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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빙탕후루(冰糖葫芦)가 보인다. 빙탕후루는 작은 과일을 그대로 꼬치에 꿰어 설탕시럽을 입힌 먹거리로, 중국의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듯.
ⓒ 김동욱
왕푸징(王府井 왕부정)은 티엔안먼(天安门 천안문)에서 동쪽으로 2~3km 떨어진 곳으로 중국 쇼핑의 중심지다. '왕가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왕푸징. 옛날 이곳에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물론 지금 왕푸징 거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왕푸징 거리는 북경에서 가장 큰 호텔 중 하나인 베이징판디엔(北京饭店 북경반점, 판디엔은 중국에서 호텔을 의미)부터 시작된다. 베이징판디엔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왕푸징 답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맨 처음 오른쪽에 보이는 큰 건물인 신똥팡꽝창(新東方广场 신동방광장) 앞부터는 더 이상 차가 진입할 수 없다. 여기서부터는 차 없는 거리로 조성돼 있다.

3월 31일 여행 이틀째. 오전 시간을 거의 다 허비했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여행은 한꺼번에 많은 곳을 지나치듯 보거나 한 두 곳을 집중적으로 즐기는 선택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손에 왕푸징 거리 지도가 있는 가이드북을 들고 왕푸징 입구를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오른쪽에 중국 최대 서점인 왕푸징 서점이 있다는데…' 우선 이 서점부터 찾고 싶었다. 그런데 눈에 안 띈 건지 내가 흘려 본 건지, 일단 나는 '중국 최대의 서점'을 찾지 못하고 지나쳤다.

외국인 서점 '와이원수디엔'에서 있었던 일

▲ 중국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왕푸징 거리. 천안문과 불과 2~3km 거리에 있어 연계해서 관광할 수 있다. 토요일 오전 왕푸징거리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 김동욱
토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왕푸징을 찾아왔다. '서울의 명동거리, 혹은 종로거리가 바로 여기라더니…'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이 많이 눈에 띄고, 애를 데리고 모처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모습도 여기저기 보인다. 좀 더 걸어 들어가자 왼쪽에 다른 서점이 하나 눈에 띈다. 와이원수디엔(外文书店 외원서점). 가이드북에 따르면 4층짜리(5층인가?) 와이원수디엔은 외국인들을 위한 서점이다. 1958년에 문을 열었다고 돼 있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1층에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여러 나라 서적이 잔뜩 진열돼 있다. 실제로 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국인들로,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돼 있는 중국관광 가이드북과 사진첩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선물용 책갈피 몇 개를 골랐고, 8원 짜리(960원 정도) 북경 관광지도도 한 장 샀다. 이 북경 관광지도는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병음 표기가 다 되어 있어서 나의 나머지 북경 여행 일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손바닥만한 크기의 38원짜리 중국어 회화 책(4600원 정도)도 한 권 샀다. 한글로 또렷이 '중국어 회화'라는 제목이 적힌 이 책의 판권에는 '상해 해원 음상출판사'에서 2006년 8월에 발간한 것이라고 적혀있다. 이 책은 중국 여행자들을 위해 제작된 듯한데, 실제로 비행기에서나 입국, 교통, 호텔, 식당 등에서 쓰이는 중국어를 요점만 뽑아 실용회화 중심으로 엮어 놨다.

▲ 왕푸징 거리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서점인 와이원수디엔(外文书店). 새계 각국의 책들이 진열돼 있어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1층에는 한국인을 위한 중국어 실용회화책도 있다.
ⓒ 김동욱
2층, 3층, 4층…,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각 층마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살폈다. 우리나라 서점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책만 진열되어 있지 않고 CD나 DVD 같은 광저장매체도 있다. 몇 층이었던가? 2층인지 3층인지, 층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어학 책을 모아둔 층인 것으로 기억된다. 거기 올라갔을 때 마침 점원 아가씨 한 사람이 TV 모니터를 보고 무언가를 따라 말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 어~, 오~…."
'가만, 저거… 저거, 우리말이잖아. 한국어 공부하나 보네.'
신기했다. 모니터에는 강사로 보이는 두 명의 남녀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점원 아가씨는 모니터 강사가 시키는 대로 그 발음을 따라 하고 있었다. 내가 옆에 다가가자 이 아가씨 흠칫 놀라다가 이내 살짝 웃는다. 선머슴 같은 얼굴이 참 착해 보인다.

"워 스~ㄹ 한구어런(我是韩国人)."
"아!(啊)"
"수에시한구어위마?(学习韩国语吗? 한국어 공부하세요?)"
"스스~ㄹ(是是 예)."

중국 아가씨에게 한 한국어 명강?

여기서 더 대화가 이어지면 곤란하다. 한 마디로 밑천이 달린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돌아서야 한다. 그런데, 아차! 타이밍을 놓쳤다. 이 아가씨가 바로 질문을 날린다.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뭔가를 묻는다. 한국말에 대한 질문 같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자신의 왼손바닥에 무얼 쓰면서 나를 보고 또 뭐라고 말한다. 나는 답답해진다. 얼른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칭씨에(请写써 보세요)."

그랬더니 이 아가씨, 우리글 모음 'ㅏ'를 쓰고 다시 그 옆에 '아' 자를 쓴다. 그러면서 나한테 다시 묻는다. 대충 이쯤 되니 이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아가씨는 지금 'ㅏ'와 '아'가 모두 '아'로 발음되는 지(혹은 같은 뜻인지)를 묻는 거였다.

난감해졌다. 질문의 요지는 알겠으나 대답이 힘들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중국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나는 이 아가씨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띄엄띄엄 필담을 섞어서 이 아가씨에게 해준 나의 한국어 강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중국 한자와 달리 우리글은 소리를 적는 표음문자다. 자음과 모음이 있고, 이 자음과 모음은 그 각각으로는 절대 글자(음절)가 되지 않는다. 자음+모음, 혹은 자음+모음+자음의 형태가 한 음절을 이루는 최소 요소다. 아가씨가 말한 'ㅏ'는 모음이고, 'ㅇ'은 자음이다. 따라서 모음이 비록 음가(소리 값)가 있다하더라도 'ㅏ' 하나만으로는 글자가 될 수 없으니 그 앞에 자음 'ㅇ'이 붙여야 비로소 '아'라는 하나의 음절이 완성된다."

이 아가씨, 나의 명강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속으로 '이 자식 뭔 소리여~?'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짜이찌엔(再见=안녕~) 했을 때, 이 아가씨는 "씨에씨에 짜이찌엔(谢谢,再见)"했다. 대충 알아들은 모양이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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