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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는 대구 범어동에 있는 어떤 5층 건물의 제일 위층에 입주해 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신축 빌딩에서, 약 4년 전에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그곳에 비하면 너무 낡은 건물인지라, 화장실이며,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공조 시설과 오후 6시 30분경이면 운행을 중단하는 엘리베이터 등 이것저것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매년 4월경 임대기간이 만료될 즈음이면 오너를 포함한 전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좀 더 편리한 건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100평 정도의 공간을 쓰고 있는 우리 회사의 살림살이가 만만치 않고, 주변과는 상대적으로 싼 편인 이곳의 임대료가 주는 혜택과 고객들이 감당해야 할 불편 그리고 인테리어 등 투자한 금액 또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니 늘 구두선에서 그치고 맙니다.
올해도 '회사 이전 작전(?)팀'이 꾸려져서 이사할 만한 적당한 건물이 있는지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포기했습니다. 대구 범어동에 있는 어떤 공공기관에 들락거려야 하는 회사의 특성상 현재 입주해 있는 건물의 반경 1㎞ 이내에서 골라야 하는데 입맛에 맞는 곳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특히나 올해에는 재건축 재개발 붐으로 인해 주변에 있던 기존 건물들이 많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사실,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 낡긴 했어도 도심 가운데 있는 것치고는 비교적 주차 여건도 좋고, 탁 트인 옥상정원이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합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늘 위안을 삼는 부분이지요.
옥상정원은 약 15평 정도 됩니다. 건물 제일 위층에서 우리가 입주해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공터로 남겨두었고, 그곳의 일부를 정원으로 꾸며 두었습니다. 비싼 땅값에 수익을 내기 위하여 빈 공간 없이 촘촘히 건물들을 지어대는데, 오래 전에 지은 건물이다 보니 이렇게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사무실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탁 트인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한 일입니다.
옥상 정원은 정원석으로 치장한 구식입니다. 그곳에는 향나무, 장미, 홍매화, 라일락, 철쭉 등이 심겨져 있고 새들이 날아오는가 하면 여름이면 매미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무들 사이에는 민들레 돌나물 등 여러 가지 식물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지난 금요일, 직원 한 명이 은행에 갔다가 은행에서 나누어주는 '상추 씨'를 얻어 와서는 정원 구석에다 상추밭을 만들자고 하더군요. 점심시간이 지나서 장난삼아 직장 동료 몇 명과 상추밭을 만들었습니다.
장비가 마땅치 않아서 손으로 흙을 일구었지요. 음… 흙냄새. 손으로 흙을 만져본 지가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허어~ 참! 손톱 밑에 흙이 들어서 새카만 손톱이 되었습니다.
"올 여름에는 여기서 난 상추로 삼겹살 파티나 열자"며 흐믓해 하고 있는 우리. 성급하게시리 삽겹살을 살 사람까지 정해두었습니다. 아마 내년 즈음이면 이 건물에 정이 더 많이 들어서 이사를 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낡은 건물이 싫다지만 낡은 불편함보다는, 그곳 정원으로 날아드는 새들과 매미소리와 흙냄새 그리고 관리하지 않아도 제멋대고 피고 지는 꽃들에 눈이 더 쏠리고, 팍팍한 일상에서 오히려 느슨한 여유를 가지게 하는 이 구닥다리 건물이 주는 풍요가 더 좋아지는 요즘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만한 건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