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는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와 미혼모,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세상을 향해 부르는 감사의 노래다. 세상을 원망하고 증오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 세 사람에게도 고마운 것이 있을까.
딸로 태어나 주어 고맙고, 엄마가 되어주어 고맙고, 손녀딸이, 할아버지가 되어주어 고맙다. 너는 너라서, 나는 나라서 고마운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모처럼 TV앞에 앉아 자신을 정화시키는 맑은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일, 칫솔과 손톱깎이는 남의 것을 쓰지 않는다. 빌려 주지도 않는다."
"이, 피가 흐르면 엄마가 준 수건으로 닦고 버리지 말고 비닐봉지에 싸서 집으로 가져온다."
"삼, 넘어져서 피가 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여덟 살 봄이와 스물일곱의 미혼모 영신이가 아침마다 동요처럼 외우는 주문. 잘못된 수혈로 에이즈에 걸리게 된 봄이가 다른 사람에 이를 전염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외우고 다니는 생활수칙이다.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이고 있는 푸른도의 외딴집 봄이네. 오로지 세 식구만의 행복을 키워가는 둥지 안에서 이들은 더 없이 행복하다.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도, 미혼모인 엄마도, 에이즈에 걸린 딸도 문제가 되지 않는 봄이네 가족.
에이즈와 편견 그리고, 집단이기주의
치매나 미혼모를 바라보는 우리 주변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치매에 걸렸다면 정신이상자쯤으로 치부해버리기 십상이고, 미혼모에게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 돌멩이를 던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봄이가 걸렸다는 에이즈에 비하면 치매나 미혼모에 대한 편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에이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에이즈에 걸린 봄이는 위험하고도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해도 안 되며, 손을 잡아도 안 되고, 친하게 지내서는 더욱 안 되는…. 한때 우리가 두려워해 그 이름마저도 속되게 불리던 문둥병(한센병)이나 염병(장티푸스)은 에이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봄이가 우리 애하고 놀았는데 옮겼으면 어떻게? 우리 애도 에이즈 검사해줘요."
"우리 애도 해줘요."
"그러고 보니 봄이 엄마랑도 친하게 지냈는데. 우리들도 다 해줘요."
봄이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진 푸른도는 일대 소동이 일어난다. 전염병의 병원균 통을 건드린 것처럼 저마다 보건소에 검사를 요구하는가 하면 어제까지도 친하게 지내던 봄이와 봄이네 가족에게 이주를 종용하는 등 히스테릭한 집단적 이기주의를 보이기까지 한다.
무지와 집단 이기주의로 무장한 마을사람들에게는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전문가의 의견도 소용없다. 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홍보나 정보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얼마나 무섭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함께 지낸다고 전염되는 병이 아니에요. 호흡기로 감염되는 병이 아니거든요."(박 간호사-조미령분)
"에이즈가 공기로 감염되는 병이라면 이 세상 사람들 벌써 다 뒤졌게요."(민기서-장혁분)
박 간호사나 민기서의 말처럼 에이즈는 그리 쉽게 전염되는 병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에이즈에 대한 편견의 벽이 높기만 하다. 국내에 에이즈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을 당시 우리나라의 에이즈 정책이 확산에 대한 공포와 위험만 부각시키기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가 정말로 고마운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봄이의 따뜻하고 착한 눈을 통해 선입견에 붙잡혀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슬퍼하는 봄이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때문이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함께 에이즈 홍보 게시판 운영
| | | 에이즈(AIDS)란? | | | |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는 에이즈는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영어 머리글자인 AIDS를 영자로 발음한 소리이며, 우리말의 정식명칭은 후천성면역결핍증(後天性免疫缺乏症)이다.
'후천성'이란 '선천성'과 대비되는 말로 유전성(遺傳性)이 아니라는 뜻이며, '면역결핍증'은 인체 내의 방어기능을 담당하는 면역 세포를 파괴하여 면역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에이즈란 면역기능이 저하되어, 건강한 인체 내에서는 활동이 억제되어 병을 유발하지 못하던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기생충 등이 병원체로 재활하거나 새로운 균이 외부로부터 침입, 증식함으로써 발병하는 일련의 모든 증상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 한국에이즈퇴치연맹 | | | | |
봄이와 같은 에이즈 환자는 얼마나 있을까?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 에이즈 누적감염인수는 4755명이며 그중 864명이 사망하고 3891명은 생존해 있다고 한다.
에이즈는 만성질환이라 보균에서 발병까지 약 10년에서 15년 정도가 걸리는 질병이다.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좋은 치료제가 개발되어 발병을 늦출 수도 있게 되었으며 발병이 되었더라도 치료와 관리를 잘 하기만 하면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인 생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관계는 물론 손만 잡아도 심지어는 함께 이야기만 나누어도 전염이 되고, 전염이 되면 즉시 발병이 되어 손쓸 방법 없이 사망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은 모두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된 지나친 걱정인 것이다.
봄이의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어린 봄이가 에이즈로 죽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시청자가 적지 않지만 치료만 잘 하면 에이즈를 가지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깨기 위해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내에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함께 에이즈 홍보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와 관심에 힘입어인지 에이즈에 대한 홍보와 교육, 상담을 원하는 네티즌들의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에이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이 게시판을 통해 문의를 하고 답변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비밀 글도 가능하다.
봄이가 매일 매일 주문처럼 외우는 '주문' 역시 이곳에 가면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에이즈 퇴치연맹에서 제시하는 에이즈 감염인의 생활수칙은 다음과 같다.
① 감염인과 함께 산다고 해서 무조건 감염되지는 않는다.
② 에이즈감염원은 혈액, 정액, 질 분비액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함께 살아가는 가정에서 주의를 하면 감염위험이 없다.
③ 따라서 보통 때와 같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 된다.
④ 감염원이 되는 혈액 등을 직접 접촉해야 할 부득이한 경우, 다시 말해 감염인이 사고로 출혈을 하여 의식이 없거나 어린 아기가 출혈할 경우에는 고무장갑이나 비닐봉지를 사용하여 혈액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여 취급한다.
⑤ 만일 피가 묻었을 때에는 즉시 비누와 흐르는 물로 깨끗이 씻는다.
⑥ 혈액이 묻기 쉬운 칫솔, 빗, 수건 등은 감염인 전용을 별도로 두어 사용한다.
⑦ 감염인의 배우자가 있을 때에는 성행위로 감염되지 않도록 정액이나 질 분비액 접촉을 삼가하거나 예방도구를 철저하게 사용 한다.
우리 사회에는 결코 쉽게 깨지 못할 몇 가지의 선입견들이 존재한다. 치매, 미혼모, 장애인, 동성애자, 성전환자, 난치질환자, 불치병환자…. 자신의 문제와 싸우기도 힘겨운 이들을 더 힘겹게 하는 것이 차갑게 얼어붙은 외부의 시선이다.
어른들의 아름다운 동화 <고맙습니다>를 통해 무지해서 두려워했던 질병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길 바라며 에이즈뿐만 아니라 유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소수자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