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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칸막이 책상이 사람과 도서관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칸막이 책상이 사람과 도서관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문동섭
대학생들 가운데 도서관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들이 과연 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도서관 이용을 생활화하고 있을 것 같지만 대학도서관 사서 입장에서 보면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 가운데는 도서관에서 단 한 권의 책도 빌려가지 않은 채 졸업하는 이들이 거의 절반에 이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도서관과는 크게 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주장에 '나는 도서관을 열심히 다닙니다!'라며 강하게 항변하는 학생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학생들의 대부분은 서가에 책이 빽빽이 꽂혀 있는 도서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닥다닥 붙은 칸막이 책상과 '정숙'이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는 곳을 도서관이라고 떠올릴 것입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중간, 기말고사 혹은 각종 국가자격시험 및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간다고 하지만 대학생들이 말하는 도서관은 실상 도서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학생들이 말하는 도서관은 실상 도서관이 아니다

'도서관(圖書館)'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도서(圖書), 회화(繪畵) 및 기타 자료를 수집, 정리, 보관하여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기관'(네이버 백과사전 인용)입니다.

즉 사람들이 교육, 학습, 문화, 교양, 취미 기타 다양한 목적과 활동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고, 그 자료를 이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곳입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수험 및 취업 준비를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곳은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도서관이 아니라 '독서실(讀書室)'이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이처럼 '독서실'을 '도서관'이라 부르는 것은 도서관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일까요? 정확한 학설은 없지만 과거 시대적 상황과 도서관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먹지 않지만 30∼40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배고팠던 시절이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발버둥쳤습니다.

사회가 점차 양극화되어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이들이 당면해 있는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 시절 유일한 희망이 바로 '공부'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출세하는 길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들로 콩나물시루 같았으며, 집에는 공부방은커녕 단칸방에 온 가족이 함께 지내야 하는 열악한 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처럼 여겨지지만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진학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즉 국민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낮았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는데 이처럼 국민의 학력 및 지적 수준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경쟁력 또한 낮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부방이 없어 힘들어하던 학생들이 독서실 이용하기 위해 도서관 찾아

도서관내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도서관내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 문동섭
정리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은 공부할 수 있는 괜찮은 환경이 필요했고, 국가는 국민의 교육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교육환경 개선을 고민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하면 떠올리게 되는 독서실입니다. 그런데 이 독서실을 새로 만들자니 돈이 많이 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기존 공공도서관의 일부 공간을 확보하여 독서실로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변변한 공부방이 없어 힘들어하던 많은 학생들이 독서실을 이용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고, 독서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도서관은 원래의 정보제공 기능은 퇴색된 채 단순히 공부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학교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도서관 내 독서실을 이용하던 기성세대들을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배운 것을 예습, 복습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순환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후, 점차 출산율이 낮아지고, 소득수준이 높아져 각 가정에 자녀들이 독립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학교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도서관 내 독서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을 왜곡, 축소시키는 잘못된 인식 바꿔야...

저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독서실을 도서관이라고 부르고, 집에서는 공부가 잘 안 되고, 꼭 독서실을 가야 공부가 잘된다는 사회적 습관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고착화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도서관이라 부르든, 독서실이라 부르든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을 왜곡, 축소시키는 잘못된 인식은 도서관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계속해서 잠재우며, 도서관을 단순히 독서실정도로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개선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절에는 중등교육(중학교, 고등학교 교육)만 충실히 소화해도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지만 사회가 점차 전문화, 고도화, 신속화되면서 고등교육(대학교, 대학원 교육)으로도 살아남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고등교육은 기본이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 양질의 정보를 찾고, 그것을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도서관을 독서실정도로만 인식하고 이용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독서실보다는 도서관을 찾고, 도서관이 갖고 있는 책을 비롯한 방대한 자료를 잘 활용하여 내실과 교양을 다지고, 또 건전한 여가활동을 즐기는 것이 이른바 정보화시대, 지식기반사회에 걸 맞는 도서관 이용 자세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이들이 독서실이 아닌 도서관을 찾고, 도서관이 갖고 있는 자양분을 꾸준히 섭취해 주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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