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는 보이지 않던 점들이 세심하게 눈에 들어온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다. 가령, 얀후스 동상이 세워져 있는 구시가지 광장에는 많은 무리들이 햇볕을 받으며 담소를 나누었는데, 심지어 땅바닥에 드러누운 연인들도 보였다.
'나는 평소 공원에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있었던가?' 하며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여유도 좀 부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무언가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 진학하기 바쁘고 무언가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친구들의 모습에선 하루가 바쁘게 경쟁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거기에 암묵적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스위스에서 우연히 동석하게 된 대학생들이 여기서는 노래방을 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뜬금없이 왠 노래방? 했는데 이어지는 질문이 더 가관이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하며 노느냐고.
여행까지 와서 노래방을 찾는 모습도 생뚱맞았지만 한국에서는 회식의 마무리가 언제나 노래방이지 않은가? 고도성장을 한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놀이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노래방이 성행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빨리빨리 한국인의 모습 여행지에서도 드러나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인 여자는 손님의 물건을 포장하고 있었다. 나도 사고 싶었던 물건 가격이 궁금해서 바빠 보이긴 했지만 물건값을 물었다. 아무대꾸가 없길래 못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더니 냉정한 표정과 목소리로 "JUST MOMENT!"라고 하지 않은가?
난 무척이나 무안해서 사고 싶었던 물건을 조용히 제자리에 두고 나왔다. 포장하면서도 가격의 값을 말해 줄 수 있을 법도 한데, 한국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데…. 이러한 작은 일도 문화적 차이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필름페스티벌에서 보여지는 성숙한 시민의식
'빈의 거리는 문화로 덮여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음악가, 화가, 작가 등 여러 분야에서 걸출한 인물들은 오스트리아 태생이 많은데 이는 빈이 재능 있는 사람을 키워 주는 문화적 분위기를 가진 도시이기에 가능하다.
여름에는 시청 앞에 대형 스크린을 준비하고 스크린을 통해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그래서 이름이 필름 페스티벌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좌석을 빼곡 채우며 조용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난 친구와 계속 이야기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빈 시민들의 질서정연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여행하기 만만한(?)영국, 독일, 오스트리아와 절대긴장이 필요한 이탈리아, 체코
이렇게 분류해도 좋다면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체코로 나누어 보았다. 기준은 느낌이다. 여행하면서 큰 불안 없이 편하게 다닐 수 있었던 곳과 바짝 긴장하고 다녀야 할 곳으로 말이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불안하게 여행하다가 야간열차로 오스트리아로 왔을 때 '아~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유럽에 오기 전에 품었던 유럽에 대한 인상(?)이 오스트리아에 와서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담한 집들과 잔디들. 깨끗한 이미지의 풍경들을 보며 '내가 보고 싶었던 풍경이야'라며 감탄했다. 야간열차에서 맞이하는 아침식사인 빵과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이탈리아 여행을 하던 영국에서 유학 중인 학생이 결국 여권과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울먹이며 도로 영국으로 간 사건(?)이나 유럽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건너왔다던 두 명의 광고 관련 종사자는 교대로 야간열차에서 잠을 청했다.
고가의 카메라이기 때문에 한 명이 자면 한 명은 깨서 카메라를 지키는 식이었는데, 카메라를 지키던 이가 잠깐 졸던 사이 카메라가 사라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오스트리아나 독일 영국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카를교의 야경에 취해 늦게 숙소로 오는데 어떤 남자 현지인들이 우릴 보고 소리를 질렀다. 100m 달리기 20초를 넘는 내가 어찌나 빨리 줄행랑을 쳤는지 내 친구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행은 전개 절정 결말이 있는 일련의 과정이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여행 도중에 계속해서 조율해 나가면 된다. 그게 여행의 묘미이다. 나도 여행 초기엔 으레 많이 보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했다. 나의 일기 속에서 그런 점이 발견되고 있었다.
"여행 일주일 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 얻고 있기나 한 것일까? 하고 말이다. 조금 더 영어공부를 했어야…. 유럽 문화에 대한 공부를 했어야… 사진 찍는 기술을 미리 익혔더라면…" 하고 여행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여행 후반기로 올수록 점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낯선 상황에서 그 사회 시스템을 익히느라 헤매는 시간의 비율이 많은 전개, 다음에는 보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여행 그 자체에 전념할 수 있는 절정이 온다.
그 후 못 가본 곳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이 다음 중년이 되었을 때 다시 유럽을 방문하리라는 다짐을 하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이 결말도 중요하다. 훨씬 더 여유가 있는 중년에 또 다른 유럽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올 테니…. 그 꿈 하나 간직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