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2006년 초에 아무런 국민적 토론이나 합의 없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선언했을 때, 그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외부 충격을 통한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요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미국 경제 시스템에 대한 선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많은 한미FTA 찬양론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오늘을 한국의 내일로 삼아도 좋을 만큼 미국 경제 시스템은 우월한 것일까? 미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이에 대한 답으로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특히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및 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NA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한 지난 25년간의 각종 통계는 우리가 FTA와 성장주의라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에 몸을 실기 전에 심각한 숙고를 요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이면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떠오르는 조수는 모든 배를 띄운다(A rising tide lifts all boat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파이가 커지면 나눌 몫도 커진다는 말로, 경제성장론을 예찬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론의 신화는 깨지고 있다. 오히려 미국의 현실은 '떠오르는 조수'가 많은 사람들을 삼켜버리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1980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분의 2가 늘었다. 그러나 임금상승률에서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약간 줄었다고 한다. 또한 소득 수준이 하위 5%에 속하는 최하위층의 가계 소득은 8%, 그 다음 5%에 속하는 가계 소득은 17%가 늘었다.
이 기간 동안 가구당 평균 노동시간이 25%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상위 5%에 속하는 가정의 소득은 59%, 1%에 속하는 가정의 소득은 무려 두 배나 늘었다. 이에 따라 상위 5%의 소득은 하위 5%에 비해 1980년에 6.7배가 많았으나 2005년에는 9.8배로 늘었다.
노동자와 최고경영자(CEO) 사이의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각하다.
1970년 CEO의 수입은 노동자 평균임금보다 약 30배, 1982년에는 42배가 많았다. 이 정도 격차도 심각한데 오늘날의 소득 격차는 300배가 넘는다. 이러한 CEO-노동자간 소득 불평등은 다른 나라에 비교해도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의 CEO와 제조업 노동자 사이의 소득 격차는 다른 13개국의 경제선진국에 비해 두 배나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CEO의 수입이 높은 이유를 CEO가 기업의 실적을 많이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1990년 이후 13년간 기업 이윤이 128% 상승한 가운데 CEO 소득은 313% 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하바드대의 루시안 베드척 교수와 코넬대의 야니프 그린스타인 교수팀이 CEO의 소득과 기업의 규모·이윤·생산을 종합해 분석한 것에 따르면, 미국의 1500개 기업은 2003년 한해에만도 약 87억 달러를 CEO에게 '초과' 지불했다. 여기에는 CEO의 연금이 포함되지 않아 이를 포함할 경우 CEO에 대한 초과 급여 지출은 더욱 높아진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부유한 나라 미국, 가난한 미국 사람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CEO에게 흘러들어가는 수십억 달러의 과도한 지불은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신호를 보내준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 신문은 CEO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보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법적, 제도적 결함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CEO의 급여는 이사회에서 논의되는데 이들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CEO의 과도한 소득은 회사 경영진과 이들의 급여를 자문하는 컨설팅회사간의 유착 관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CEO의 급여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 내지 위축되고 있는 이유는 노동조합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탄압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980년 20%였던 미국의 노조가입률은 2005년 13%로 뚝 떨어진 상황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노조가입률이 급감한 데에는 미국 내 '악법'도 한몫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관리자는 노동자를 수시로 불러 반(反)노조 교육을 시킬 수 있고, 근무시간에 노조에 대한 토론 자체를 금지할 수도 있다. 더구나 고용인은 노조를 만든 사람들을 해고하기도 하는데 이는 불법에 해당하지만 워낙 처벌이 미비해 이를 방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2006년 10월에는 연방기구인 국가노동관계이사회에서 노동자의 개념을 협소하게 만들어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처럼 CEO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소득을 합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는 미비한 반면에, 노동자의 임금과 권리를 향상시킬 수 있는 노조에 대한 교묘한 제도적 탄압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미국 노사관계의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게 나타나자, 중도보수 성향의 <워싱턴포스트>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불합리는 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가난하니 못 배우고, 못 배우니 또 가난하고
미국 사회에서 빈곤의 대물림 현상 역시 대단히 심각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968년부터 1998년 사이에 성인이 된 소득 수준 최하위 5%에 속하는 사람들의 42%는 오늘날 여전히 그 5% 안에 묶여 있다. 이는 소득의 양극화에 빈곤의 대물림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미국의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득과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빈곤층의 소득은 지난 25년간 거의 변동이 없었으나 4년제 대학 등록금은 2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빈곤층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 불평등은 대졸 노동자와 고졸 노동자의 임금 격차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대졸과 고졸간의 임금격차는 1979년에 75%였으나, 최근에는 130%까지 늘어났다.
위기에 빠진 미국 자본주의를 구하라
이러한 미국의 소득과 교육 불평등, 그리고 양극화의 심화는 "열심히 일하고 재능을 발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깨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유무역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에 의존하는 경제성장 노선이 이러한 불평등을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 역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와 보수진영은 한미FTA 체결을 통해 한국경제의 '미국화'를 꿈꾸고 있다. 미국에서 깨지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이 한국에서 부활하려고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에서 인용된 통계는 <워싱턴포스트>가 2006년 3월부터 12월까지 연재한 '미국의 불평등' 시리즈에 근거를 둔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