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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요정들의 축제
숲 속 요정들의 축제 ⓒ 김대갑


고 2였지 아마. 국어교과서에 실린 한 편의 수필과 한 편의 소설에서 진한 감동을 느끼던 때가. 그 수필과 소설은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에게 아련한 낭만과 그리움을 안겨주었다. 당시 아이들은 '별이 빛나는 밤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팝송의 선율을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소설에 나오는 스테파네트와 양치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떠올리곤 했지.

피천득의 수필 '인연'과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은 10대의 낭만적 감수성을 톡톡히 건드리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두 작품은 서로 장르가 달랐지만 지니고 있는 주제는 엇비슷했다. 두 남녀의 아름다운 인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슬픈 이별….

부산의 창작 발레단에서 공연한 <숲속 발레>는 바로 알퐁스 도데의 <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기획자는 숲을 거닐 때 깊은 숨을 들이쉬면 나무의 상쾌한 향기가 온몸에 채워지는 것처럼,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런 향기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라고 말하면서.

숲속 발레 '별'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총 4장의 본 막으로 공연되었다. 프롤로그에서는 20살 양치기에게 작은 별 하나가 다가오는 과정을 은은하게 그려냈다. 낮의 세계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운 별들의 세계. 양치기의 마음속을 어느새 꽉 채워버린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 프롤로그에서는 별들이 쏟아지는 숲의 세계를 잔잔하게 표현했다.

본 막인 1장의 주제는 '꿈에 어린 별'이었다. 양치기가 꿈에도 그리던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직접 식량을 싣고 오던 날, 양치기는 꿈에 어린 별을 직접 만나고는 황홀경에 빠진다. 2장에서 양치기와 아가씨는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고, 다른 숲 속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 장에서는 어린 발레리나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등장하여 숲 속의 흥겨움을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표현했다. 숲의 한쪽에선 요정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숲 속 친구들의 흥겨운 파티
숲 속 친구들의 흥겨운 파티 ⓒ 김대갑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스테파네트. 그리움과 아쉬움을 안고 스테파네트는 양치기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친 천둥번개. 비가 막 쏟아지고, 숲 속 요정들과 양치기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산 아래로 급히 내려간다. 그러나 잠시 후 비바람을 헤치고 늑대와 그 친구들이 아가씨를 구해 목장으로 데려온다. 이때 무대에는 환호와 탄성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두 명의 남녀가 그랑 파드 되(2인 춤)를 선보인다. 모두들 기뻐서 하나가 되는 춤을 경쾌하면서도 발랄하게 선보인다.

마침내 스테파네트는 양치기의 어깨에 살포시 고개를 기댄다. 추위와 두려움을 떨치고자, 별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숲 속에서 아가씨는 양치기의 땀내 나는 작업복 위에 고개를 떨군다. 그때 들려오는 별들의 은근한 속삭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 하나가 잠시 길을 잃고 양치기의 어깨로 들어오던 그 순간, 숲의 요정들은 순결한 눈을 감은 채 곱게 잠든 별의 주변을 맴돈다.

30년 전만 해도 부산의 어느 곳에서나 은하수를 볼 수 있었고, 엄청나게 많은 수의 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공해와 소음, 아파트 숲에 가린 대도시의 밤하늘은 이제 더 이상 별빛을 보여주지 못한다. 더 이상 별들이 쏟아내는 투명한 빛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득 찬 별을 보여주었던 발레 공연이었다. 처음 가 본 발레공연이었지만, 소년 시절의 풋풋한 감수성을 맛보게 해준 훌륭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발레 공연의 에필로그는 다음과 같았다.

'따스한 포옹으로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우리 그냥 안아 봐요.'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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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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