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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한나영 시민기자는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이튿날 두 딸과 함께 버지니아텍에 달려가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 바 있다. 당시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사진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해본다. <편집자주>
오마이뉴스 국제부의 연락을 받고 버지니아텍으로 향한 것은 17일 오전 7시 반. 기자가 사는 해리슨버그에서 버지니아텍이 있는 블랙스버그까지는 2시간 반이 걸린다.

81번 고속도로를 따라 두 딸과 함께 블랙스버그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경. 현장에서 10시간 40분을 머물면서 취재를 하고 기사송고도 마쳤다. 미션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향한 것은 저녁 8시 40분. 고속도로에 큰 사고가 있어 지체하는 바람에 집에는 밤 11시 반에 도착했다.

ⓒ 한나영
#1. 우리는 한 마음

버지니아텍에 도착한 뒤 주차증을 받기 위해 웰컴센터를 찾았다.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곳을 찾았지만 모두 허탕쳤다. 주차센터 역시 비상 상황임을 보여주는 'Emergency'라는 표지문과 함께 문은 잠겨 있었다.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 캠퍼스를 돌고 있을 때 성조기와 버지니아텍 교기 등이 '조기게양'된 건물 앞에 이르렀다. 세 명의 여학생이 호키(버지니아텍 애칭) 색깔의 셔츠를 입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어깨와 허리를 서로 힘껏 감았다.

이번 비극은 분명 버지니아텍의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와 슬픔을 남겼다. 하지만 여학생들의 굳게 감은 '손매듭'을 보니 호키들은 한 마음으로 이 아픔을 이겨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

ⓒ 한나영
#2. 총기난사 사건, 마음의 통증

버지니아텍의 한 건물 앞에 신문 뭉치가 놓여있었다. 휴교령이 내려 학생들이 없는 곳에 쓸쓸하게 놓인 신문은 마치 주인을 잃고 버려진 느낌이었다.

<컬리지트 타임스> 1면에는 '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 버지니아텍 커뮤니티를 황페화하다. 마음의 통증'이라는 큰 제목과 함께 전날 밤에 있었던 드릴필드 집회에 모인 학생들의 손잡은 모습이 크게 실려 있었다.

부시대통령과 내외 귀빈들이 참석하게 될 추모집회를 앞두고 캐슬 콜롯세움 앞에 줄을 선 호키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신문을 읽고 있다.

ⓒ 한나영
#3.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이번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진 뒤 버지니아텍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모두가 취재 대상이었다. 한국의 각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은 짐을 꾸려 집으로 떠나는 학생들과 대학원 석, 박사 과정 학생들을 상대로 열띤 취재를 벌였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취재에 응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가게 해주세요."

ⓒ 한나영

ⓒ 한나영
#4. 여기가 바로 끔찍했던 현장

첫번째 총격이 일어났던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홀(기숙사동, 위)과 30여명의 목숨이 스러져간 노리스홀(강의동).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현장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다만 각 나라에서 온 사진기자들이 현장을 촬영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 한나영
#5. "너희를 잊지 않을게. 사랑해."

오후 2시에 열리는 추모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캐슬 콜롯세움 앞에 모였다. 이들은 먼저 간 친구들을 위로하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너희를 기억할게. 사랑해."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한 학생이 이번 총기 난사사건의 초동 대처 미흡으로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찰스 스테거 총장을 지지하는 문구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테거 총장님을 지지해요."

ⓒ 한나영
#6. 사방에 깔린 카메라와 마이크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이번 사건의 취재 경쟁은 무척 뜨거웠다. 캠퍼스를 걸어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각 나라에서 온 언론인들의 강력한 취재원이었다. 이번 취재에 동행한 두 딸들도 버지니아텍 학생이 아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 한나영
#7. 인근 타운하우스 주차장엔 빈 자리가 없어

취재한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프레스센터를 찾았다. 캠퍼스 안의 '얼럼나이 센터(Alumni Center)'가 프레스센터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노리스홀에서 그만 길을 잃어 추모집회부터 가기로 했다.

학교와 인근 타운하우스를 연결하는 트랜지트를 타면 비록 돌긴 하지만 캐슬 콜롯세움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셔틀버스인 트랜지트를 탔는데 호키들이 사는 인근 타운하우스 주차장은 이번 주말까지 휴교령이 내린 탓인지 모든 차들이 그대로 주차되어 있었다. (달리는 트랜지트 안에서 촬영)

ⓒ 한나영
#8. 상처가 속히 치유되도록 기도합시다

상처가 컸던 만큼 그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면서 상처가 속히 회복되고 호키들의 마음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길 기도하는 듯 했다.

ⓒ 한나영
#9. 취재경쟁으로 불야성을 이룬 캠퍼스

프레스센터는 각 나라에서 온 언론인들의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기자 역시 오마이뉴스 국제부와 연락을 취하면서 최종 원고를 송고하고 마침내 프레스센터를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TV 앵커들의 전쟁이었다. 이들은 환한 조명 아래서 끔찍했던 비극의 현장을 비추면서 사건을 심층 분석하고 있었다.

"난 언론인 안 할래."

버지니아텍을 나설 때 작은딸이 말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기사를 작성하는 엄마, 무거운 카메라를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는 카메라맨, 원고를 읽고 매무새를 어루만지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긴장된 표정의 앵커. 그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얘야, 수고가 없으면 열매도 없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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