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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북미 핵문제에 관한 미·일 양국의 입장이 상당한 수준의 합의에 도달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는 미·일 양 정상의 발언이 보도되는 속에서, 양국이 대북 입장에서 상당한 의견일치를 이룬 것 같은 이미지가 조성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보도를 보면, 대북 제재와 관련하여 미국이 일본의 의사를 존중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회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일 양국이 핵문제와 관련하여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2·13 합의를 위반할 경우, 6자회담 당사국들이 대북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는 정상회담 발언은 너무나도 당연한 코멘트라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발언은 양국 간 정상회담이 아니더라도 어느 자리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이와 같은 원칙적 발언을 근거로, 미·일이 대북제재와 관련하여 무언가 새로운 강경책을 도출한 것 같은 결론은 논리상의 무리일 것이다.

미국이 과연 일본의 대북 강경책을 수용하였는가 여부를 판단하려면, 6자회담과 소위 '일본인 납치문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일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납치문제에서 진전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일본은 2·13 합의에 따른 대북 에너지 지원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북한이 2·13 합의에 따른 핵 폐기의 초기 단계를 충실히 이행하더라도, 소위 납치문제에서 추가적 진전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일본은 대북 에너지 지원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대북 에너지 지원의 전제조건으로서 납치문제 해결을 추가한 셈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2·13 합의의 조건을 사실상 수정하기 위한 일본측의 시도이기도 하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계좌 동결해제 과정에서 불거진 북-미-중의 묘한 갈등 국면을 활용하여 납치문제를 또다시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의도의 표현인 것이다.

그럼,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와 관련하여 양국 정상이 도달한 합의는 아베 총리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납치문제에 관한 북한의 태도는 물론이고 6자회담의 현 상태가 유감스러우며,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진전을 이루기 위하여 양국 간의 보다 긴밀한 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We agree that the current state of the six-party talks, as well as North Korea’s attitude towards the abduction issue, are regrettable and we’ll work for closer coordination between our two countries to achieve progress)는 것이다. 이 영어 문장은 4월 29일자 파키스탄 영자신문인 <데일리 타임스>의 보도에서 따온 것이다.

ⓒ <데일리 타임스>
그런데 이 표현이 한국 언론에서는 "6자회담은 물론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실망스럽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두 문제의 진전을 이루도록 적극 협력키로 했다"(4월 28일자 <연합뉴스>)로 번역되었다.

물론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납치문제는 물론이고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실망스럽다"는 표현보다는 "6자회담은 물론이고 납치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실망스럽다"는 표현에서 납치문제가 은연중에 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언론의 보도에서는 납치문제가 보다 더 강조되었지만, 영어권 뉴스에서는 6자회담이 보다 더 강조되고 있어 뉘앙스의 차이를 일정 정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납치문제 해결과 대북 에너지 지원을 연계시키려는 아베 총리의 요구를 부시 대통령이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 <데일리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정상회담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납치문제 해결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선결조건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답변을 거부했다(But Bush declined to say if resolving the abducted issue was a precondition for taking North Korea off the US terrorism list when explicitly asked by a reporter).

이는 납치문제와 6자회담을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두 문제를 연계시키자는 아베 총리의 요구에 대한 명확한 거부인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납치문제의 해결을 기대한다는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권문제 차원에서 행한 원칙적 발언일 뿐이다.

한편, 중국측에서도 이 점과 관련하여 미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28일 베이징에서는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이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 및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과 회담을 가졌다.

싱가포르에서 발행된 <연합조보>에 따르면, 우다웨이 부부장은 두 사람에게 “조선이 핵폐기 초기 단계를 이행한 후에 일본도 대북 에너지 지원에서 일정 비율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武大偉提出,在朝鮮實施棄核起步階段措施後,日本也應在下一階段的對朝能源援助中負擔一定比例). 이는 납치문제와 관계없이 북한이 초기 단계를 이행하면 일본도 곧바로 에너지 지원에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 <연합조보>
이 자리에서 야마사키 전 부총재는 “만약 북조선이 일본인 납치문제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게 되면 일본도 협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으며 이것이 일본정부의 입장”(若朝鮮綁架日本人的問題取得切實進展,則日本也願意提供合作,這是日本政府的立場)이라고 했지만, 중국측이 이 발언에 호응했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위와 같이, 미·중 양측은 6자회담과 납치문제를 연계시키려는 일본측의 움직임에 대해 분명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7일의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6자회담과 납치문제를 연계시키자는 일본측의 구체적 요구를 무시한 채로 그저 원칙적인 수준에서 “납치문제 해결을 기대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각론 수준에서는 별다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2·13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대한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는 수준의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합의가 도출된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27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이 의도한 것은, 국제적 공조의 인상을 조성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여 BDA 문제의 조기 해결과 핵폐기의 초기 이행을 관철시키려는 것이었다. 미·일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수준의 공조를 이룬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현재 미국이 북한 핵폐기의 초기 이행을 관철시키기 위해 새로운 수준의 미·일 공조를 이룰 의사는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추상적 수준의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려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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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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