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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이 해체 복원 되어 새로 지어 지고 있다.
수덕여관이 해체 복원 되어 새로 지어 지고 있다. ⓒ 안서순
'초가집' 수덕여관(충남도 지정 기념물 103호)이 해체 복원되어 새롭게 단장된다.

충남도가 4억원의 도비를 들여 지난해 10월부터 해체, 복원 작업에 들어간 이 집은 'ㄷ' 자형으로 50여 평 크기의 원래 있던 초가 건물만 복원되며, 오는 7월 20일께 준공할 예정이다. 현재 기둥과 지붕 등 집의 골격은 모두 세워져 70% 정도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늦어도 7월 말께면 초가지붕을 얻은 '수덕여관'을 다시 드나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옥호도 '수덕여관'을 그대로 쓰기로 했고 간판은 고암 이응노 화백의 친필을 사용키로 했다. 수덕사는 이 집이 복원되면 '템플스테이'와 '고암 기념관'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새로 지어지고 있는 수덕여관. 오는 7월 20일께 준공된다.
새로 지어지고 있는 수덕여관. 오는 7월 20일께 준공된다. ⓒ 안서순
지난해 1월 수덕사는 고암의 손자인 이종진씨로부터 이 집을 사들였다. 수덕사 일주문 옆 개울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건너편에 자리한 수덕여관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지은 지가 100년은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고암이 나혜석을 만나러 드나들면서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암은 이집을 1944년 사들였고, 고암이 1958년 프랑스로 떠나면서 부인 박귀희(2001년 사망)씨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여관으로 운영해 왔다.

이 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양화가인 나혜석과 이응노, 일엽스님간의 아름다운 일화가 간직되어 있고 1960-1980년대까지 중·고등학생들이 수덕사로 수학여행을 가면 단골로 묵던 명소였다.

수덕여관 뒷편 너덕바위에 고암이 새긴 문자추상 암각화
수덕여관 뒷편 너덕바위에 고암이 새긴 문자추상 암각화 ⓒ 안서순
이 집 뒤편 너럭바위에는 고암이 문자를 이용한 '문자추상' 암각화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문자추상 암각화는 고암이 동백림 사건으로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옥고를 치른 다음 몸을 추스르기 위해 두달 남짓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새긴 것으로 '만물의 흥망성쇠'를 표현한 것이라고 전한다.

이 문자 추상 암각화로 수덕여관은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으나 부인 박씨가 세상을 뜨면서 빈집이 되어 4년 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수덕사와 충남도가 이 집의 역사성을 고려해 다시 복원되게 된 것이다.

당초 충남도와 수덕사는 옛 모습을 살리기 위해 옛집의 의 건축자재를 최대한 사용키로 하고 해체했으나 너무 낡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기둥 몇 개와 보를 상징적 의미에서 사용키로 하고 전면 해체 한 후 재건축하고 있다.

수덕사 관계자는 1일 "수덕여관을 옛 모습 그대로 짓고 있다"며 "다만 본채에는 불을 때고 밥을 할 수 있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과 방, 마루, 퇴 등을 그대로 복원하고 객실로 쓰던 아래채는 칸을 막지 않고 고암의 작품 등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공간과 템플스테이로 활용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가려진 채 해체 복원 중인 수덕여관
가려진 채 해체 복원 중인 수덕여관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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