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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중인 노래패 '우리나라'의 멤버. 왼쪽부터 백자, 이혜진, 한선희, 박일규, 이광석씨.
ⓒ 함박은영

지하철 합정역 2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노래패 '우리나라'의 강상구(37) 대표는 "찾기 쉬울 거"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노래패 '우리나라'는 14일부터 '우리학교는 우리고향이다'를 주제로 일본 조선학교 순회공연 길에 오른다.

공연을 일주일 남짓 앞둔 9일 '우리나라'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는 강 대표를 비롯해 가수 박일규, 백자, 이광석, 이혜진, 한선희 등 5명의 가수가 둘러앉아 있었다. 기획을 담당하는 지정환씨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테이블 위에 쌓인 서류들을 뒤적이며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회의는 이미 긴 시간 이어진 눈치였다. 강 대표는 "노래 연습과 함께 재일동포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민중가요계의 서태지, '우리나라'

90년대 캠퍼스에서 노래패 활동을 하던 멤버들이 '우리나라'라는 팀으로 모인 것은, 8년 전인 1999년의 일이다. 이들은 2000년 2월 <벗들이 있기에> <행복>등이 실린 1집 음반을 출시, 이후 개인음반과 디지털 싱글을 포함한 11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매년 200회가 넘는 공연을 소화하는 '우리나라'는 국내의 크고 작은 집회 무대에 올라 노래를 통해 사회 문제에 참여해 왔다. 또 '하나 된 우리나라를 꿈꾼다'는 팀의 모토처럼, 4차례 방북해 북한과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국가 보안법 철폐가> <독도는 우리의 땅이다> 등 동시대의 문제들을 통렬히 꼬집는 '우리나라'와 함께 노래했다. 혹자는 '우리나라'를 두고 '민중가요계의 서태지'라고 말한다. 어둡고 전투적인 가사들이 주였던 민중가요계에 완성도가 뛰어난 노래들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노래패 '우리나라'가 재일동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2002년 6·15 두 돌 기념공연차 금강산을 방문해 재일동포들과 첫 만남을 가졌을 때 그들은 가볍게 인사만 나누었다고 한다.

긴 세월 남한과는 벽을 쌓고 살아왔던 재일사회가 남쪽의 노래패인 '우리나라'를 향해 마음을 연 것은 같은 해 10월의 금강산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이 대회는 해방 후 해외청년들이 참석한 최초의 대회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멤버들은 일본 땅에서 '우리말'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사는 재일동포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느꼈다. 그 때문에 효고 지역 청년회 사람들이 일본 공연을 제안했을 때 흔쾌히 응하게 되었다고. 이후 매년 일본 공연을 계속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 공연 때 자신들의 노래는 물론 <고향의 봄> 등의 옛 노래나, 재일동포들이 만든 곡들을 부를 예정이다. 영화 <우리학교>의 주제가를 만든 재일동포 윤영란씨의 곡 <하나> <우리를 보시라> 등도 그 중 하나다.

이들은 긴 시간 동안의 타향살이로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은 동포들을 위해 영상과 자막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노래가 시작되면 공연장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일어나 어깨춤을 추는 사람들로 떠들썩한 잔치판이 될 거라고 말한다.

"삶 속에 38선 있으니 통일 절실할 수밖에..."

▲ 지난해 일본 공연 모습
ⓒ 우리나라
이번 공연은 '우리나라'는 물론 재일사회에도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4월14일부터 22일까지 오사카 고베 등지를 순회하게 될 이번 공연은 재일동포를 응원하기 위해 기획된 자발적인 공연이다.

사비와 후원금만으로 진행되지만, 동북아평화연대가 네이버의 해피빈을 통해 후원하고 영화 <우리학교>의 제작진도 후원에 동참하는 등,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후원이 힘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멤버인 백자(36)씨는 크고 작은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는 공을 영화 <우리학교>로 돌렸다. <우리학교>를 본 관객들의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많은 분들이 후원에 참여해주고 있다고.

지난 3월 31일 <우리학교>를 상영한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우리를 보시라>를 부르기도 했던 이들은 배우 권해효씨의 소개로 영화 <우리학교>의 김명준 감독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우리 학교> OST에도 <하나>라는 곡으로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시가현에서 열리는 공연에는 김명준 감독도 동행할 예정이다.

"재일동포들과의 교류가 무조건 필요하다. 그 안에는 문화적 접근도 포함된다. <우리학교>가 큰 공이 있지 않나. '우리나라'의 역할도 이런 문화적 부분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재일동포의 역사를 언론에서 제대로 조명을 할 필요성이 있다. 왜 그들의 삶이 어려운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나는 조선인'이라는 마음으로 우리말을 하는 순간에 탄압이 들어온다. 일상생활에 38선이 있으니까 통일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재일동포 중 한명'이 아닌 금녀, 순애, 경희"

▲ 지난해 일본 공연 모습
ⓒ 우리나라
노개런티로 공연을 하는 멤버 개개인의 심정도 각별하다. 이혜진(31)씨는 재일동포들의 현실에 아파하면서도 자신이 '노래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에게 재일동포의 탄압은 무심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자신과 만났던 동포들의 얼굴이 생각나는 듯,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말을 이었다.

"'재일동포들'이 아니라, 내가 아는 금녀가 순애가 경희가… 내가 아는 이들이 상처받고 아파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내가 노래 할 수 있어 위안이 된다. 노래로나마 힘이 될 수 있으니까. 공연을 통해 거창한 일을 하겠다기보다, 다시 만나 손이라도 잡고 얘기하고 싶다. 함께 노래하며 힘을 주고, 나도 그들을 보고 힘을 받고 싶다."

강상구 대표는 '공연이 잘 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외면해 왔던 재일동포들은 지금도 예전에도 우리 민족, 우리 핏줄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희생과 정체성을 담보로 일본과 교류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과 함께, 동포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일본 본토에서 조선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버티고 살아오신 분들 아닌가. 대단한 민족성이다. 동포들이 있음으로 간접적으로 '조선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마음으로나마 보상하는 마음으로 공연할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TV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가수들과는 달랐다.

가사 속에 혹은 그들의 말 속에 담긴 현실을 보는 눈은 날카로웠다. 그들은 소리 지르는 대신 '노래'를 선택했다. 그 속에 '진정성'이 담겨있기에. '우리나라'의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이제 어떤 응원가보다 힘찬 '우리나라'의 노래가 일본 속 '우리 학교'에 울려 퍼지게 된다. 이번 공연으로 긴 세월이 만든 벽이 허물어져, 이들의 뜻이 재일사회에 잘 전해지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태그:#인터뷰, #재일조선인, #우리나라, #우리학교, #민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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