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노믹스>를 일독한 후에 생각한다.
우선 삼성이다.
이건희 회장의 “한 사람의 천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주로 내부의 인재경영에 초점을 둔 테제와 외부의 참여와 협업에 초점을 둔 ‘창조경영’ 테제가 만난다. 내부의 천재와 외부의 천재가 양 날개로 나서는 금상첨화를 희구하는 속뜻과 의지로 짐작되지만 두 테제가 가진 형식논리적 모순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아무튼 주창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두 테제는 아주 현묘(玄妙)한 테제 하나를 자가 증식하는데, 바로 천재 또는 인재들이 웹2.0에서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집단 지성을 이루고 그것이 수십만 명에게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끔찍하고 누군가는 쌍수로 환영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의 핵심 코드를 공개한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카피의 띠지에서 짐작한 바를 배반하지 않고, 책은 첫머리에 캐나다 토론토의 금광회사 골드코프의 오픈 소스 전략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리눅스에서 영감을 얻은 맥이웬 사장의 새로운 발견은 특별한 인재들이 회사 밖에 있다는 것, 그리고 회사의 지적 재산을 공유함으로써 집단적인 천재성의 힘과 능력을 끌어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위키(wiki)'는 ’빠르다‘는 뜻의 하와이 말이라고 한다. 이미 수많은 익명의 대중이 자발적으로 써 올리는 오픈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가 있고, 드디어 종래의 이코노믹스(혹은 웹1.0)와 차별되는 위키노믹스(wikinomics)다.
지은이들은 위키노믹스의 핵심으로 개방성, 동등계층 생산, 공유, 행동의 세계화를 제시한다. 폐쇄되고 계층적인 회사에서 상사와 돈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조직의 위계에서 벗어나 금전적 이득과 상관없이, 그것도 열정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협업이 그 핵심이다. 지은이들은 유비쿼터스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혁신적인 리더의 수첩과 메모장에는 이제 거래처 키맨의 전화번호가 아니라 ‘대규모 협업’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5년 7월 런던 폭탄 테러 때 위키피디아는 언론매체를 능가하는 현장성, 기동성, 정확성, 광역성을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브리태니커가 200년 동안 축적해온 정보를 5년 만에 압도해 버렸다. 이런 가능성과 현실은 사실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이 지면에서는 좀 낯간지럽지만, 이미 네티즌 편집판까지 나아간 <오마이뉴스>를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화는 역사상 유례없이 지식, 권력, 생산성이 분산된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권력이 중심이 이동하고 있고, 새롭게 도전적인 비즈니스 규칙이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협업에 동참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둘째는 스피노자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원고료를 받는 시인이 아니며 출판사에 소속되거나 공식 위촉된 서평가도 아니지만 시를 쓰고 서평을 쓴다. 물론 뽐내고 싶고, 오프라인에서 버젓하게 대접을 받는 꿈도 꾼다. 하지만 금융을 매개로 한 자본화 과정, 증권화(securitization)에 의해 소외된 노동을 하거나 나도 모르게 착취자의 대열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비즈 라이팅(biz-writing)이 창궐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자신의 밥벌이를 따로 하면서 자발적으로 문예 작품이나 여론의 단자들을 생산해 내는 수많은 스피노자들이 위키노믹스의 주역일 것이다.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른바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의 민주주의’다. 한마디로 국어, 영어, 수학 모두 빵점이라도 이웃과 잘 지내는 것(대인지능), 자신의 분수를 알고 반성을 잘 하는 것(자성지능)도 언어지능, 수리지능, 음악지능과 같은 전통적인 능력과 대등하다는 것이다. 블로거는 맞춤법이 엉망인 덧글 한 줄, 남이 만든 음악 하나를 잘 고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생산적인 의사소통을 한다.
셋째는 미안하지만 맑스다.
(미안한 대상은 맑스 이야기만 나오면 미간이 찌푸려지는 분들이다.)
"각 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즉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때는 소를 몰며,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사냥꾼으로도, 어부로도, 목동으로도, 비평가로도 되지 않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독일 이데올로기>, 박재희 옮김)
사실 위키노믹스는 일종의 사회주의적 비전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은이들은 “많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빌 게이츠 편에 서서, 갖가지 변장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신종 ‘사회주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현상을 공격한다”고 쓴다. 지은이들은 그런 공격에 대해 그것은 “공공도로가 사유 기업의 이익을 빼앗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책에 의하면 위키노믹스에는 위험 요소와 위기도 있다. ‘다수는 항상 옳다’는 것이 스탈린이나 폴 포트 같은 세력에 의해 강요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 역시 허위 사실의 날조나 오류, 부정확성, 편집 전쟁, 파괴 행위 등등 문제와 위기를 갖는다.
그러나 지은이들은 위키피디아에는 참여자들의 자율적 오류 수정(<네이처>지의 비교 분석 결과, 위키피디아는 항목당 부정확한 진술이 평균 4개, 브리태니커는 3개였다. 브리태니커는 위키의 오류가 더 심각하다고 반박했지만 위키의 오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교정되는 반면 브리태니커의 오류는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과 자정 능력(외설 콘텐트 삽입 테스트를 했을 때 평균 1.7분 만에 삭제) 등 ‘멍청한 집단주의’ 혹은 ‘바보들의 다수결’에 대한 강력한 항체와 운동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위키노믹스의 개방성은 폐쇄된 모델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무한한 통찰력과 품질 평가 및 검증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안정성과 신뢰성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점에 대해서도 역시 맑스의 몇 마디가 떠오르는데,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서 조성되어야 할 ‘상태’가 아니며, 혹은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라고 부른다.”
넷째는 회사다.
책은 위키노믹스가 실제로 기업의 경제 행동과 조직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위키노믹스를 통해 어떤 변화를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사실 거두절미하고 그런 실용적인 내용의 다이제스트를 원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네 번째로 언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적어도 작심하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소개하면서 ‘공병호식 실용 독서’를 권장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지식생산자들의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긴 했지만 고객 중심의 혁신과 창의성을 차단한 할리우드의 정책, 아이튠과 아이팟 등 호환성을 배제한 애플의 폐쇄적인 아키텍처를 ‘고객 감금’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개방성 및 공유와 아울러 행동의 세계화를 권유한다. GM의 CIO 랠프 지젠다에 의하면 “대부분의 대기업은 다국적 회사지만 세계화된 회사는 아”니며 이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인데, ‘차액을 노리는 거래’로서의 세계화가 아니라 전 세계의 인재집합, ‘전 세계 생산시설’을 통한 생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아고라’라는 지식과 아이디어의 난전을 통해 세계는 R&D 부서가 된다. 그리고 고객은 공동 혁신가가 된다. 레고의 마인드스톰이 출시되었을 때 프로슈머 커뮤니티는 센서, 모터, 제어장치를 분해해서 다시 프로그래밍했다. 레고는 처음에 소송으로 대응하려다가 오픈 소스로 입장을 바꾸어 오히려 제품의 확산과 성공을 기할 수 있었다.
지은이들은 기업이 동등계층 생산으로 얻는 혜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외부 인재 활용
사용자와의 관계 유지
(:오픈 소스 웹 브라우저 모질라 파이어폭스의 MS 시장 잠식을 예로 든다)
보완 서비스 수요 증가
(:위키피디아의 브랜드를 확장한 종이 책의 가능성을 예로 든다)
비용 절감
(:사용자 중심적이며 결함 적은 생산이 가능하다)
경쟁의 중심 변화
협업의 마찰 제거
사회 자본 개발"
그리고 일터의 변화다. ‘이코노믹스’의 일터에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면 위키노믹스의 일터에는 재즈 앙상블이 울려 퍼진다. 구글의 직원들이 개인적으로는 흥미가 있지만 회사의 제품 로드맵과는 거리가 있는 프로젝트를 위해 ‘빈둥거리는’ 20%의 시간에 구글의 신선하고 중요한 발상과 생산이 이루어진다.
"기업의 경영자들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획일적이며 자기만족적이며 안으로만 파고드는 기업은 점점 성공과 멀어진다는 점이다. 어떤 산업에서 경쟁하고 있든지 혹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지 간에, 주로 내부의 능력에 의존하고 비즈니스 웹을 통해 약간의 파트너십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성장과 혁신을 원하는 시장의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지은이들은 위키노믹스의 사회적인 측면도 빼먹지 않는데, 구호 플랫폼, 시민들의 행동 플랫폼, 공공 정보 공개 플랫폼들의 활약, 나아가서는 지방정부와 비영리 부문이 개방 API와 웹 서비스 힘을 활용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게 될 때 어떤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지를 즐겁게 예견한다.
그러나 상업 플랫폼에는 분명 딜레마가 있다. 우리는 태그를 붙이고 북마크를 추가하면서 자발적으로 아웃소싱의 노동력이 되어 플랫폼이 더 거대한 상업 조직이 되도록 도와주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블로그 할 시간 있으면 출간기획서 한 자 더 쓰는 게 낫겠다”는 한 출판사 대표의 말을 듣고 의기소침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이미 수많은 열정적인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책 본문을 입력해 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적으로 전유하려는 데 대한 벌이었는지, 전자책(eBook) 초창기 SK텔레콤의 PDA 서비스에 콘텐트를 제공했던 작가들로부터 몹시 한심한 수준의 저작권료와 관련해 질타를 받은 적도 있다.
아무튼 우리 웹상의 스피노자들에게는 한 푼도 없는가?
책은 군중이 집단 지성을 이룩하고, 군중은 그 집단 지성에 의해 거시적인 지표의 혜택을 되돌려 받는다고 말한다. 그 순환 구조 속에서 군중을 이용만 하려는 플랫폼은 반드시 도태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매우 논쟁적인 것이다.
<위키노믹스>는 웹2.0시대의 전반적인 추세와 그 경제학을 일별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책으로서 이것은 ‘블루오션’과 같이 신선하고 새로운 논의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또 그런 만큼 논쟁적이다. 지은이들은 책에서 위키노믹스의 거의 무한한 생산성과 가능성에 주목하는 동시에 크고 작은 도전과 위기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독자가 협업의 정신과 힘을 통해 적극적으로 간취하고 논의와 논쟁을 풍부화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조금 다른 시각을 소개할 필요도 있다. 인용한 부분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기를 권한다. http://blog.naver.com/davidpaulkim/140032753597
"플랫폼이나 시스템의 독점과 경제적 독점의 연결은 불합리한 자본주의 구조와 회사를 매개체로 독점이 증폭된다.
(…)
플랫폼이나 시스템을 공급하는 회사가 플랫폼의 독점으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되는데 자본주의의 제한 없는 불로소득의 구조적 불합리로 인해 거대한 자본의 불로소득으로 연결되어 실제로 생성하는 가치 이상의 가상가치(의제자본)인 자본을 벌어들이고 벌어들인 자본으로 독점을 심화시키는 독점의 증폭적인 구조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OS의 자본가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OS를 독점적으로 공급해 내며 실제로 생성해낸 가치가 아니라 불합리한 자본주의 구조에 의해 증폭된 가치임을 알 수 있다.
이점은 구글의 래리와 세르게이나 네이버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경제 구조에서는 웹 2.0 시대의 플랫폼이 개념적으로는 네트워크화된 수평적 구조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자본에 의해 더 많은 사람과 자본이 기존의 독점적인 플랫폼 회사로 몰리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다른 회사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 수 있게 되므로 독점을 깨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김대영, <웹 2.0 플랫폼 경제 독점과 국가의 역할> 중에서
이 글의 서두에서 냄새를 풍겼듯이 웹2.0이나 위키노믹스의 문제는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과도 관련해 여러 가지 쟁점을 내재한다. 그런 관점에서의 논의도 무척 유효할 뿐만 아니라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를 생산하는 노동은 얼마든지 생산적 노동일 수 있다. 이 때 생산적 노동은 사용가치에 기여하면서 가치에도 기여하는 노동을 말한다. 정보재는 생산측면과 소비측면에서 보통 상품과는 다른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정보재로 하여금 손쉽게 상품으로 되는 것을 막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
정보재는 가치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정보재의 가격은 가치의 규정을 받는 부분과 독점가격 부분으로 구성되며, 이러한 구성성분들은 상호전환하는 변증법적 운동을 하고 있다. 자유생산재는 버전당 가치를 생각해야 하고, 네트워크재는 차액지대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상품화 경향은 점점 더 사회적 성격을 띠어 가는 생산력을 고도로 발달한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상품화 비용이라는 비생산적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정보혁명을 통하여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 사이의 모순은 점점 진전되고 있다. 흔히 말하는 20대 80의 사회는 이러한 과정의 결과이다.
정보재의 초과이윤에는 특별잉여가치, 지대, 독점가격이라는 세 가지 구성성분이 존재한다. 특별잉여가치와 지대는 모두 사회적 가치와 개별가치의 차이에 의해서 설명되지만, 그 격차의 원천이 자본에 있느냐 자본의 힘에 의해서 변화시킬 수 없는 자연적 사회적 힘에 있느냐에 의해서 구별된다.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윤은 가상공간에서의 도시지대라고 할 수 있다. 독점가격은 특허와 저작권을 중심으로 하는 지적재산권 제도에 의해서 보호된다. 이 세 가지 구성요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성, 소멸, 상호 전환의 과정 중에 있다."
-강남훈, <정보혁명과 노동가치론> 중에서
마지막으로 참여와 해킹이다.
이 책에서 배운 위키노믹스의 정신을 이 책에 되돌려주자. 책의 마지막 11장은 아주 독특한데 “21세기형 전략 가이드를 만드는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하세요”라는 한마디와 'www.wikinomics.com’ 주소가 본문의 전부이다. 책은 각 장이 시작되는 ‘대문’ 뒷면을 비워두고 홀수 페이지에서 본문을 시작하는 레이아웃을 유지했기 때문에 11장 역시 그렇게 처리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11장의 ‘대문’ 뒤에는 난데없이 ‘감사의 글’이 나타난다. 짧지만 가장 핵심적이며 중요한 매니페스토인 11장의 내용이 바로 뒤에 나오는 ‘감사의 글’인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책 말미의 편집은 옥의 티이다.
덧붙이는 글 | 네이버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