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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이 활기차다. 연록 빛 잎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 모습 같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새로 난 이파리들이 까르륵 까르륵거리며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드는 아이들의 모습 같다.
봄 산에 들면 눈이 부시다. 괜히 흥얼거려지고, 후미진 개울가에서 자맥질하는 어린 새처럼 어깨가 들썩거려진다. 며칠 전에 개나리 진달래가 피는가 싶더니, 몇 백 년 묵은 벚나무에서 피워내는 수천 송이의 벚꽃들이 황홀하다. 그 아래 서있으면 향기에 취해 저절로 혼절할 듯싶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는 철쭉들의 잔치가 펼쳐져 있다. 아파트 담을 따라 곱게 내려가는 주홍빛, 하얀빛 철쭉들. 이 봄, 딱 한 번 저 꽃들을 피우기 위해 철쭉나무는 지난 겨울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까. 잠시 지난겨울 이 거리를 생각해 본다.
약수터 오르는 오솔길, 잎새마다 얹힌 햇살 속에 봄이 터지고 있다. 약수터에 이르니 아직 시간이 이른지 사람들이 없다. 배낭에서 페트(pet) 병을 꺼내자 날씬한 처녀의 허리처럼 잘록하다. 쪼르륵 쪼르륵 흐르는 물소리만이 도시 소리에 찌든 귀를 씻어준다.
뚜껑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후휴 하고 페트병이 숨을 쉰다. 참 이상하다. 분명히 뚜껑을 꽉 막아두었는데…. 공기는 스스로 증발하는가 보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거대한 돔(dome)으로 되어 있는데, 이 초록별에 없어지는 산소는 누가 만들어 낼까.
그리고 다시 고개 들어 산을 보니 연초록 잎들이 더욱 사랑스럽고 고맙다. 저들이 깨끗한 공기를 만들어 우리가 이렇게 가슴을 열고 마음껏 숨을 들어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슬픈 생각이 밀려온다.
오늘 이 땅에서 베어진 나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파헤쳐지는 자연은 또 얼마나 될까? 집에서 약수터까지 오는 이 짧은 거리도 아침 출근차량으로 숨쉬기가 곤란한데.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위하는 우리 인간들은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동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최소한 자기들이 사는 터전은 황폐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또 아무 대책 없이, 얼마나 많은 차들이 매연을 뿜어낼 것이며, 공해 유발, 환경파괴가 이루어 질 것인가. 다시 빈 병을 본다. 공기를 흡입한 페트병이 배를 불린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 고맙다고 자연에 인사하는 것 같다.
이 약수터 밑으로도 터널을 뚫는다고 한다. 기초 공사를 거의 다 했으니까, 아마 며칠 후면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수백 년 동안 여기에서 물을 먹어온 사람들은, 후손들은, 다시는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게 된다. 산새들도…, 생태계도 급격하게 파괴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오직 직선뿐이다. 과정을 무시한 결과를 따지는 성급한 '직선의 문화'뿐이 없다. 기성세대들의 '빨리, 바로 즉시' 정신이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국가마저 병들게 한다. 자연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오직 파괴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나라.
독일은 매년 여의도의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산림이 생겨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매년 수백 배의 산림이 없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이 인근에서 사패산 터널로 시끄럽다가 결국은 뚫리더니, 이 부용산 밑으로도 터널을 뚫은 공사가 야금야금 진행 중이다.
이 곳 의정부는 환경단체 하나도 없는지 조용하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정부와 담당 공무원들에게 있겠지만, 그것을 못 본척하는 시민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다.
약수물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켜 본다.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더욱 청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