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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은 35명이나 되는 탈북 청소년들과 어울려 살면서 이일저일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은 35명이나 되는 탈북 청소년들과 어울려 살면서 이일저일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 뉴스앤조이 주재일
정말이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35명의 탈북 청소년들의 '어머니' 조명숙 교감(여명학교)은 1년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한다.

아이들이 남한에 적응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챙겨야 하고, 저녁에는 탈북인 야학 '자유터'를 꾸린다. 주말에도 탈북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사역한다. 최근 아파서 누워있는 것은 자녀들이 행복하게 여길 정도다. 아파서는 안 될 사람이 최근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건 일이 '조금 더'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탈북인들에게 지원하는 기간을 단축해 올해 초부터 지원금이 끊긴 이들이 있기 때문에, 월세를 못 내는 학생들이 늘어간다. 탈북인의 집 문제를 정부가 책임지고 나머지 전부를 해결했는데, 이제 집 문제까지 떠안게 되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여명학교에서 조 교감을 만났다.

"아이들이 나보다 앞서 고난을 받으니까 내가 쉴 수 없다"

-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는데, 몸이 안 좋다고 들었다.
"일상이 너무 힘들고 적응도 힘들다. 사선을 넘나들며 긴박하게 살아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도 옛날 버릇처럼 몸을 움직여 고달프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에게 문제가 많이 생겼는데,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바빴다. 아이들이 나보다 앞서 고난을 받으니까 내가 쉴 수 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는 소리다. 소명을 받았으면 성실하게 소명을 이뤄가야 한다. 중국에서 떠도는 탈북인들을 무수히 만났다. 처절하게 사는 걸 보았기에 혼자 편할 수 없다. 죽을 고비와 맞바꾼 사역인데 대충 살면 안 된다. 나는 하나님께 나를 써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
"2005년 이전에는 정부가 2년에서 5년까지 매달 생계비를 보조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해마다 1000∼2000명씩 들어오는 새터민을 감당하지 못해, 정부가 2005년 이후로 들어온 사람에게 정착금 1000만원을 2년에 걸쳐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니 올해 초부터 보조금이 끊긴 아이들이 많다. 공부할 시기에 나가서 돈을 벌 수도 없고 답답한 실정이다.

그래도 대학생들은 형편이 조금 더 낫다. 비인가학교인 여명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정말 어렵다.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 친구들이 있다. 예전에는 여명학교에서 집 문제를 뺀 나머지를 챙겼는데, 지금은 집 문제까지 챙겨야 한다. 최소한 극한 상황은 막아야 하는 절박한 실정이다. 월세로 사는 아이들 때문에 동사무소에 가서 사정하고 후원인 찾아서 돌아다니기 바쁘다. 일은 잘 안 풀리고 바쁘고 해서 몸살이 났나 보다."

-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미리 준비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안타깝지만 학교 운영하는데도 벅찼다. 오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만 하면 더 낫겠지만 아이들의 주변까지 다 챙겨야 하니 운영비가 늘 넉넉하지 않다. 어려운 거라는 것 예상했지만 역시나 돈이 안 들어온다. 매일 고민하는 게 그런 거다. 오늘은 또 뭘 먹일까. 뭘 입힐까.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야 하니까 미용 기술자를 불러다가 간사들을 가르쳤다. 35명이 먹고 살려면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 멀티 플레이어 노가다 인생이다."

- '멀티 플레이러 노가다' 인생이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자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뒤 23살부터 6년간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는데 내 주변 기독교인들은 나를 진보좌익이라고 불렀다. 기독교인이라면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언제 좌익이 되었는지 난감했다.

28살부터 지금까지는 탈북자들의 삶을 보고 탈북자들과 함께 살게 되었을 때도 주변에서 깜짝 놀랐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느냐며 보수우익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그냥 하나님이라면, 예수님이라면, 오늘 누구에게 가실까를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했을 뿐인데."

-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건 사회와 교회에서 새터민을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여러 곳에 강사로 초청받는다. 기독교 내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기독교인들이 새터민을 이주노동자, 장애인,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같은 이들 가운데 한 부류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며,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새터민을 이들과 같은 부류로 놓고 이해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1000년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터민은 우리 시대만의 특별한 문제다. 지금 당장 새터민 문제를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로 받아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새터민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결부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새터민을 보듬는다면 통일의 칼자루를 우리가 쥘 수 있지만, 새터민을 외면해 그들의 마음을 잃는다면 사람과 사람의 통일은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통일 시대의 우리의 운명을 외세가 틀어쥘 것이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이러한 현실을 깊게 이해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나 혼자 잘나고 나 혼자 깨달은 사람처럼 떠드는 것 같고 들어주는 이도 없어 안타깝지만, 지금은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우리가 개성과 평양, 금강산으로 가면서 통일은 벌써 시작된 것이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 ⓒ 뉴스앤조이 주재일
- 보통 사람들보다 앞질러 시대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삼수해서 91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새내기 시절 문익환 목사님이 학교에서 우리가 졸업할 때쯤이면 통일이 올 것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많이 편찮으신가 보다'고 웅얼거렸다. 그런데 정말이지 94년쯤 되니 거대한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새터민만 봐라. 2000년엔 500명이 왔다. 이해에 한국에 온 새터민은 그전에 들어온 '귀순용사'보다 훨씬 많았다. 해마다 증가해 2002년부터는 매년 1000명이 넘었고, 작년에는 2000명을 돌파했다. 벌써 남한에 온 새터민만 1만 명이다. 사람이 오고, 또 우리가 개성과 평양, 금강산으로 가면서 통일은 벌써 시작된 것이다."

- 남한은 통일을 이야기할 때 동상이몽을 꾸듯 서로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보수는 북한 인권, 진보는 한반도 평화를 논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중 하나를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게 정답이지만, 어떤 뛰어난 정치가가 나와도 풀기 힘든 숙제다.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지 않으면 답이 없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소망하고 준비해야 한다. 새터민을 보듬는 것도 중요한 준비다.

중국동포 문제로 씨름하다가 새터민과 함께한 지 10년이 지났다. 많이 모자라도 한 자리를 10년간 지키니 전문가라는 소리 듣더라. 탈북자를 만나고, 새터민 야학 만들고,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열고. 모두가 처음이었다. 실수도 많았지만 깨달음도 컸다. 이제는 5년만 일하면 이 분야의 전문가 될 수 있다. 웰빙 생각해서 나서지 않아서 문제지. 늘 사람이 아쉽다. 기독청년들이 소명을 갖고 나서준다면 좋겠다."

- 새터민 문제는 말한 대로 몇 사람이 인생을 걸고 싸우는 것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과제다. 회의나 절망도 많았겠다.
"새터민과 뒤엉켜 살다 보니 많이 동화되었다. 남한에 온 이들은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긴 이들이다. 북으로 끌려가는 사람도 많이 보았고, 중국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이들도 만났다. 우리 정부는 이들은 넉넉하게 받아주지도 않으니 난감했다.

그들과 마주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했다. '넌 왜 북에서 태어나 이런 고생을 하고, 난 여기서 이렇게 사는가'. 그럴 때마다 부채의식을 느낀다. 하나님 백성의 신음을 우리 기독교가 외면한다면, 돌들이라도 일어나 외칠 것이라고 믿는다."

- 이제 겨우 1만 명의 새터민이 들어왔는데, 정부는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통일이 정치적 선언으로 문을 여는 건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것으로 통일은 이미 시작되었다. 기쁘게 맞이해야지 오겠다는 사람도 외면하는가. 새터민이 50만 명 정도는 남한에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새터민 몇만, 몇십만 명과 함께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하겠다는 건가. 새터민은 우리에게 통일을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 새터민을 어렵게 하는 건 미온적인 정부만은 아닐 것 같다.
"탈북 아이들과 살다 보면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한참 자랄 성장기에 못 먹어 스무 살인데도 키가 140cm 정도거나 얼굴이 많이 늙어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한 친구가 한참을 운 뒤 자신의 키가 작아 학교에 가면 뭐하느냐고 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공부하고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이들이 겪는 절망은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없다. 새터민을 만난 남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북한 출신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이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통일을 위해 소중히 쓰이도록 협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눈치 보고 살게 만든다"

- 지난해 북 핵 사태가 터졌을 때 새터민 친구들의 견해를 묻는 기자들의 전화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들었다. 최근에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는데,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새터민 공동체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 같다.
"아이들이 가끔 묻는다. 남과 북이 운동 경기를 하면 어디 쪽을 응원해야 하느냐고. 너는 어디 응원할 거냐고 물어보면, 조심스럽게 북한 응원해도 되느냐고 말한다. '너희들이 정치 때문에 북에서 나왔냐'고 원하는 대로 응원하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래도 내 눈치를 살핀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눈치 보고 살게 만든다. 어릴 때 나온 아이들에게 정치적인 판단을 물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인터뷰하는 내내 조 교감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하루에도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 건다고 했다. 마침 여명학교에 쌀을 후원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 가르치는 일보다 돈 모으는 일로 더 분주한 것 같다.
"여명학교는 그래도 운영이 나은 편인데, 저녁에 탈북인 야학으로 운영되는 자유터는 늘 넉넉지 않다. 자유터에서는 사례비를 받지 않고 일한다. 여명은 신앙인을 위한 학교지만, 자유터는 신앙색을 띠지 않기에 후원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리고 내가 '주세요'라는 말을 잘 못한다. 내가 기금 모금을 못 해서일까. 우리는 언제나 겨우겨우 살아간다. 오늘도 쌀이 떨어져 보리밥을 먹었는데, 마침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늘 하나님의 은총을 구할 수밖에 없고, 또 은총 가운데 살고 있다."

- 성격이 다른 두 학교를 운영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
"처음에 자유터를 찾는 아이들이 종교적으로 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밥 먹을 때 감사하다고 기도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포섭하는 건 아니네' 하고 안심한다. 순진한 녀석들이다.

남편이 사례비 없는 난민 사역을 하기 때문에 넉넉한 살림살이가 아니다. 아이들도 부모님이 보고 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밥도 못하는 아내, 어머니가 되었다. 가족들이 넉넉하게 이해해줘서 늘 고맙고 미안하다. 대신 아프면 곤란하다. 탈북 청소년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부모가 엄청나게 돈이 많다든지, 어디에서 많은 돈을 후원 받는다든지, 수단이 무척 좋은 사람이라든지 하는 이야기가 떠돈다.

자기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북에서 당과 다수를 위해서 희생하기를 배웠지만 나약한 소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은 잘 모른다. 대신 대림동 지하창고에서 여명학교와 자유터의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을 대변하는 모습에 나를 신뢰하는 것 같다."

"여명학교와 자유터의 실험은 통일을 미리 준비하는 것"

서울 봉천동에 있는 여명학교. 미래의 통일 일꾼들이 자라는 곳이다.
서울 봉천동에 있는 여명학교. 미래의 통일 일꾼들이 자라는 곳이다. ⓒ 뉴스앤조이 주재일
-새터민을 만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가.
"항상 어려운 우리의 현실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 다른 곳은 돈을 주지만 왜 자유터는 돈을 안 주느냐고, 차비라도 달라고 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갖춰놓고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갖춰가는 사람이 되자고. 한편 우리에게 없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돈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정말 배우고 싶어서 오는 이들만 찾기 때문이다.

가부장 문화가 남한보다 탈북자들에게 더 심하다. 내가 말하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린다. 여자가 나서는 게 싫다는 거다. 여자라고 무시하는 문화와 싸워야 하지만, 모성적 힘이 새터민을 품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 탈북인 사역을 처음으로 시작했고 여전히 어렵게 일하고 있다. 여전히 그 길을 가는 힘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의 사역이 실패할 수 있다. 몰려드는 새터민을 감당하기에 우리의 사역은 너무 미약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수와 이벤트에 속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한두 번의 행사와 엄청난 양의 물량 공세에 있지 않다. 여명학교와 자유터의 실험은 통일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고, 우리의 땀과 눈물을 학습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제 겨우 몇 년 했다. 이곳저곳에서 새터민 사역을 하는 이들이 실수도 잦을 것이다. 당연한 과정이다. 서로 많이 격려하고 서로에게 배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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