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 목사가 여성을 성폭행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뉴스다. 가해자로 등장하는 목사의 이름과 나이가 바뀌고, 피해자가 십대에서 나이든 권사와 장애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양상은 비슷하다. '안수기도해 준다'느니, '상담 혹은 치유를 해주겠다'느니, '너를 내 첩으로 맞으라는 기도응답을 받았다'느니, '진정으로 사랑한다'느니, 접근 수법이 가지가지이지만 사건의 뼈대는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다른 직업군들이 벌이는 추행, 가령 지난해 최연희 국회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등과 비슷한 시기에 터지는 목회자의 성폭력은 사회 지도층의 성적 타락 사례로 등장한다. 여기에 일부 언론들은 이따금 목회자의 성폭행 사례만을 모아 보도하면서 성직자의 일탈을 경고한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점잖은 목회자와 교인들은 "일각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라 지적하고, 보수적인 기독교계는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선교의 문을 막는다고 쓴소리를 쏟아낸다. 열성을 가진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항의를 벌이기도 한다.
소수의 문제인가, 빙산의 일각인가
이들의 목소리를 가장 충실히 대변하는 곳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언론회. 방송사에서 목회자들의 성폭행 관련 탐사보도를 하자 한기총 상임위원장 이승영 목사는 방송사에 출연해 "전체에 비하면 극소수"라며 "성폭력 문제는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언론회도 2004년 8월부터 2006년 8월까지 방송사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분석하며 "'부조리를 구석구석 파헤치는 황색저널리즘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종교에는 순기능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므로 국민을 계도하는 차원의 종교 관련 내용을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이미경)에 접수된 목사 등 성직자의 성폭력 상담 건수는 매년 10건 안팎에서 30건 정도(99년 32건, 06년 24건, 05년 7건 등)에 머문다. 전체 상담 건수에 1%도 채 안 된다.
수치로만 보면 이승영 목사의 주장이 일면 타당하다. 기독교여성상담소(소장 박성자)가 1998년 7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접수한 목회자 성폭력 상담은 108건이다. 한 달에 한두 건이 꾸준히 들어온 셈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수준과 비슷하다.
박성자 소장은 "108건 가운데 강간이 61건에 이르는 등 강력 범죄가 많았지만 교단이나 법정에 고소한 것은 9건에 불과했으며, 그 가운데 3건은 피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며 "성폭력을 당해도 전문 기관에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게다가 극소수만이 고소나 제보로 사회에 폭로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박 소장의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을 얻는다. <목회와상담> 2002년호는 버클리의 한 연구소가 1996년 개신교 목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도했는데, 이에 따르면 약 10%의 목회자가 교인과 성적인 관계를 맺은 적 있다고 밝혔다.
보수적인 미국 남침례교단 목회자 1000명 가운데 141명도 교인들과 합당하지 못한 성적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목회와신학>이 인용한 <리더십> 1999년 봄호에서도 비슷한 수치가 나왔고 '이런 사실이 교회에 알려졌는가'라는 질문에 96%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교회개혁실천연대에 접수된 교회 내 분쟁 가운데 교회 재정 비리에 버금가는 사건이 목회자의 성폭행 건이다. <뉴스앤조이>에도 심심치 않게 목회자의 성폭행에 대한 제보가 들어온다. 힘들게 언론사 문을 두드렸더라도 증언을 뒷받침할 증거가 빈약해 보도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교회 내 성폭행을 고발한 언론을 비난하기에 앞서 한국교회 내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을 심리 치료하는 크리스챤마음연구원 김세준 대표는 "6년간 20여 건의 성폭력 외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드는 생각은 기독교가 이러한 문제를 철저히 외면함으로 이들이 더욱 큰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이 지난해 5월 개최한 '교회 내 성폭력' 토론회에서 한인섭 교수(서울대)도 "성폭력 문제가 은폐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훨씬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문제를 드러내고 토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게 된다면 상담 건수가 108건이 아니라 적어도 1000건까지는 늘어날 것"이라며 "실태가 드러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의 말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자신을 드러낼 피해자는 드물 수밖에 없다. 교단들은 미리 문제 해결에 나서기 보다 법정에서 죄가 인정되면 그 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보일 정도로 소극적이다.
여성 단체들이 호주에서 목회하던 윤 아무개 목사의 성폭행 혐의를 조사, 징계해 달라고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신경하)에 요청했지만, 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윤 목사가 혼인빙자간음죄로 실형을 살고 나서야 징계했다.
교단내에 특별법 제정 및 윤리위 설치해야
교단법도 성 문제를 일으킨 목회자에게 관대하다. 각 교단의 헌법은 처벌 대상으로 ▲성경 위배 ▲덕을 세움에 방해한 일 ▲타인에게 범죄하게 한 일 ▲교회 규례를 위반한 일 등 광범위하고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며, 이 사항을 어길 경우 처벌 범위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그나마 목회자의 성적 타락 문제를 언급한 유일한 교단은 감리교로 부적당한 결혼을 하거나 첩을 두는 경우, 간음한 경우에 징벌을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징계는 6개월 내지 2년 이하의 정직으로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한국교회 내부의 실정 때문에 목회자 성 문제를 다루는 윤리위원회 설치와 교회 내 성폭력 금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교단들은 침묵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서대전노회가 교단 총회에 '교단윤리위원회 설치안'을 제출했다. 이 안에는 "최근 목사·장로들의 비윤리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비윤리적 행동자에 대한 제재 등을 검토하여 높은 윤리의식을 세워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총회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기각됐다.
당시 서대전노회 소속으로 총회에 참석했던 변대원 목사(대전가수원교회)는 "총회대표들이 다들 부담스러워 해서 유야무야되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서대전노회 역시 통과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자중하고 조심하자는 의미에서 안을 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총회가 열리기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가 교회 내 성윤리 확립을 위한 토론회을 열어 각 교단들에게 '교회 내 성폭력 특별법'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반응을 보인 교단은 없었다.
이관직 교수(백석대)의 주장처럼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하여 범교단, 범교파적으로 연대하여 범죄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처벌과 회개의 과정 없이 교회나 교단을 옮김으로써 회피하는 목회자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알아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나서느냐, 질질 끌다가 언론과 사회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나서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