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정부 소유 회사이며, 세계 최고층 빌딩 건설로 이제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에말 개발이 지난 17일 금년도 1/4분기 실적을 지역 신문에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전년 동기 대비 13% 순이익 증가를 보인 가운데 1/4분기에만 4400여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한 이 회사는 매출 면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74% 신장을 보여 1조원을 뛰어넘는 진기록을 달성하였다.
100만 갓 넘긴 인구의 두바이 소재 일개 부동산 개발 회사가 1/4분기 순이익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챙겨가는 두바이, 두바이가 소속된 아랍 에미레이트, 더 나아가 걸프 국가의 주택 시장, 그중에서도 임대 시장의 현실은 어떠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층 빌딩이 들어서는가 하면, 바다 위에 야자수를 만들고, 세계 지도를 흉내 낸 프로젝트는 물론, 두바이가 앞서 나가는 대로 유사한 프로젝트를 연이어 터뜨리는 아부다비를 포함한 아랍 에미레이트의 화려한 뒤안길에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채 언제든 쫓겨날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세입자들의 현실이 있다.
대부분의 걸프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랍 에미레이트 주택 시장은, 크게 주택을 소유한 집주인(Landlord)과 그 주택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Tenant) 양측으로 분류된다.
임대차 계약의 형태는 100% 월세 개념으로 세입자가 6개월 내지는 1년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불로 지불함으로써 그 효력을 발생하는데 문제는 외지인들은 주택을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있는 차별 조항과 임대차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인 스폰서를 통한 거주 비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자리가 우선 확정되고 나면 고용계약서에 서명하고 이를 근거로 해당 업체는 이민국에서 피고용자를 위한 거주 비자를 발급받는데, 이 거주 비자가 있어야 비로소 미래의 세입자 즉 피고용인은 집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법적인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다.
집주인에게만 유리한 임대차 제도
외견상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이 제도의 맹점은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집주인에게만 100% 유리하도록 되어있다는 일방성이다.
6개월에서 최장 1년을 근거로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는 의미는 매 6개월 내지는 1년 마다 임대료가 그만큼 인상됨을 의미한다. 연간 인구 증가율이 6%에 육박하고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두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는 임대 시장은 따라서 세입자들에게는 지옥인 동시에 집주인들은 부르는 대로 수입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될 수밖에 없다.
급여 인상은 수년째 동결된 급여 생활자들에게 있어 연간 20∼30%의 임대료 인상은 10%에 육박하는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시시각각 세입자들의 목을 옥죈다. 살인적인 물가 인상으로 소득세가 없는 비즈니스의 천국 두바이, 아부다비의 명성이 퇴색되어 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레바논 출신 세입자 A
아부다비 유수의 O 기업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G씨는 레바논 출신이다. 가족을 레바논에 두고 아부다비를 자주 드나들며 비즈니스를 하노라니 아무래도 호텔 생활이나 호텔식 주거 시설 장기 체류는 다소 무리다.
시내 요지에 새로 지은 건물을 골라 방 2개짜리 아파트, 12층 전망 좋은 방향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이 3년 전이다. 계약 당시 1년치 선불로 4만5000디램을 지불하였으니 우리 돈으로 대략 1200만원이 된다. 한 달에 100만원을 주고 방 2개짜리 아파트에 월세로 사는 셈이 된다. 당시 회사로부터 컨설턴트 수임료로 보조받은 경비는 8000디램으로 20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월세를 내고 나도 100만원이 남으니 죽을 맛은 아니다.
최초 임대차 계약을 맺은 이래 올해 들어 햇수로 3년이 지났다. 그동안 경비 200만원은 전혀 인상되지 않았는데 아파트 월세는 최초 1200만원에서 2400만원으로 100% 인상되었다. 월 200만원 보조 받는데 그 200만원을 고스란히 월세로 내야할 판이다. 3년 동안 임대료 인상이 매년 30%가 넘는 살인적 상승을 거듭한 것도 모자라 수십 가구가 들어 사는 아파트 세입자들이 얼마 전 모두 거리로 내몰렸다.
국가에서 임대료 년 인상률을 7%로 지난해 말 제한한 이래 집주인들이 이런 편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집수리를 위해 세입자들을 전원 내보내고 난 다음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 신규로 계약하면서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임대료를 올리는 방식이다. 어차피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니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말 없는 가운데 돈을 내든지 아니면 이 나라를 영영 떠나든지.
필리핀 출신 세입자 B
방글라데시 출신 M씨는 얄궂은 이름을 가진 회사에 근무한다. OO 엔지니어링 회사인데 다 쓰러져 가는 고층 건물 최고층 옥상 바로 아래 복도에 썩은 책상 하나를 두고 볼일을 보고 있다.
M씨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집주인 대행업이다. 시내 곳곳에 있는 비교적 낡은 빌라에 살던 현지인들이 새로 집을 짓거나 지어놓은 빌라로 이사할 경우 집주인을 대리하여 낡은 집을 세입자들에게 세놓는 일이 M씨의 본업이다.
B씨는 시내 건축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는 필리핀 출신이다. 가정부로 일하는 아내와 함께 열심히 돈을 모아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자녀를 위해 매달 송금을 하는데 얼마 전 공항로 근처 M씨가 관리하는 빌라(단독 주택)로 이사를 했다.
애초 1층에 침실 5개, 2층에 4개의 침실로 전체 침실 9개인 이 빌라에는 현재 70명이 넘는 세입자들이 함께 모여 산다. 9개의 방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나무 칸막이로 두 개로 나누어지고, 나누어진 그 각각에 조그만 가구 등으로 칸막이를 대신하여 또 두 세대가 함께 방을 나누어 쓰니 방 1개당 3∼4 부부가 함께 쓰는 꼴이다.
조금이라도 공터가 있는 곳에는 새롭게 방을 드려 지상층에만 4개의 방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과 나누어진 공간을 모두 계산해 보니 최소 62∼80명 정도가 2층 주택에서 모여 사는 셈이 된다.
침실 1개를 기준으로 2000디램 즉 50만원을 월세로 받으니 집주인은 13개 침실에 매월 650만원을 월세로 받는 셈이고, B씨는 세 부부와 한 방을 나누어 쓰니 약 17만원을 월세로 낸다. 집을 두 채만 가지고 있어도 이곳 현지인들의 연간 순수입이 1억이 넘어간다. 물도 전기도 모두 공짜로 사용하는 이곳 현지인들은 정부에 내는 세금도 전혀 없다.
매 6개월 마다 월세를 마음대로 올려 받아도 당국에 신고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신고를 받는 경찰도 현지인들이고, 신고를 접수한 뒤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 부처도 같은 현지인들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구조다.
인도 출신 세입자 C
인도 출신 C씨는 대기업에서 사환으로 일하는데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독신이다. 신분으로 볼 때 결혼을 한다고 한들 아내를 아부다비로 불러오기는 불가할 듯싶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외지인들에게는 가족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으니까 필리핀 사람들 마냥 남편과 아내가 각기 다른 비자로 들어와 서로 모여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소 어렵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집 구하기 어려운 아부다비 주택 시장은 특히 독신자들에게 배타적이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아파트는 당연히 가족 세입자들이 들어와 살기를 꺼리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내려가는 것이 주된 이유다.
다행히 C씨가 다니는 회사가 아부다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회사라 C씨는 시내 중심에 있는 건물에 세를 얻었다. 침실 3개인 아파트에서 방마다 5명의 독신자가 함께 생활하니 아파트 한 채에 모여 사는 독신 남성이 모두 15명이 된다는 얘기다.
각자 500디램 즉 13만원 정도를 월세로 내니 집주인은 월 200만원 정도 임대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C씨는 급여 1500디램 중 1/3인 500디램 즉 13만원을 5명이 함께 사용하는 방 1칸을 위한 임대료로 매월 지불하고 있다.
매년 10만 정도의 인구 증가를 보이고 있는 두바이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대략 43만2천명의 인구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2010년이 되면 전체 두바이 거주 인구는 184만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아랍 에미레이트 전체 인구를 지난 2004년부터 전년도인 2006년까지 비교해 보면 지난 3년 동안 연평균 19만3천명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아랍 에미레이트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가구당 평균 인원 2.5명을 적용한다면 매년 늘어나는 19만3천명, 인구 증가를 위해 필요한 주택은 7만7천 가구로 매년 대략 7만에서 8만 정도의 추가 주택이 공급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택 공급이 실제 발생 수요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현재의 실상도 문제이지만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주택 시장 자체의 불균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6개월에 걸쳐 두바이 거주민 567명을 대상으로 두바이 DSL 전시 전문기관이 실시한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두바이 고급 주거 시장은 공급 초과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89%가 두바이 주택 시장의 심각한 불균형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세계 부동산 시장을 싹쓸이하는 걸프 국가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바레인의 사정은 그래도 다소 낫다. 바레인 전역에 걸쳐 외지인들이 직접 투자가 가능하도록 조약이 체결된 이래 이제는 돈만 있으면 바레인 섬 전역에서 주택 구입이 가능해졌다. 두바이 역시 제한적이긴 하나 자유무역지대를 선정하여 해당지역에서는 외지인들이 자유롭게 주택을 소유토록 하여 외국인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아부다비를 포함한 걸프 대부분의 국가는 같은 걸프 협력 위원국(GCC) 6개국에만 부동산 시장 문호를 개방하고 있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증가를 건설 시장이 현재와 같이 거북이걸음으로 따라가는 한 세입자들의 불만이 해결되기란 요원하다.
지난 한해 세계 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 순위로 걸프 6개국이 미국을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투자 규모는 대략 13조원으로 미국, 유럽, 남아프리카 등지에 집중되었는데 미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그 우선순위를 점차 아시아로 확대할 계획이다.
불로소득으로 재미를 본 임대차 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인들은 오늘도 내일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동산 시장을 제1의 타겟으로 삼고 달려들고 있다. 부동산으로 재미를 본 지역이라 동전의 뒷면과 같은 이곳의 주식 시장은 부동산 시장의 호시절만큼이나 도무지 전망이 없다.
국가가 돈이 넘치니 은행이 돈이 넘치고 은행이 서로 앞다투어 여신을 제공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주식 시장은 여전히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다 이런 연유가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부동산으로 연간 1억이 넘는 임대료 수입을 올리는 불로소득자가 최신형 고급 자동차를 뽐내며 거리를 질주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외지인 노무자 및 급여 생활자들은 치솟는 임대료와 이로 인한 물가 인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두바이 하면 자랑하는 저렴한 노동력, 그 이면에 도사린 임대 시장의 자국민 중심 정책으로 이래저래 이곳은 오늘도 외지인들의 한숨만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