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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필리핀에 옵니까?”

내가 필리핀에 온 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때마다 가끔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한국도 영어교육을 분명히 시키고 있는데 왜 먼 이곳까지 오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영어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지구촌 시대에 영어가 필수잖아요, 방학 중 어학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예요”라고 말하곤 한다.

이들의 질문에서 어학연수를 온 한국학생에 대한 이미지가 곱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이곳의 한 한국학생은 ‘어학연수를 온 일부 학생의 불손행위에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럽다’고 말한다. 최근 이곳 대학에서도 일부 한국 학생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필리핀 학생에게 영향이 미칠까 우려한바 있었다.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리핀대학교가 있는 로스 바뇨스에는 최근 방학을 이용해 어학연수를 오는 학생이 부쩍 늘었다. 가까운 따가이 따이 시 지역엔 1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조그만 도시도 이럴진대 필리핀 전역에는 지금 비공식적인 통계지만 12만명이 넘는 학생과 가족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외화가 어학연수에 지출되고 있으니 정부차원의 근본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리핀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다. 적은 비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영어에 자신감을 키워주는 데 필리핀만한 곳도 없는 것 같다.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영어교사에게 1:1로 규칙적인 영어학습을 받을 수 있다. 홈스테이나 3~4명씩 그룹식 교육도 잘만 선택하면 학습효과를 올릴 수 있다. 한편 대학이나 어학연수기관이 운영하는 영어연수도 좋은 교과과정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많다. 일상생활자체가 영어 학습장이 되다보니 개인의 학습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실제 이곳에 와서 영어를 익히고 실력을 향상시켜 미국이나 유럽국가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가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한국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설 영어연수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반지하실에 2층 침대를 설치하고 학습공간도 독립된 학원이 아닌 간이시설에서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아마 이런 환경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을 한국학생들이 사전에 알았다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방에 20여명의 학생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다보니 수업이 없는 저녁시간엔 누구의 통제도 없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에서 학교생활에 적응이 안 된 학생의 경우 더욱 위험하다 하겠다. 부모와 선생님의 철저한 지도와 관심 속에 관리되어야 학생이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다보니 다른 학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학생의 경우 대부분 학습에 흥미를 잃고 도박, 음주 등의 유혹에 빠지는 사례가 없지 않다.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보낼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연수기관인지 등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얻은 후 선택할 것을 권하고 싶다. 날씨가 덥고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학생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또한 한국과 달리 남의 눈과 간섭을 피할 수 있다보니 자칫 학업이 나태해 질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물가가 싸고 주변에 유흥업소가 많다보니 음주, 도박, 마약에 빠질 수 있는 위험 요인이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돈을 많이 가지고 간다든가 자녀가 많은 돈을 송금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는 위험한 일로 신중해야 할 것이다.

학교 영어교육의 문제, 사교육비의 과다, 학부모의 지나친 기대 등으로 최근 어학연수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싶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자녀의 미래를 위해 어학연수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한창 학업에 정진해야할 어린 학생들이 해외에서 자칫 방황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학부모와 선생님의 세심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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