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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인-도나우 운하를 운행하는 주요 화물선.
ⓒ 생태지평 장지영

"한반도 대운하 한다고 했더니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가 국가 대재앙이라고 말했습니다. (중략) 요즘 정치풍토가 이명박하고 붙어야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명박씨, 당신이 지난달 25일 열린 수요정책포럼에서 한 발언입니다. 최근 경부운하를 공격한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그리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일갈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갈수록 높아가는 경부운하를 향한 반대 목소리도 의식했겠지요.

하지만 '왜 나만 갖고 그래?'라면서 투정하듯 받아들일 일은 아닌 듯합니다. 설령 당신의 정적들이 정치적 쇼맨십으로 싸움을 걸었더라도, 비아냥대듯 대꾸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진검승부를 통해 당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도리이고 유권자들에게 정당하게 표를 구하는 행동입니다.

게다가 당신도 경부운하가 '제2 국운융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오지 않았던가요? 당신의 주장처럼 국운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면 다양한 형태의 열린 토론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경부운하, 당신이 발표한 공약 맞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당신의 이런 오만스런 태도와 긴 침묵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적 토론과 정책검증이 없는 것이 오히려 문제입니다.

당신은 지난해 10월 독일 마인-도나우 운하의 힐폴슈타인 갑문에 서서 선글라스를 낀 채 멋진 포즈를 취하면서 경부운하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그 뒤 당신의 지지자들은 청계천을 떠올리면서 제2의 국운융성을 꿈꾸어왔습니다. 청계천을 밀어붙이며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했던 당신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고대하면서….

그 후 6개월이 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입만 쳐다보면서 경부운하의 구체적 상을 떠올리려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기대를 저버리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경부운하는 물류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경부운하는 친환경적이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경북 지역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이다", "이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연구한 학자들이 있다", "청계천을 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등.

어떻습니까. 대규모 SOC 사업을 제안한 당신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공약이 아니라 사실상 구호에 가깝습니다. 대권에 도전하면서 첫 공약으로 발표한 야심찬 프로젝트, 대체 그 알맹이가 무엇인지 아직도 종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물동량을 경부운하가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 왜 운하가 친환경적인지, 수십 년 연구한 학자들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이런 태도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부운하 공약을 이미 폐기처분한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옵니다. 단지 표 계산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을 뿐이라는 말까지…. 이런 상황에서도 흘러간 레코드판이나 돌리고 있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공약을 검증할 수 있는 기한은 7개월 남짓. 결코 긴 시간은 아닙니다. 사실 경부운하 건설에 얼마나 들어갈지 저로서는 감을 잡기 어렵지만,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사업비는 20조원. 건국 이래 최대 사업비가 투자되는 SOC 사업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현실가능한 공약인지, 당신 스스로 구체적인 근거와 데이터, 통계 수치를 제시해야 합니다.

팔짱만 끼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당신의 긴 침묵과 추상적인 선언의 연속. 갑갑했지만, 그렇다고 팔짱만 끼고 당신의 입만 쳐다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태지평연구소 측 인사들과 함께 당신이 칭찬해마지 않았던 마인-도나우 운하가 위치한 독일과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저희가 목격한 운하의 현실을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이명박 발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담아냈습니다. 당신이 내건 경부운하 공약은 '파괴적 건설'이고, 시대에도 뒤떨어졌으며 경제성도 없다는 게 그 골자입니다. 물론 이런 지적들은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그쳤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당신이 내건 경부운하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학자들이 토론회에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연구했다는 그들의 주장이 10여 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운하를 건설해 국운융성을 가져오겠다는 그들이 운하가 무엇인지조차, 운하와 강이 어떻게 다른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제대로 토론에 응하지도 않으면서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 '나하고 붙어야 올라간다'는 식의 어이없는 대응이 황당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당신이 수요정책포럼에서 한 발언이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반박한다는 것도 일정부분 한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오마이뉴스>의 보도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도 할 겸 소개하겠습니다. 당신의 이날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고속도로 뚫어서 환경 파괴했다. 하지만 물길을 따라 운송하면 물류뿐만 아니라 삶의 휴먼 라이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한반도 대운하가 '토목공사다, 옛날 개발시대 발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개발시대 발상에 젖어있기 때문에 자기가 보는 것만 보이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할 때도 IT 기술이 없었으면 할 수 없었다. 단순한 토목기술이 아니라, 청계천을 따라가며 양옆에 청계천 크기보다 더 큰 터널이 있는지 모를 것이다. 비가 오면 자동적으로 열리고 닫히고, 의정부에서 내린 비가 청계천에 도착하는 게 언제쯤이고, 속도가 얼마고, 그게 자동적으로 계산되어 대비되어 수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인터넷 시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대운하는 그보다 더 과학적이어야 한다. 과학이 있고, 문화가 있고, 환경이 있고, 관광이 있고, 물길 따라 사람의 심성이 바뀌는, 휴먼 라이프에 큰 영향을 주는 프로젝트다. 단순히 물류는 도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차량에서 발생하는 CO2는 어디로 가나. 컨테이너 트럭 250대 분을 바지선에 싣고 가면 CO2가 대폭 줄게 될 것이다. 도로 속도도 빨라지고 하는 복합적 문제인데도, 비판하는 사람은 단순한 것을 가지고 비판한다."

단순한 겁니까, 운하를 모르는 것입니까

▲ 47년 만에 복원된 청계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제가 볼 때 단순한 쪽은 오히려 당신입니다. 고속도로를 뚫는 것은 환경파괴이고 뱃길을 내는 것은 환경보존입니까? 이곳에 운하를 건설하면 배가 다닐 수 있는 수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준설을 해야 하고, 물을 가둬야 합니다. 당신이 그토록 칭찬했던 독일의 마인-도나우 운하에서 직접 목격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고인 물은 당연히 썩지 않겠습니까.

'운하의 나라' 독일에서도 운하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독일 정부는 마인-도나우 운하의 주변 지역 토지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운하의 수질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강과 낙동강의 물은 국민 10명 중 8명이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취수장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당신이 그토록 치켜세웠던 학자들, 이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연구했다는 학자들이 최근 토론회에서 내놓는 수질 정화 대책입니다. 그들은 배가 떠다니면 스크루가 계속 물속으로 공기를 주입하기 때문에 물이 정화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팔당 상수원에 수백 척의 배를 띄우면 수질이 좋아질까요? 물속에 공기를 주입하면 정화작용을 한다는 것은 책상머리에서 나올 법한 단순한 생각입니다.

당신은 경부운하가 청계천 사업에 이은 제2차 친환경 프로젝트라고 강변합니다. 청계천을 덮고 있던 아스팔트를 걷어치운 것 자체에 대해서는 환경적이라는 의미부여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10여 년 전에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덮인 청계천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 취재한 뒤 '도심의 복개천을 걷어치워라'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청계천을 걷어낸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면서도 내심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번 청계천에 나가보십시오. 물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모여들고는 있지만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조형물입니다. 썩어가던 하천을 살리기 위해 개발의 흔적을 떼어낸 것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곳은 자연 하천이 아니라 인공하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경부운하 역시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연구했다는 일부 학자들은 경부운하를 생태계가 보존되는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겠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마인 도나우 운하도 총 길이 171㎞ 구간 중 무려 60%인 90㎞ 구간을 인공제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우리는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 수 있다고 우길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추종자들 역시 '우리는 친환경 기술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역시 자연친화적 운하를 건설하기 싫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청계천에 가면 '환경 마인드'를 볼 수 있다고요?

당신은 '물류는 도로로 가야 한다는 것은 단순논리'라고 지적하면서 컨테이너 트럭 250대분을 바지선 한 척에 실어 나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운하의 친환경성'을 주장하면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CO2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단순 논리입니다. 우리나라의 물류 운송로는 도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도도 있고 해운도 있습니다. 철도의 경우 선박보다 CO2 배출량이 적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상황에서 해운을 이용하면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보유한 인프라, 철도와 해운에는 눈감고 유독 트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령 운하를 이용하려면 출발지까지 트럭 등으로 물류를 이동시켜야 하고 도착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선박과 트럭의 단순 수치 비교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입니다.

경부운하의 핵심 골자는 '물류혁명'입니다. 당신은 지난해 10월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부산에서 강화도까지 배가 왕래하는 데 드는 물류비용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분의 1이라는 구체적 수치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했습니다. 그 말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까?

운하망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네덜란드의 경우도 내륙주운 물동량은 전체 물동량의 29%에 불과합니다. 국토의 3분의 1이 바다보다 낮은 '물의 나라', 수백 년에 걸쳐 운하를 건설한 나라의 현주소입니다. 또 '운하의 나라'라고 불리는 독일과 벨기에 역시 내륙주운 물동량은 13%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4년 동안 550㎞의 경부운하를 파면 물류량의 3분의 1을 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합니까. 그렇다면 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혁명적인 물류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시멘트, 유연탄, 컨테이너 등을 운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말 그대로 현실은 모르쇠하고 주장만 합니다.

가령 한 예를 들겠습니다. 경부운하가 시멘트 물동량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고 칩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지가 어디에 있고, 그 물동량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합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우리나라의 전체 시멘트 물동량 통계수치를 보면서 3분의 1이라는 숫자를 꿰맞추면 되는 게 아닙니다.

▲ 이명박 전 서울시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연간 전체 시멘트의 절반 이상(약 2500만톤)을 생산하고 있는 쌍용양회와 동양시멘트의 경우 공장이 삼척·동해 등 해안에 있습니다. 현재 이들의 대부분은 연안운송을 이용해 대전·대구·울산·부산 등의 출하기지로 이동됩니다. 옥계와 신기 등에 공장이 있는 라파즈 한라시멘트의 경우 수도권·삼호·광양 등으로 생산품을 운송합니다."(지난 2월13일자 허환주 기자의 "경부운하? 번거롭고 느릴 텐데...그래도 시멘트를 팔 수 있어 좋아" 제하 기사 발췌)

즉 경부운하는 한반도 남쪽을 '종'으로 가로지르는데, 시멘트 이동 동선은 동서로 가로지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부운하가 시멘트 물동량을 흡수할 것이라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이밖에도 <오마이뉴스>는 그간 기획기사를 통해 당신의 주먹구구식 물동량 분석과 경제성 평가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한 토론회에서 만난 경부운하 찬성론자는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것에 대한 반박자료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 자료를 하루 빨리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경부운하 대해부' 토론회를 꼭 봐주십시오

그리고 여기 한 토론회를 소개합니다. 당신과 경부운하를 찬성하는 학자들이 꼭 봤으면 하는 토론회입니다. 생태지평연구소가 3일 오후 2시부터 배재학술지원센터 세미나실에서 주최하는 '경부운하 대해부 전략토론회'입니다.

이번 토론회에는 ▲한국과 세계의 운하 사례 연구(이민부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학과 교수) ▲경부운하의 경제적 효과 분석(홍종호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경부운하의 물동량 및 교통 분석(박항주 생태지평 연구소 연구원) ▲경부운하의 생태·환경문제 분석(이창석 서울여대 환경생명학부 교수, 김진홍 중앙대 토목공학과 교수, 김하돈 백두대간 연구소장) ▲유럽운하 사례 분석 : 독일·네덜란드 운하 현장조사 결과를 중심으로(박진섭 생태지평 연구소 부소장) 등 5가지 쟁점별로 경부운하 사업의 허와 실을 지적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생중계합니다.

이들이 과연 '당신과 붙어야만 올라가는' 한순간의 인기 때문에 이런 토론회를 여는지, 꼭 봐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날 토론회에는 당신이 비꼬았던 한명숙 전 총리도 현장에 참석해 경청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부운하에 관심이 있는 많은 네티즌들도 이날 인터넷 생중계를 관심 있게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태그:#경부운하, #이명박,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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