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60년 넘게 잊었던 일본 내 조선인 학교를 다큐영화 "우리학교"를 통해 만나고 있다. 
ⓒ 영화감독
 
자막이 다 올라가도록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영등포 프리머스 영화관의 여러 상영관들 중에서도 아주 작은 공간이었을 그곳에 앉은, 채 15명도 안 되는 그 관객들은 마치 실감나는 연극 한 편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그 <우리학교>와 만났던 것 같습니다.

영화 중간에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나간 한 커플은 어쩌면 '우리학교'라는 제목만 보고, 청춘영화로 여기고 티켓을 샀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가슴 따듯한 자이니치(在日) 조선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은 늦은 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도 내내 온몸을 흥분시켰죠.

70년대 일본재일동포학생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로 기억되는 서승, 서준식 선생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의 또 다른 동생 서경식 선생. 형들이 한국에서 유학생활 중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되어 고통을 당할 때 그도 일본에서 투쟁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서경식 선생의 <난민과 국민사이> 등의 저서를 보면 재일조선인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더군요.

해방 후 일본에서 버림받고 한국에서 무관심 속에 내동댕이쳐진 사람들. 그들의 투쟁. 민단과 총련의 갈등과 분리, 다툼.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통일된 조국으로 가는데 재일조선인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까지. 서경식의 그 날선 보고들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곤 했죠.

그런 상황이었는데 어제 선생님이 권한 그 영화를 바로 찾아가 보면서 한없는 감동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물론 홋카이도 조선학교 학생들과 교원들, 그리고 학부모들, 아니 일본내 수많은 자이니치들이 지금까지 겪고 있는 국가의 차별과 폭력을 견디며 인내하고 이겨내는 슬픔, 조선인과 공존하고 그들의 차별에 기꺼이 반대하며 함께 싸우는 착한(?) 일본인들에 대한 연대의식도 함께.

김명준 감독이 1년간 그 학교에서 생활하며 담아온 필름들을 보면서 단순히 느껴본 것들입니다. 조선인도 교육을 받을 권리를 말할 수 있고 자기 말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그리 큰 욕심은 아니겠죠. 하지만 자이니치들에게는 3대를 이어오는 큰 전쟁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초급학교에서 고급학교까지 12년 동안의 교육이 이뤄지는 그 조선인 학교의 학생들을 보면서 한없이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얼마나 풍요로운 한국땅입니까. 그 풍요로움이 복에 넘쳐 영어천국시대에 살고 복거일 같은 이는 영어공용론을 주장하기도 하죠.

저는 사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임에도 민족이니 뭐니 그런 것들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말을 하고 자기 역사를 공부하고 자기의 생활 가치를 스스로 경험해 가며 사는 세상이 옳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겠지요. 지금 한국 사회에 많이 터전을 잡은 이주노동자나 이민자들에게 한국문화와 교육만을 강요하는 것은 일본정부가 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겠죠.

안타깝게도 우리는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한국계 학생의 총기난사 사건을 접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사실 그 참사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8살에 이민을 가서 미국사회에서 고립되어 살아온 한 청년의 일탈을 보면서 얼마나 안쓰러웠습니다. 생각해보면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한국인 가족들 중 하나겠죠. 사업도 성공하고 학교도 명문대에 진학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인사회도 미국사회도 그들 가족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자신이 두 발로 딛고 선 사회에서 소통할 수 있었다면 그 작은 용기만 있었다면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학기를 시작하며 자기 반의 단합을 위해 함께 구호를 만들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영화 속의 조선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그리고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는 편입생들을 위해 배려하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사회와 우리사회에 만연한 이지메(따돌림) 현상은 그 답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동시키자' 1세대, 2세대 조선학교를 세우고 이끌어온 어른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배용준을 좋아하고 원빈을 좋아하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학생들이지만 북조선을 조국으로 여기며 통일된 한반도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 그것이 우리와 다르다하여 거부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우리말을 지키고 일본사회에서 훌륭한 조선인이 되려는 그들의 의지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을 달려가며 12년간 생활한 이 아름다운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을 보여줍니다. 30년간 그 교단에 서서 지금의 학생들의 부모님들, 현직 교사들까지 가르쳤던 리명화 선생의 안타까운 투병과 임종. 마지막 수업까지 최선을 다하던 선생님의 마음을 조선학교 모든 구성원들은 가슴에 오래도록 간직하겠죠. 제자들을 사회에 보내는 담임선생님은 언제든 힘들 때면 학교를 찾아오라고 합니다. 모교이기에 언제든 찾아오라고 합니다.

영화가 시작될 때 자막으로 떴던 제일 첫 글자 '홋가이도'는 '혹가이도'였습니다. 오타인지 알았습니다만 그것이 북쪽의 국어체계를 따르는 그들로서는 옳은 표기였던 것이죠. 우리는 이렇게 잘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여깁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반성합니다. 죽기 전까지 부끄러운 선생이 되지 않기 위해 한국의 한국어능력시험 1급을 공부하고 자랑스럽게 합격하고는 저 세상으로 떠난 리호미 선생님이나 조선학교 학생들은 '남조선'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가 벗으로서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영화 권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자주 이런 감동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봉후 3만관객을 돌파하고 4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소중한 영화는 주류영화에 밀려 간판을 하나 둘 내리고 있지만 단체관람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 카페 '장편다큐 우리학교'(http://cafe.naver.com/docuourschool)에서 참고하시면 됩니다.


태그:#우리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8년 평화의 도시, 일본 히로시마에 유학을 와서 우물쭈물하다가 일본과 한국을 함께 바라보는 경계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한국이 말라리아 감염지역?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