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정환



"최근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균형을 위해 그동안 축적한 구성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것이다. 나아가 개발 독재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수구 보수 세력의 위선과 이중성을 밝히겠다."

최근 '창조한국 미래구상'과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연대'의 통합 선언으로 시민사회단체의 정치 세력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1970년 긴급조치 세대부터 1987년 6월 항쟁시기까지 학생 운동가 출신 인사 3천여 명이 망라된 '7080 민주화 학생운동 연대'가 20일 정식 출범했다.

이날 오후 6시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창립대회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는 박석운 초대 회장(민중연대 위원장)이 한미FTA 반대 불법시위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박석운 회장은 대독 메시지를 통해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이 없었다면, 승리의 과정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수십 년 지연됐을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어 박 회장은 "하지만, 엄혹한 시절의 치열했던 투쟁은 산산이 흩어져 추억처럼 여겨지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하고 함께 어깨 걸고 묻혀 있는 역사의 기록을 되살려보자"고 전했다.

오충일 국정원 진실규명위 위원장도 축사를 통해 "요즘 학생들이 6월 항쟁을 잘 모르고 까마득한 역사로 여기는 딱한 세상이 됐다. 이야기를 전해 주지 않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우리 책임"이라면서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우리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사업을 일으킨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은 대선을 겨냥한 강경 발언으로 박수를 받았다. 그는 "우리가 너무 일찍 운동을 방기 했고, 일상의 안일로 매몰됐다"면서 "수구 세력 발호를 방치한 책임을 우리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이번 대선을 통해 수구 반통일 세력인 유신 잔당들이 역사 전면에 나선다면, 과거 우리 희생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도록 놔두지 말자"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에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정동영 전 의장이 나란히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먼저 김근태 전 의장은 사회자의 '촌철살인 축사' 부탁에 "여러분과 함께하겠다. 다시 일어나서 2007년 12월에 정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짤막하게 축사를 대신했다.

"김근태 선배가 짧게 했으니까 그 몫만큼 하겠다"는 말로 좌중의 웃음을 자아낸 정동영 전 의장은 "온 국민이 한 때 민주화운동 인사를 존경했고, 빚을 졌다는 심정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의장은 "이는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것으로 증명된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존경과 경외가 비난으로 바뀌었고, 민주화운동 세력은 무능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 전 의장은 "우리에게 군화발을 들이댔던 세력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하면 민주화운동 세력의 노력과 희망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다"며 "비본질적인 '다름'이 아닌 통합을 얘기할 때다. 국민을 최우선으로 둔 통합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고, 내가 갖고 있는 작은 기득권은 언제나 주저 없이 던져 버리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정동영 전 의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정동영 전 의장이 나란히 앉아 있다 ⓒ 이정환
축사 및 격려사가 끝난 뒤, 행사 참석자들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최근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균형을 위해 그동안 축적한 구성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것"을 다짐했다. 그 밖에도 이날 창립 대회에서는 경과보고, 임원 인사, 사업계획 보고 등이 이어졌다.

한편 이날 창립대회는 민주화운동 인사 1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으며, 김근태, 정동영 전 의장 외에도 정치인으로는 김부겸, 민병두, 유기홍, 유승희 의원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창립선언문 전문이다.

7080 민주화 학생운동 연대를 출범하면서

왜 우리는 다시 손을 잡는가?

우리에게도 봄빛처럼 푸르른 청춘이 있었다. 처음 대학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꿈이 있었다. 하지만 자유가 넘쳐나리라 믿었던 대학은 우리의 꿈을 실현하기에는 갑갑하고 살벌한 감옥에 지나지 않았다. 참으로 암울한 시대였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쓸 수 없는 곳에서, 이성은 한낱 장식물에 불과했으며 지배 권력을 옹호하는 첨병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꿈을 잠시 미뤄둔 채 독재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수구 보수주의자들이여, 모르는가!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이 자유, 당신들이 내뱉고 있는 어설픈 독설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당신들이 우리를 좌경용공으로 몰아세울 때, 우리는 차디찬 감방 안에서 오늘을 준비해왔다. 당신들이 풍요롭게 향유하고 있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모이려 한다. 가슴마다 깊은 생채기로 남아 있는 과거를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손을 잡으려 한다. 이는 당신들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추구했던 가치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당신들이 훼손한 가치를 올곧게 다시 세우기 위함이다.

우리의 희망은 멈추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과거로 회귀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이 문제였다. 그리고 미래는 후배 세대의 몫이라는 책임회피가 수구보수 세력의 준동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현실은 우리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미명하에 지나치게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마저 훼손하는 이데올로기가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뼈아픈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거대 언론과 수구 세력이 야합하며 발호하고 있는 동안, 우리 역시 단결된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파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오직 자신들만이 정의를 담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물처럼 얽혀 있는 장벽들을 제거하고, 드넓은 광장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야만 소아적이고 가족주의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함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7080 민주화 학생운동 연대'를 출범시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7080 민주화 학생운동 연대'의 발단은 긴급조치 9호 위반 세대의 회고록 출간이었다. 2005년 5월 13일 '긴급조치 철폐투쟁 30주년 기념식'과 함께 당사자들의 회고록이 출간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06년 12월 8일에는 전두환 독재타도에 앞장섰던 이른바 집시법 위반 세대들의 회고록 출간기념식이 있었다.

두 번의 행사를 치르면서 70년대 학번과 80년대 학번의 교류가 이어졌고, 그 결과 '7080 민주화 학생운동 연대'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1975년 5월 13일 이후부터 6월 민주항쟁 시기까지 학생운동, 또는 각 부문 운동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선후배들이 다시 함께 모이고자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화 세대들은 이제 어엿한 중년으로 성장하여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성숙된 민주주의를 스스로의 손으로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은 서서히 붕괴되어 가고 있다. 식민지시대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신산한 삶을 겪었던 선배 세대처럼, 민주화 세대들도 현재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반면 이들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구보수 세력은 날로 세력을 확장하며, 우리의 피와 눈물로 일궈낸 과실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심지어 수구보수 세력은 공공연히 민주화 세대들을 도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7080 민주화 학생운동 연대'는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투옥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일 것이며, 또한 꽃다운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구성원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확보된 민주화세대의 연대감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진로와 방향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것이다. 특히 최근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균형을 위해 그동안 축적해온 구성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것이다. 나아가 개발독재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수구보수 세력의 위선과 이중성을 밝힘으로써 권력중독자들에 의한 파시즘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2007년 4월 20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