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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문화관광위는 6일 강동순 방송위원의 호남비하 및 대선 관련 발언 녹취록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다. 강동순 방송위원이 지난 4월6일 문광위 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쯤 되면 막가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방송위원회 이야기다.

한나라당 의원과의 부적절한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한나라당과 함께 방송을 '통제'하고 '장악'할 필요성과 궁극적으로는 방송계 재편 시나리오까지도 협의했던 강동순 방송위원은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원직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적인 모임에서의 발언을 공적으로 책임 질 수 없다"는 논리다. "사적인 생각과 공적인 업무는 별개"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발언은 드러나서는 안 될 사적 자리에서의 '은밀한 음모'였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더 이상 사적일 수 없는 이유다. 또 사적 생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을 만나 구체적인 행동 전략까지 도모하지 않았던가.

그의 처신을 두고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법적으로 보장된 방송위원직 자리를 차고 앉아 있기로 작정한 이상 그에게 상식과 순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문제는 방송위원회다.

방송위원들, 언제까지 침묵으로 일관할 것인가

방송위원회의 탄생은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의 산물이자, 그것을 이루고자 했던 수많은 방송인들과 민주시민들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다. 그런 방송위원회가 정치적으로 오염된 상태에서 제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밤이 되면 특정 정당과 밀실 대화를 통해 방송을 통제하고 장악하려는 기도를 해 온 것이 드러난 방송위원이 버젓이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방송위원회가 어떻게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방송위원회가 그 권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방송위원회라면 없는 것이 낫다. 그것은 방송위원회 스스로에 대한 모독이자 자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방송위원은 윤리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리위원회를 만든다 한들, 아무리 세탁을 한다 한들 오염원을 그대로 놓아두고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나머지 방송위원들이 분발한들 오염원을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는 방송위원회의 모든 결정과 권능은 의심받고 그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그런데도 나머지 방송위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이처럼 망가져도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들일까? 알 수가 없다. 그런 방송위원과 같이 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들 또한 오염된 방송위를 유지시키는 '공범'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방송위원 한분 한분이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의 마지막 파수꾼이라고 자처한다면, 방송위원회의 권능과 그 신뢰성을 우려한다면 이렇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락하는 방송위, 어떻게 지킬 것인가

▲ 언론노조,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는 지난 4월10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의 녹취록 파문과 관련해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전적으로 그 분들의 몫이겠지만, 강동순 위원이 사퇴하지 않는다면 다른 위원들이 같이 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대로라면 차라리 '강동순방송위'로 남겨 두는 것이 정직한 선택이다.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국회 문광위원회에 출석해 강동순 위원의 사퇴 여부를 묻는 의원의 질의에 "자신이라면 사퇴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은 "강동순 위원 같은 분이 기어이 방송위원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고집한다면 나라도 사퇴할 것"이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방송위원회의 위상과 신뢰가 대책 없이 추락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어떻게 그 수장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다른 방송위원인들 그 처지는 다를 바 없다.

방송위노조는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매일 방송회관에서 시민단체들과 함께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지만 면피용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제3기 방송위원들이 선임 됐을 때 노조는 무려 13일 동안 방송위원들의 출근을 저지했다. 14일 만에 방송위원들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방송위노조가 받아낸 약속의 제일 첫 번째 항목은 방송위원회의 정치적 중립과 방송 독립에 관한 의지를 방송위원회 위원장이 천명하는 것이었다. 노조 위원장의 사퇴 파동까지 겪으면서 받아낸 그 약속이 휴지조각이 됐는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너무 과격하고 무리한 주문이자 기대일까. 불현듯 지난 1994년 한겨레 경영진들이 한겨레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내렸던 결단이 떠오른다. 당시 한겨레 일부 주주들은 임시 주총의 절차를 문제 삼아 법원에 임시주총 결의 취소청구소송과 대표 이사 등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시 김중배 한겨레 사장과 임원진은 선고공판을 앞두고 전원 이사직 사임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법원이 그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한겨레의 명운과 자존을 타율에 맡길 수 없으며, 그런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방송위원회의 권능과 자존, 그 독립성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방송위원들이, 그리고 방송위 사람들이 결단할 때다. 강동순 위원의 행보와 선택에 그 권능과 자존, 독립성을 의탁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코미디다.

1994년 한겨레 사태 당시 김중배 대표 사원 비상총회 특별담화

한겨레 명운을 타율에 맡길 수 없다

사원 여러분.
모든 도전은 도전만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모든 도전의 숙명은, 모든 응전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의 문맥은, 도전을 이겨내는 적절하고도 결연한 응전을 기다려서만 비로소 가닥 잡혀진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사원 여러분.
우리 한겨레신문사의 임원진은 그러한 믿음 위에서 '더욱 강한 하나, 더욱 튼튼한 한겨레신문'의 오늘과 내일을 다지고자, 전원 사퇴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더러는 너무 급작스럽고, 또 더러는 너무 엄청난 결단이라는 평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의 결단은 전혀 급작스러운 것도 아니며, 전혀 엄청난 것도 아닙니다. 오랜 고뇌와 협의를 거친 끝의 결단이며, 가장 의연하고도 적절한 결단임을, 우리는 감히 자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원 여러분.
우리 임원진은 뜻을 함께 모아 여러분께 묻고자 합니다. 온갖 탄압과 박해를 이겨내고 국민의 뜻을 모아 자주적으로 이룩해낸 <한겨레신문>의 명운이 타율에 의해 결정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존엄한 법정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한겨레>의 창간정신은 모든 문제와 모든 시련을 우리의 자주적 역량으로 풀어내고 이겨내기를 요구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로 결심되는 소송에서 한겨레신문사의 임원진이 승소하게 될지, 패소하게 될지는 오로지 법정의 판단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겨레>가 거기에 명운을 의탁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한다면, 과연 그것이 <한겨레>의 <한겨레>다운 올바른 모습이겠습니까?

사원 여러분.
우리 임원진은 결연히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법정이든, 권력이든, 자본이든, 그 주체가 누구이든 간에 우리의 명운을 타율에 의탁할 수 없습니다. 그 타율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의 명분이 타율로 결정되는 선례를 절대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버릴 수 없는 우리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한겨레>의 기둥과 뿌리를 흔들어대고자 하는 어떤 음모와 책동에도 결연히 대처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음모의 책동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본보기를 명백히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 임원진의 사퇴는 그 의연한 정면 돌파의 결의이며, 동시에 해사음모와 책동에 부치는 결연한 경고장이기도 합니다.

사원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는 혹시라도 임원진의 사의에 따른 경영권의 공백이나 결손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자리에서 엄숙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퇴임한 이사진은 새로 선임된 이사진이 취임할 때 까지 이사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법률의 강제규정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우리는 단 한 순간의 공백이나 결손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임원진이 선언했던 책임경영과 적극경영을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사원 여러분.
모든 기우는 모두 떨쳐버리십시오. <한겨레>는 우리에게 정진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저마다의의 자리에서 그의 책무를 다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도전에도 결연히 맞서 이겨내는 응전이야말로 우리의 소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명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또한 다해 나갈 것임을 거듭거듭 다짐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결단이 비록 '더욱 강한 하나, 더욱 튼튼한 한겨레신문'으로 도약하는 결정적 전기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1994년 한겨레혁명, 2000년 한국 정상언론'
우리가 스스로 내건 구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뭉칩시다.

1994년 1월 19일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김중배

#백병규의 미디어워치#백병규#미디어워치#방송위원회#강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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