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축구경기'에 비유되며 지난 9일 공식 대선운동이 시작된 2007 프랑스 대선이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현재까지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선이 유력한 후보는 단연 사르코지다. 지난 1월 14일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공식 대선 후보로 지명된 이후 사르코지는 단 한 차례도 여론조사 1위 자리를 내준 일이 없다.
지난 14일 프랑스의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발표에서도 사르코지는 29.5%의 지지도를 기록해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다. 루아얄과 프랑스민주동맹(UDF)의 프랑수아 바이루 후보는 각각 24.5%, 17.5%를 차지해 그 뒤를 쫓고 있다.
결과는 오는 22일 대선 1차 투표를 겪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선자는 이미 결정됐다. 사르코지다. 적어도 프랑스 언론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프랑스의 언론이 이른바 '사르코지 대통령'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르코지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언론은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사르코지 대통령'을 외쳐왔다. 수법은 '과다노출'이었다.
이를테면 지난 20개월 여 동안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 <르 푸앵>은 총 20여 회에 걸쳐 사르코지를 표지기사로 다뤘다. 반면 루아얄이 표지에 등장한 것은 4차례에 그쳤다. 시청률 경쟁에 민감한 방송 또한 사르코지 유치 경쟁에 혈안이 돼있다. 달변가 사르코지는 시청률 보증수표였던 것.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사이 프랑스 국립시청각연구소(INA)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민영 TV채널 <테에프1>(TF1)이나 공영 <프랑스 3>과 비교해 <프랑스 2>는 황금 시간대인 저녁 8시 뉴스 시간에 두 배 이상 많은 시간을 사르코지에 할애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영 채널이 사르코지 '2중대'로 불리는 <테에프1>을 앞질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회당 제1서기 프랑수아 올랑드가 사르코지를 일러 '저녁 8시 뉴스의 새로운 진행자'라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8시 뉴스의 새 진행자'
사르코지가 신문의 1면이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때면 해당 광고부는 쾌재를 불렀다 한다. 판매 부수가 오르는 까닭에 광고주를 설득하기 수월했기 때문. '프랑스 언론은 사르코지로 먹고 산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사르코지를 신문 1면이나 잡지 표지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단지 이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르코지는 미디어를 다룰 줄 안다.
사르코지는 실제 1981년 변호사 자격증(CAPA)을 취득하기 전 오랫동안 기자가 될 것인가 망설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1995년 이미 경제 일간지 <레 제코>에 정치와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가명으로 연재한 일이 있는 사르코지에게 기자는 이루지 못한 꿈이었던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편집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습니다."
같은해 1월 기자들을 향해 사르코지가 내뱉은 말은 사르코지의 언론관을 함축하는 상징이었다. 자신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위한 처방전도 따로 있다.
"어제 당신의 사장과 저녁을 함께 했어요."
각 언론사의 사주와 가진 친분관계를 과시할 뿐 아니라 정치부 기자들을 '길 들이는' 사르코지식 표현이었다. 그리고 사르코지는 말한다.
"나를 비판하는 기자는 나를 모르는 기자다."
언론 재벌과 사르코지, 역전의 용사들
이처럼 대범한 사르코지의 행보에는 정치 인생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단히 다져온 인맥이 뒷받침됐다. 1983년 28세의 나이로 파리 교외의 뇌이-쉬르-센 시장에 오른 사르코지는 1985년 '뇌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클럽을 설립했다.
클럽의 우두머리 제라르 드 로크모렐은 대중주간지 <파리 마치>와 여성지 <엘르>, TV 정보지 <텔레 7주르>, 일요신문 <르 주르날 뒤 디망쉬>를 발행하는 세계 제1의 언론 재벌 '라가르데르' 그룹의 계열사 '아셰트 필리파키'의 사장을 지낸 바 있다.
프랑스 민영 오락 TV 채널 <엠 시스>(M6)의 사장 니콜라 드 타베르노스트, 프랑스 제2의 출판 재벌 '몬다도리 프랑스'의 사장 아르노 드 퓌퐁텐 또한 클럽의 회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패션그룹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의 총수로서 프랑스의 경제 일간지 <라 트리뷘>의 지분도 갖고 있는 베르나르 아르노와 <라디오 클라시크>의 소유주로 시사 주간지 <르 푸앵>을 인수한 프랑수아 피노, 2005년 일간지 <리베라시옹>을 인수한 에두아르 드 로칠드, '라가르데르' 그룹의 상속자인 아르노 라가르데르까지 프랑스 주류 언론의 수장들은 모조리 사르코지의 친구다.
특히 아르노 라가르데르와 사르코지는 '형제'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소개한다.
사르코지의 '베스트 프렌드'로 건설·통신 재벌인 마르탱 부이그는 사르코지와 세실리아의 결혼식에 증인으로 참석했으며 사르코지의 자녀들의 대부이기도 하다.
1989년 마르탱 부이그가 인수한 민영 TV 채널 <테에프 1>이 1992년 '불어방송 제작 할당제'를 어겼다는 이유로 고등시청각위원회(CSA)에 회부됐을 때 사르코지는 이것을 '불합리한 통제'라 비난하기도 했다. <테에프1>이 사르코지의 2중대라 불리는 이유다.
그는 미디어를 다룰 줄 안다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내각 시절인 1993년과 1994년 사르코지에게 주어진 예산장관, 정보통신장관이라는 직함은 사르코지의 언론 길들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각 언론기관에 공적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이었던 것.
덕분에 사르코지는 발라뒤르가 후보로 나선 1995년 대선에서 일간지 <르 몽드>의 자문위원 알랭 맹, <테 에프1>의 마르탱 부이그를 적극 활용해 미디어를 통한 발라뒤르 지지 전선을 조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지난 2003년 탐사보도 전문 기자 피에르 페앙과 필립 코엔이 쓴 <르 몽드의 숨겨진 얼굴>이라는 저서를 통해 폭로됐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라뒤르는 자크 시라크 현 프랑스 대통령에 패배,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나 타고난 '정치 동물' 혹은 '정치 기계' 사르코지의 야망은 꺾이지 않았다. 전직 기업문제 전문 변호사의 특성을 살려 언론기관과 밀월관계를 유지한 것.
2004년 예산장관으로 돌아온 사르코지가 '라가르데르' 그룹의 상속분쟁을 해결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 장-뤽의 사망 이후 아들 아르노와 의붓 어머니 사이에 벌어진 분쟁이었다.
'찍히면 잘린다'... 알아서 기는 언론
사르코지는 이런 방식으로 베풀었고 돌려받았다. 그러나 '규칙'을 위반했을 때 대가는 냉혹했다.
지난 2005년 8월 26일 주간지 <파리 마치>는 사르코지의 아내 세실리아와 연인 리샤르 아티아스의 밀회장면을 표지 기사로 다뤄 파문을 일으킨다. 편집장 알랭 주네스타는 즉시 해고됐다. 사르코지의 압력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파리 마치>는 '전진하는 운명'이라는 제목의 사르코지 관련 기사에 총 8쪽을 할애하는 것으로 '실수'를 만회했다.
2005년 라디오 <유럽1>의 사장이 된 열혈 사르코지파 장-피에르 엘카바크는 사르코지가 내무장관 자리에 있던 지난해 2월 내무부 전담 기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사르코지를 만나 직접 의견을 묻기까지 했다. 기자를 '입맛에 따라 고르라'는 의미였다.
이와 관련해 <유럽1> 기자들은 엘카바크에 해명을 요구한 뒤 항의의 뜻으로 일제히 집단 사표를 제출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사르코지가 당선되면 당신은 당장 해고요."
이름과 소속사를 밝히기를 꺼리는 프랑스의 몇몇 기자들은 사르코지를 전담하는 동료 기자들이 사르코지의 측근으로부터 이런 협박을 받은 일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것은 수차례에 걸쳐 기자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준 뒤 받아낸 증언이다.
루아얄엔 매료되지만, 사르코지엔 현혹된다
프랑스의 역사에서 이처럼 대선 후보가 앞장서 미디어를 '관리'한 일은 없었다. 태반이 미디어를 '활용'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사르코지의 경우는 언론사 사주들이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이탈리아 3대 민영방송, 잡지 <파노라마>, 인터넷 미디어 그룹 '뉴미디어' 등을 소유한 이탈리아 최대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반대로 사르코지는 어떤 언론사에도 지분을 갖고있지 않다.
사르코지는 이해관계를 넘어 순전히 친분을 활용한 정언유착이라는 신기원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달변가 사르코지를 옆에서 취재한 기자들은 사르코지에 현혹된다고 한다. 루아얄에는 매료된다. 현혹과 매료의 차이는 공포다. 저서 <왕을 만드는 사람들>의 저자 엘렌 리세르는 이것을 세실리아의 사진으로 해고된 '주네스타' 여파라고 분석했다. 찍히면 잘리니까.
사르코지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하는 각 언론사 편집장들은 이렇게 무의식적인 자체검열에 익숙해지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초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최초고용계약법(CPE)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사르코지가 맹렬한 항의시위에 부딪쳐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을 때 사르코지의 말 바꾸기에 시비를 건 언론은 없었다.
지난 2월초 프랑스의 풍자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가 사르코지의 아파트 특혜 구입에 얽힌 비리를 폭로했을 때도 이렇다할 반향을 일으키지 못 했다.
사르코지가 하면 로맨스, 루아얄이 하면 불륜?
반면 루아얄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는 인색하지 않은 것이 또한 프랑스 언론이다.
루아얄을 일러 '미련한 계집애' 혹은 '실언 투성이'로 몰아가는 데 주저치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실언 투성이'의 '실언' 즉 불어의 '가프(gaffe)'가 루아얄과 만나면 '가피튀드(gaffitude)'로 둔갑된다.
올해 초 중국을 공식 방문한 루아얄의 실언을 조롱한 것이다. '용맹, 용기'를 뜻하는 불어 '브라부르(bravoure)'를 써야할 곳에 루아얄은 '브라비튀드(bravitude)'라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쓰는 실언을 한 것인데 이것은 유통기한도 없는 유행어가 돼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프랑스 언론이 루아얄과 비교해 사르코지를 편애한 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 기업연구소의 조사 결과 사르코지와 루아얄의 공약 내용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총 500억 유로의 비슷한 비용이 예상된다. 같은 금액 지출이 전망되는 대선 공약을 사르코지가 발표했을 때 비용을 문제삼은 언론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 2월 11일 루아얄이 대선 공약을 발표한 직후 프랑스의 언론은 일제히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선심성' 공약이라며 루아얄을 비난했다. 더욱이 공약 예산 문제로 2월 중순 사회당 경제 책임자인 에릭 베송이 선거 캠프를 떠나자 루아얄은 언론의 집단 포화와 마주해야 했다.
사르코지에 밀려 이렇다할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 했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사르코지에 뒤처진 루아얄에게는 대선 공약 발표가 분수령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도 가혹한 사건이었다. 사르코지가 하면 로맨스요, 루아얄이 하면 불륜이었던 것.
'미디어와' 함께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르코지의 대선 슬로건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에 단어 하나를 보태고픈 욕망이 생기는 대목이다. '미디어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사르코지는 그러나 잘 알고 있다. 미디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을. 언론을 총동원했음에도 유럽연합(EU) 50주년을 기념한 올해까지 충격의 여파가 시들지 않은 지난 2005년 프랑스의 유럽헌법 부결 사건이나 발라뒤르가 낙선한 1995년 대선이 좋은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