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스 캐롤 오츠. 그녀는 아직 국내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목될 정도로 뛰어난 미국 최고의 여류 소설가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고은 시인과 함께 나란히 노벨상 후보에 올라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항간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할 때 대륙별 안배가 고려되는 것처럼 그녀가 아직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이유도 전적으로 대륙별 안배 차원에서 수상이 뒤로 미루어지고 있는 것뿐이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아무튼, 앞으로 미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경우, 조이스 캐롤 오츠가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의 높고 낮음이 문학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되어선 곤란할 것이다. 내가 조이스 캐롤 오츠를 주목하게 된 이유도 그녀의 명성이나 배경 때문이 아니라 안정감과 깊이가 느껴지는 그녀의 문장 때문이었다. 그녀의 작품을 읽다 보면 자꾸만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문장이 밀도 높고 견고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만 해도 그렇다. 문학비평적 요소가 들어 있어서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 마치 기분 좋은 음악을 들을 때처럼 운율이 잘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여기엔 번역가의 솜씨도 한몫하고 있겠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탁월한 역량에 힘입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에선 이상하리만치 그녀의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 <작가의 신념> <좀비> <블랙워터>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단편, 장편, 평론, 에세이, 시 등을 넘나들며 이미 100권에 달하는 책을 출간한 다작(多作) 계열의 작가다. 앞으로 그녀의 작품이 좀 더 폭넓게 소개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조이스 캐롤 오츠가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되돌아보며 젊은 문학도에게 지침이 될 만한 조언을 들려주는 자전적 에세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가 어릴 적 즐겨 읽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든지 애드거 앨런 포 등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만약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좀비>(연쇄 살인마에 관한 실화를 토대로 쓰인 장편소설)란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녀가 어릴 적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읽으며 성장했다는 대목을 의미심장하게 눈여겨 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작가의 신념>) 표지에 찍힌 그녀의 얼굴 사진 역시 다소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의 실제 모습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개인적으로 몇 가지 단편적 지식에 의한 선입견 때문에 잠시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정작 그녀가 쓴 글들을 읽어 보면 더없이 지적이고 따뜻하고 명쾌한 느낌이다. 다만, 그런 밝은 느낌 뒤로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이 드리운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여러 모로 매력적인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엔 총12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12편 모두가 보석같이 빛나는 작품들이다. 그중엔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자전적 에세이도 있고, 예술의 기원을 고찰한 글도 있다. 그리고 12편의 에세이를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는 바로 '글쓰기'와 '작가의 길'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응축시켜 놓은 듯한 유려하고 밀도 높은 문체로 시종일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독자들은 한 편의 에세이 속에서 문학비평, 시, 소설, 신화 등을 모두 접하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때론 문학비평처럼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고, 때론 시처럼 감미롭고, 때론 소설이나 신화처럼 웅장한 서사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문학은 예술이기 이전에 기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이스 캐롤 오츠는 완벽에 가까운 기술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모두 갖춘 탁월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탁월한 스승이 들려주는 가르침이기에 굳이 작가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뭄에 단비처럼 달게 받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책의 일부를 발췌해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보다는 직접 책을 사서 읽어 보는 편을 권하고 싶다. 전체적으로 흠 잡을 데 없이 꽉 짜여진 글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읽었던 여류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작가를 지망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 글쓰기와 작가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가 선배 작가로서 들려주는 조언은 앞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데 소중한 지침이 될 거라 확신한다.
"마지막 문장이 씌어질 때까지 첫 문장은 씌어질 수 없다는 믿음만 가져라. 마지막 문장을 쓰는 오직 그 순간에 이르러서만 당신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이라는 고통의 치유법은 오직 소설뿐이다."(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조이스 캐롤 오츠, <작가의 신념>, 북폴리오, 2005, 송경아 옮김, 239쪽. 가격 9,800원
|
|
작가의 신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송경아 옮김, 북폴리오(200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