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통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보잘 것 없는 것일까요
보통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보잘 것 없는 것일까요 ⓒ 김혜원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한화 김승연 사장과 그 아들의 폭력 관련 뉴스를 보다보니 6년 전 우리가 겪은 사건 하나가 떠오릅니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엄마인 저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이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응급실에 누워 있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 눈앞이 아득하고 온몸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만 같았지요.

독서실에 간 아이가 밤 12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아 걱정을 하던 참에 울린 전화벨. 전화 저쪽에서는 아들 친구라는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금 응급실인데요. 빨리 오셔야겠어요. 많이 다쳤거든요."

병원에 가보니 아이의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여기 저기 멍든 자국에 귀는 찢어져 봉합을 해놓은 상태고 팔다리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어 보입니다.

"졸다가 독서실 계단에서 굴렀어요."

계단에서 굴렀다는 아들 친구의 말에 남편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며 그 아이를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갑니다. 계단에서 굴렀다는 아이들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지요.

남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곁에서 지켜 본 친구 말에 의하면 독서실까지 따라온 아이들에게 끌려가 어느 학교 운동장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때린 아이들은 아들의 중학교 동창생들이고 지금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도 모두 알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다음날 남편은 아이에게는 비밀로 한 채 결근계를 내고 가해한 아이들을 찾아 몇 학교를 돌아 아이들을 만났고 폭행 사실에 대한 진술서까지 모두 받아 왔더군요. 가해한 아이들은 음주를 한 상태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우리 아이를 혼내 주자고 결정했고, 독서실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술김에 더욱 심하게 폭행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다니면서 보니 어떤 아이는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는 오히려 고소하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는 등 우리를 당황스럽게도 했답니다.

남편은 그날 저녁 우리 아이를 때린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렀습니다. 병원에 내 아이를 뉘어 놓고 있는 애비의 심정이 오죽할까마는 남편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답니다. ⓒ 김혜원
"내가 너희들이 우리 아들한테 한 것과 똑같이 너희들을 혼내 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아무도 모르게 혼내 줄 수도 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니들도 주먹 좀 쓴다는 녀석들이니 잘 알겠지?"

음주상태에서 집단폭행을 가했고 미리 의논까지 했으니 고소를 하게 되면 법적인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내 자식의 피해와 억울함만을 생각해 남의 자식 앞길을 막을 수는 없기에 그리하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 부모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아이의 폭행 사건은 가해 학생들의 부모님을 만나 해결을 보았습니다. 가해 학생의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훈계하고 가르쳐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도 받고, 비슷한 폭행사건이 또 발생하면 그때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 처벌해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도 받았습니다. 가해한 아이들과 부모님과 한 일종의 약속이지요.

그때 받은 각서는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이미 화해하고 다시 친하게 된 아이들을 보건대 더 이상 보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자식이 맞고 와서 기분 좋은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요? 애들 싸움이 부모 싸움된다는 말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애들처럼 부모들이 나서서 싸우고 나면 아이들의 입장도 부모의 입장도 너무나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앞으로 오랜 시간을 친구와 보내야 할 아이야. 이런 일로 부모가 나서서 보기 흉하게 해결을 해 주게 되면 우리 아이는 영원히 파파보이나 마마보이 소리를 듣게 되는 거야. 그건 남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어. 내가 영원히 내 아들 뒤를 보아 줄 수 없는 평범한 아버지니까 적이든 친구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지."

김승연 회장과 다르다면 남편은 아들의 뒤를 영원히 돌보아 줄 수 없는 그저 평범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친구들 중에 적을 만들지도 말며, 원망이 될 만한 일도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요.

지금도 남편은 아들들에게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아들이니 독불장군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미리 가르쳐 주는 것이지요.

필부의 아들과 재벌 회장의 아들은 이렇게 다릅니다. 필부 아들이 맞고 왔을 때와 재벌회장의 아들이 맞고 왔을 때가 다르듯 말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엄마가 걱정할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과잉 대응에 대한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 당하고 사회에서 눈총 받는 파파보이로 살아가야 할 당신 아들의 입장을 말입니다.

정말 큰 부성애가 있는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아들과 사회에 떳떳한 아버지가 되길 바랍니다. 회장님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거대 기업의 회장으로서 '큰 어른'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도 가지신 분이니 말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