배를 띄우면 수질이 좋아질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한발짝 물러섰다. "수질이 좋아진다기 보다는 스크류가 공기를 주입하기 때문에 수질이 나빠지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물 채우고 퇴적물 제거하면 수질 걱정 끝?
지난 2월 한 토론회에서 정 교수와 같이 '스크류 정화설'을 주장했던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도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제가 수질을 예측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뒤 "수중보를 만들면 수질이 나빠진다고 하는 데, 수질 악화의 더 큰 요인은 적은 수량의 물 속에 퇴적되어 있는 많은 유기물과 토사이다, 그럼 파내줘야 한다, 그리고 물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운하라는 정체 수역 수질, 게다가 국민의 80%가 한강과 낙동강의 물을 먹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의 수질 오염 우려에 대한 답변치고는 엉성했다. 가둬놓은 물 위에 배를 띄우고, 퇴적된 쓰레기를 계속 긁어올리면 수질이 좋아질 수 있는걸까?
물론 정 교수는 이날 강변여과수를 또다른 대안으로 내세웠지만, 이 역시 단순 주장일뿐이다. 유럽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토양에서 가능한 일인지, 기술력은 확보하고 있는지, 그 많은 물을 강변여과수로 충당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간의 '반쪽 토론회'와는 달리 이날 5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심포지엄에서는 경부운하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인사들이 골고루 나와 설전을 벌였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쟁점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술적인 측면이다.
정동양 교수는 이날 '한반도대운하'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그는 ▲바지선이 고저차를 극복할 수 있는 수직 승강기(기계식, 부자형, 유압+공압형)와 절수형 갑문 ▲터널을 통과할 경우 수로나 레일 위에 바지선이 담긴 수조를 싣고 이동하는 방식 ▲건조한 협곡에 소형 규모의 댐을 축조해 소백산맥을 넘는 '하늘 노선'(Sky-Canal) 등을 화려한 영상에 담아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 '하늘 노선'이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지형 조건은 어떠하고, 구체적으로 어느 곳에 설치할 수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예산이 소요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했다. 이런 상태로는 논쟁이 되지 않는다.
또 정 교수는 "한강과 낙동강 구간은 380km이고, 인공 수로는 100km"라며 "자연의 강수로 구간의 평균 설계 속도는 22.5km/h이며 소요시간은 17시간, 인공수로 구간의 설계 속도는 14.3km/h이며 운항시간은 7시간으로 총 24시간내에 바지선이 서울과 부산을 오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80km의 구간도 배가 다닐 수 있는 4-6m의 수심을 확보하려면 현재 우리 하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맨땅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 또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모델로 삼은 171km의 마인-도나우 운하를 배가 통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24시간. 그렇다면 우리는 배의 속도만 높이면 되는 것일까? 즉, 경부운하의 폭은 얼마이고, 몇 m의 수심을 유지하면, 어느정도 규모의 배가 다닐 수 있다는 구체적인 수치와 계산이 결여됐다. 이런 상태에서 경부운하가 '물류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은 공수표에 불과하다.
이날 김진홍 중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경부운하의 공학적 문제점'이란 주제의 발제를 통해 "4년동안 전 구간 공사를 동시에 착수해 운하를 건설한다고 하는 데, 그 기간동안 80%의 국민들은 어떻게 물을 먹을 수 있느냐"면서 "하천수가 아닌 댐 용수로 취수한다고 해도 댐 용수는 공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얘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경부운하=경부고속도로? 평화의 댐이다”
사실 이날 토론은 쟁점이 없이 겉돌았다. 플로어에서 토론을 끝까지 지켜보던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활동처장이 마이크를 들고 이에 대해 한마디 했다.
"우리는 여러 번 (경부운하 찬성측 인사들에게) 정보제공을 요청했고, 토론하자고 제의했는 데 기피해왔다. 그리고 경부운하를 추진하는 분들이 경부고속도로 자주 거론하는데, 전 오히려 평화의 댐과 비교해야 한다고 본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용도가 뭔지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무조건 물폭탄 공포감을 심어준다든지, 막연한 환상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사실상 경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전 시장의 정치적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이젠 그 공약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공개하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토론을 충분히 해야 한다."
하지만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이같은 주장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토론을 기피한 적 없다. 난 토론을 좋아한다. 열려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애를 가지지도 않았는 데 이게 남자아이인가 여자아이인가를 논할 필요가 있는가."(박석순 교수)
"지금 공사비가 17조니, 15조니, 20조니 하면서 자꾸 바뀌는 것을 두고 부실 공약이라고 하는 데 현재는 논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12월 말이 되어서야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다."(정동양 교수)
이 말을 들으니 더욱 황당해졌다. 이명박씨 역시 이 정도의 준비상태라면 경부운하 공약은 즉시 폐기해야 한다. 현실가능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없는 상태에서 '제2의 국운융성‘이라는 장밋빛 환상만을 공약에 채워놓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한다면 유권자인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탑 이후 인류가 저지른 가장 무식한 사업'과 '제2의 국운융성의 길'. 엄청난 차이다. 이같은 상반된 평가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검증하려면 이젠 '일자리 30만 창출' '물류혁명' 등 화려한 수사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계산법이 공개돼야 한다.
이명박씨는 몇 달 전 경부운하 반대론자들을 향해 "수십년간 운하를 연구해 온 학자들이 있다"고 반박하지 않았던가. 그 학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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