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찾았다. 아베 총리는 한국시간 27일 새벽(현지시간 26일 오후) 전용기 편으로 워싱턴에 도착, 1박2일간의 방미 일정에 들어갔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번 방미는 미국의 아시아 최대 동맹국으로서 대체로 따뜻한 환대를 받았던 역대 일본 총리들의 방문과 사뭇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아베 총리 스스로 자초한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 5일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이후, 미국에서는 의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그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워싱턴 도착하자마자 의회부터
아베 총리는 이를 의식한 듯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의회부터 찾아갔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민주-공화 양당의 상·하원 간부들과 만나 "괴로움을 맛본 위안부들에 마음으로부터 동정함과 동시에 대단히 고통스런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으로 가득하다"며 '위안부'들에게 '사죄'했다.
이어 그는 "나의 진의와 발언이 올바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하면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고 통신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20세기는 인권침해가 많았던 세기로 일본도 무관하지 않았다"며 "21세기는 인권침해가 없는, 보다 좋은 세기가 되도록 일본으로서도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라고 책임을 '시대'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덧붙이기도 했다.
방미 직전에도 아베 총리는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여론 무마를 시도했다.
그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들이 상당히 고통스런 심정을 갖게 된 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처음으로 '책임'을 언급했고,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는 "인간으로서 위안부로 끌려간 분들에게 진심으로 동정을 표명한다"면서 거듭 '사죄'했다.
차가운 미국 여론... 언론들, 관련 기고문·광고 실어
그러나 아베 총리의 이같은 행보가 악화된 미국의 여론을 얼마나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가 워싱턴에 도착하는 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예상대로 차가운 여론과 피해자들의 항의였다.
<워싱턴타임스>에는 이날 공화당 소속 헨리 하이드 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과 크리스 스미스 의원의 공동기고문 '위안부에 관한 진실'이 게재됐다. 이들은 "아베 총리가 최근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은 희생자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영구화시켰다"고 준엄하게 질책했다.
<워싱턴포스트>에도 아베 총리의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 발언을 민주국가 지도자의 수치라고 지적한 3월 24일자 이 신문의 사설을 비롯, 그 동안 미국과 일본 언론들의 비판적 논평을 모든 '위안부에 대한 진실'이란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데니스 월더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담당 보좌관은 이날 미일정상회담 사전 브리핑에서 "일본이 전 세계에서 수행하는 역할 확대를 논의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일본과 이웃국가들간 관계를 악화시키는 문제로 언급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로 촉발된 (주변국들과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미교포들 동시 집회... 일본계 교포단체도 가세
한편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아베 총리의 워싱턴 도착 시점에 맞춰 백악관 앞 광장과 뉴욕, 시카고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 인정과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는 군대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한 워싱턴지역 범동포대책위원회(회장 서옥자)와 국제 앰네스티가 위안부 출신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에 이어 침묵시위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아베 총리의 눈 앞에서 증언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면서 "15살 때 밤에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로 만들어졌다, 일본 정부는 반드시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집회에 참가한 100여명의 재미교포들과 함께 백악관 앞 도로를 행진하면서 침묵 시위를 벌인 뒤 해산했다.
일본계 미국 교포들의 연합체인 '일본계 미국인 시민연맹(JACL)'도 2차대전 중 자행된 위안부 만행을 일본 정부가 공식 시인하고 사죄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최근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일본 정부는 2차 대전 중 '위안부'로 알려진 젊은 성노예 여성들에게 일본군이 자행한 강압행위에 대해 분명하고 명확하게 시인,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