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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대중화의 역사 <신의 베스트셀러>
성경 대중화의 역사 <신의 베스트셀러> ⓒ 민음in
<신의 베스트셀러>는 기독교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영어성경의 번역자인 윌리엄 틴들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경이 각 나라 민중들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의 역사는 큰 변혁을 맞게 된다. 이른바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커다란 사건은 사실 라틴어에서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루터가,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가, 그리고 영국에서는 윌리엄 틴들이 성경을 거룩한 금기에서 만인의 책으로 대중화한 것이다. 기득권 세력은 이 움직임을 '사탄의 손길'이라고 부르며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이단자를 화형에 처하고자 하는 열정을 모어는 때로 걷잡을 수 없이 강하게 표현했다. "지난 7년 동안 더 많은 사람을 화형에 처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7년간 더 많은 사람을 화형에 처해야 하지 않을까 두렵다." 두렵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모어는 화형 집행을 고대했고, 틴들과 루터를 불태우는 상상을 하며 기뻐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정말로 신에 대한 열심히 있다면, 거룩한 성경을 그토록 상스럽게 조롱하는 자들을 잡아서 신성 모독을 범하는 그 혀에 불에 달군 쇠꼬챙이를 쑤셔 넣어야 할 것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이는 '유토피아'의 저자이자 카톨릭의 수호 성인이라 불리는 토마스 모어에 관한 일화이다.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이들을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던 토마스 모어. 그런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후 카톨릭의 대표적인 수호 성인으로 기록되었으며 지금도 영국에서는 매년 토마스 모어가 죽은 날에 그의 순교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영국에서부터 멀리멀리 떨어진 한국에서도 중고등학교의 수업 시간에 그의 이름은 '유토피아'라는 고전의 저명한 저자로 고고하게 등장하곤 한다. 그에 반해 현대 영어 성경의 모체가 된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 윌리엄 틴들은 현대인들에게 그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로 낯선 존재로 남았다. 저자는 역사의 대표적인 강자와 약자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의 삶을 비교, 대조하면서 헨리 8세 시대의 종교개혁 상황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수많은 이들을 화형시켰던 모어는 카톨릭 역사에 뚜렷하게 이름을 남겼지만 틴들은 이름 대신 영원한 베스트셀러를 남겼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인 영어성경을 남긴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체들은 90퍼센트 이상 그대로 현 영어성경에 반영되었으며 그가 애썼던 대로 성경은 민중들의 품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틴들은 또한 수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던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왕비 이야기의 한복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의 성경번역 작업이 없었다면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 일평생을 같이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토마스 모어와 윌리엄 틴들이라는 두 인물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역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또다른 면면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도 꽤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모어와 틴들이라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 벌이는 불꽃 튀기는 결전이 펼쳐지는 동안 헨리 8세나 앤 볼레인, 엘리자베스같은 유명인물들이 슬그머니 나왔다 사라지는 장면은 흡사 영화 관람 도중 카메오로 출연하는 유명배우를 갑자기 맞닥뜨린 듯한 스타카토를 선물한다. 인류에게 영원한 베스트셀러를 선물해주고 사라진 인물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있는, 길고 진지한 책이다.

신의 베스트셀러 - 거룩한 금기에서 만인의 책으로 성경 대중화의 역사

브라이언 모이너핸 지음, 김영우 옮김, 민음인(2007)


#영어성경#윌리엄 틴들#토마스 모어#브라이언 모이너핸#신의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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