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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리스트>겉표지
<킬러리스트>겉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노희준의 <킬러리스트>는 '왜 죽이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의문의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피해자들의 공통점도 보이지 않고 범행의 동기도 불분명하다. 검찰은 범죄심리학자 '서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오빠가 범인인데 그것을 막아달라고 하는 주희를 통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서린이 사건에 관여하게 되면서 <킬러리스트>는 이중구조로 펼쳐진다. 서린이 주희에게 최면을 걸어 현실이라고 믿는 '환상'을 알아내기 때문이다. 그 환상은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다. 항일운동을 했던 빨치산, 김일성을 우상이라고 믿던 남자와 밀정을 잠입했다가 그를 사랑했고 결국에는 그를 증오했던 여인의 이야기가 담긴 환상이다.

이 환상은 연쇄살인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생뚱맞은 이야기다. 주희라는 여인이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서린은 독자를 설득한다. 연쇄살인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가 빨치산 이야기에 담긴 환상에 담겨 있다고, 그것을 알아야만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다. 상식적으로 그렇다. 독자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검사는 믿기 어렵다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서린은 환상에서 죽은 사람들과 현실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을 비교해가면서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죽이는 방법, 이유 등을 찾아낸 것이다. 빨치산과 연쇄살인범의 거리는 그 시간만큼이나 아득하게 멀어 보이지만, 결국엔 하나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놀라운 것을 밝혀낸다. 다음 사건의 타깃을 알아내는 것이다.

이처럼 노희준의 <킬러리스트>는 낯선 방식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왜 죽이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것부터 최면, 환상, 다중인격 등 문학이 터부시하는 것들로 이야기를 꾸려간 것이다. 문학에서 이런 요소들은 '장르소설'적이라고 해서 한 단계 낮게 평가하고 있던 터였다. 작품의 흥미를 이끌기 위해서 만든 인위적인 것들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킬러리스트>는 그것이 섣부른 편견임을 보여주고 있다. 노희준은 <킬러리스트>에서 '왜 죽이는가?'로 시작해서 오만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만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한 것이지만, 남들보다 낫다거나 하는 의식에 취한 이들이다. 자신을 빨치산과 동일시하면서 대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남의 사상을 짓밟고 마침내 그들을 죽이고 마는 사람, 그 사람을 쫓으면서 권력에는 복종하고 낮은 자에게는 한없이 무례한 사람 등을 통해서 오만한 이들을 짚어주고 있다.

이 시선은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반도가 겪었던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만한 이들을 통해서 벌어진 비극은 무엇인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있다.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반대의 말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묵살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광주에서 벌어졌던 그 일은 어떤가? 그 또한 누군가의 오만함으로 벌어졌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IMF당시 일부러 부도를 냈다가 재산을 불리는 비양심적인 사업가들은 어떤가. 착하다고 소문난 사회 인사들이 허점을 노려 비리를 저질렀던 것은? 이것들은 모두 한반도에 두 나라가 생기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오면서 생겼던 비극들이었는데 노희준은 그것들을 장르소설적인 요소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왜 죽이는가?'로 시작해서 이곳까지 오는 과정은 대단히 먼 것이었다. 하지만 장르소설적인 요소들로 구성한 덕분에 그 길은 단걸음에 달릴 수 있다.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불편함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난해함에 피할 수도 있는 것을 노희준은 독특한 방법으로 우회해서 독자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셈이다. 노희준부터가 오만하지 않고, 독자와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연쇄살인범과 빨치산을 통해 폭력으로 일그러진 시대를 그리더니 그 안에서도 구원을 포기치 않았던 노희준의 <킬러리스트>, 한국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시간으로 부족함이 없다.

킬러리스트

노희준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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