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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교습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국인 학생 주백합씨
개인 교습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국인 학생 주백합씨 ⓒ 구은희
"한국 사람들은 왜 '죽겠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해요?"
"네? 무슨 말이에요?"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조금만 아프셔도 '아파 죽겠다'고 그러고, 저희 남편은 조금만 배가 고파도 "배고파 죽겠다', '졸려 죽겠다'고 해요."
"아! 그 '죽겠다'는 말 그대로 정말 죽겠다는 것이 아니고 아주 많이 아프고 많이 배고픈 것을 강조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것 말고도 아주 예쁜 아이를 보면 '예뻐 죽겠다'고 하고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좋아 죽겠다'라고도 해요."

"정말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정말 이상해요. 저희 시어머님께서 영어로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 정도는 아니신데 왜 그러시나?' 했어요."
"한국 사람들한테 '죽음'은 그렇게 먼 개념이 아니에요. 그래서 쉽게 '너 죽을래?', '너 죽었다', '이 죽일 놈' 등의 말을 쉽게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 영어에서처럼 진짜 죽인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런데 미국 법정에서 그런 말들을 영어로 그대로 번역해서 오해를 사고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이제 왜 한국 사람들이 '죽겠다, 죽겠다' 하는지 알 것 같아요."

한국 유학생 신랑을 만나 미국에서 결혼하고 이번에 한국에 나가서 다시 결혼식을 하고 시어머님과 시간을 보내다 온 중국인 학생 백합씨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우리는 어쩌면 생각보다 '죽음'이라는 것을 친근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가 너무 고파도 '배고파 죽겠다'고 하고, 밥을 많이 먹은 후에는 '배불러 죽겠다'고 한다. 조금만 추워도 '추워 죽겠다'고 하고, 조금만 더워도 '더워 죽겠다'고 한다. 조금만 화가 나도 '너 죽을래?', '너 죽었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을 진짜로 죽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뉴욕에 있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죽음에 관한 한국인들의 생각'에 대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방송 진행자가 그 내용을 프로그램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뉴욕에 사는 한인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이 커져서 법정에 가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서로 "너 죽을래?", "넌 죽었다" 등의 말을 'Do you want to die?', 'You would die' 등으로 직접적인 통역을 함에 따라 큰 죄인으로 여겨져서 감옥에 가게 된 사건을 다루기 위함이었다.

필자에게 프로그램 진행자가 듣고 싶었던 것은 외국인 입장에서 이러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한계점과 번역 시에 주의해야 할 점 등이었다. 거기서 말했던 것처럼,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죽었다' '죽겠다' 등의 말은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니며 강조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외국인들에게 말해 주어야 하고, 통역을 할 때도 이러한 점들을 주의해서 해야 한다.

다만, 법정 통역의 경우는 직역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서 좀 힘들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 한국 문화나 언어 습관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백합씨는 이번 수업에서 항상 갖고 있던 '죽겠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따라서 시어머님이나 남편, 그리고 시댁 식구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어 말 한마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말들의 속뜻을 알고 그 밑바탕에 있는 한국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더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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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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