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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밖의 역사>겉표지
<궁궐 밖의 역사>겉표지 ⓒ 열린터
성대중이라는 인물이 있다. 18세기 조선 영정조시대에 벼슬을 했던 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다. 서얼 출신이지만 탕평책 덕분에 벼슬을 했다는 것과 정조 때 유행하던 패관소품 문체를 비판하며 정조에게 올린 글로 '순정한 문장'이라는 극찬을 받았다는 것 정도다.

그런 이가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았다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매한 백성을 교화시키기 위한 말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 성대중의 <청성잡기>에는 당시 기득권 세력이나 주류 패러다임의 입장에서 보면 발칙해서 벌을 내릴지도 모르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청성잡기>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리한 것일까? 그것의 면모를 다룬 <궁궐 밖의 역사>에 따르면 고금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장단 득실을 헤아려 쓴 '췌언',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얽힌 일화와 격언 등을 통해 사람의 심성을 깨우치는 '성언', 사물의 이치를 분석하여 명쾌하게 일러주는 '질언'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것을 보면 볼수록 깜짝 놀라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이 왕조나 사대부가 아니라 기생, 거지, 열녀, 도둑 등을 포함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청성잡기>에서 주목한 것은 실록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 이야기나 여자들의 이야기 등이었다. 당시 저잣거리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떠돌았는가? 대신 매 맞아주는 사람, 부잣집을 터는 도둑, 뇌물로 목소리 좋다고 뽑힌 무수리, 곤경에 빠진 주인의 상투를 잡고 다짐을 받아내는 하인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생생하다.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이야기들이 더해져 당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알려주는 지도가 되고 있다.

그런데 지도는 지도로만 끝나지 않는다. 날카로움이 있다. 특히 그것은 이덕무가 '더한 글'에서 날카로워진다. <청성잡기>에 실린 글 중에는 이덕무가 짧게 논평을 더한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성대중이 천진난만한 도둑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이덕무는 "시와 예를 배우고서 남을 해치는 자에 비하면 도리어 천진난만하다 하겠다"라는 글을 덧붙여 썼다. 그 문장으로 글의 매력은 180도 변한다. 백성들 이야기가 순식간에 양반을 비판하는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은광산에 빌붙어 사는 무뢰배'의 이야기는 어떨까? 성대중은 어처구니없는 무뢰배와 아내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금방 교만해지는 어리석은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놓은 것인데 여기에 이덕무는 "내가 살펴보건대 대체로 의복과 두건을 잘 차리고 점잖은 걸음걸이에 말을 유창하게 하는 양반들이 어쩌면 광산 입구를 기웃거리는 무뢰배들의 변신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여놓았다. 이것은 효과 만점인 반전이라 할 만하다.

정조로부터 '순정한 문장'이라는 칭찬을 들었을 정도면 성대중은 상당히 보수적인 학자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글에 이덕무의 흔적이 있는 것은 왜일까? 성대중이라는 학자의 독특함 때문이다. 그는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박제가 등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신진사류들과 교류가 깊었다. 이덕무와는 벗이었기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문체 논쟁과 달리 성대중이 열린 마음을 지녀서 그랬던 것일까? 후세에서 그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내기는 어려울 것이고 또한 그럴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성대중의 <청성잡기> 덕분에 책 제목처럼 궁궐 밖의 역사를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 사회에 임금보다 더 무섭다고 불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북벌을 꿈꿨던 효종은 무슨 이유로 임경업의 처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됐을까? 온돌이 유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순신이 백성들에게 자문을 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희귀한 자료를 원전으로 삼은 만큼 조선시대를 독특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궁궐 밖의 역사>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궁궐 밖의 역사 - 규장각 교리 성대중이 쓴

성대중 지음, 박소동 엮음, 열린터(2007)


#성대중#이덕무#청성잡기#궁궐밖의 역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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