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소설가들은 고독을 힘든 여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항상 초년병, 영원히 신인 작가로 살다 죽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학자들이 느끼는 고독은 어떨까. 고독과 고립은 또 어떤 관계일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렇게 답을 내린다.
"고독은 주관적 심리상태인 반면, 고립은 홀로 있는 객관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 펴낸 <고독한 한국인- 중독과 거리두기 사이에서>(인물과 사상사)에서 그는 한국인들의 고독 현상을 거시적으로 분석했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언뜻 보면 한국인은 고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같지만 이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고독한 사람들도 드물다"고 주장했다. 모든 일을 '빨리빨리' 해내느라 정신이 없고, 사람에 치인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각종 연고·정실 문화에 죽고 사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고독을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때론 고독을 견뎌내면서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버릇을 키워야 한다"며 "그래야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소통이 가능해지며 역지사지 능력이 빈약한 것은 '고독한 한국인'의 사회적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강 교수가 펴낸 <고독한 한국인>은 그동안 <한겨레21> <한국일보> 월간 <인물과사상>에 연재한 글 중에서 '고독한 한국인'이라는 주제로 선별한 것을 엮은 것이다. 모두 30편의 글을 제1장 대중의 고독, 제2장 고독산업으로서의 정치, 제3장 대통령의 고독: 노무현 편, 제4장 정치인의 고독: 유시민 편, 제5장 문인의 고독: 이문열 편, 제6장 지방의 고독으로 분류하여 엮었다.
이 책에서도 그는 노무현, 유시민, 이문열 세 사람의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에 큰 관심을 둔다. 물론 지방의 소통부재 현상도 빠뜨리지 않았다. 지방의 고독은 역지사지에 가장 게으른 언론 탓이라는 따끔한 충고가 가슴에 와 닿는다.
강력한 고독과 '주연 강박증' 관계
이 책 서두에선 그가 신문 칼럼에는 담지 않았던 소회를 담담하게 썼다. 노무현·유시민·이문열 세 사람에 관심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피력했다. '그들 모두가 탁월한 능력과 불굴의 투지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지만, 반대자들이 많다'는 점을 한 가지 이유로 들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고독감과 더불어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주연 강박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남의 고독에 대해 말하는 나 역시 고독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건지 모든다"고 커밍아웃한다.
"이 책을 통해 개인적·사회적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힌 그는 또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무현을 지지하는 책들을 썼던 사람으로서 집권 후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에 과거 나의 지지 행위에 대해 평생 무한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고백했다.
"유시민은 '무조건 노무현 옹호'가 자신의 '애프터서비스'라고 주장했지만, 나의 '애프터서비스'는 비판과 아울러 임기를 끝낸 이후에 '백서'를 내는 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 교수는 서두에서 비장하게 밝혔다.
이 책 1장 '대중의 고독'에는 모두 6편의 글이 실렸다. 첫 편 '간판 공화국의 주목 투쟁'에서 그는 "한국은 간판 공화국"이라는 명제를 재차 던진다.
"서울대 총장이 기침만 해도 뉴스가 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아파트 브랜드'를 알리는 대형 광고판 노릇을 하는 걸 긍지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발버둥에 가까운 주목 투쟁을 벌이는 조무래기 간판들만 문제 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간판 공화국'은 신민다운 이해심인가?"
"노 정권의 비극은 무능보다 탐욕"
2장 '고독산업으로서의 정치'의 압권은 '한국인의 정치 중독증'과 '낙하산 태우다 골병든 노무현 정권'이다. 그는 이 장에서 "노 정권의 비극은 무능보다는 탐욕에 있다"고 일갈한다. "대통령부터 전투적으로 옹호한 그 수많은 낙하산 요원들 가운데 개혁은 둘째치고 이렇다 할 미담 한건이라도 만들어낸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 점검해보기 바란다"고 했다. "지금 노 정권에겐 반대편에 대한 분노만이 있을 뿐 낮은 곳에 대한 눈물이 없다"고 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3장 '대통령의 고독'에서는 노무현 리더십과 주변 인물, 평가 등에 대해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미세한 분야까지 들춰낸다. 특히 그는 노무현 정권의 주요 문제가 과도한 고독·고립감에서 비롯됐고 그런 고독·고립감은 피해의식과 과잉대응으로 나타면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4장 '정치인의 고독: 유시민 편'과 5장 '문인의 고독: 이문열 편'에선 두 인물에 대한 과감한 장단점 비교와 날카로운 비평을 가한다.
6장 '지방의 고독'에서 그의 고독학은 불을 뿜는다. '경로(經路)의 저주'에서는 '중앙병'을 질타한다. "국가 경쟁력을 내세워 '경로 강화'에 앞장서고 있는 일부 언론사들이 지방에 있다면, 그런 주장을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그는 "그렇다면, 여론 형성의 '서울 1극 구조'가 경로 강화의 주요 원인은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기초적인 역지사지조차 없는 중앙언론을 비판한 것이다.
허공에 총 쏘는 지방언론... 왜?
지역언론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지방 촌놈들은 당해도 싸다'에서 강 교수는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언론 모니터를 하는 사람들은 지방언론이 지역 이기주의와 더불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를 한다고 비판하지만,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그런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시라. 실명 비판이 없다.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지방 특유의 연고와 정실 때문에 실명 비판을 회피한다."
지방언론이 '허공에 대고 총을 쏘는 겪'이라는 신랄한 비판 이면엔 성찰의 주문도 있다. <고독한 한국인>을 통해 지난 2년간 한국 정치·사회에 대해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강준만의 시각'을 접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이 책 곳곳에서 한국 사회가 늘 시끄러운 이유에 대해 역지사지와 소통의 부족을 원인으로 내세운다. 이러한 현상은 고독감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도 역설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선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해서만 전문가인 한국인은 고독해선 안 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