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도 왜 그런지 몰라. 허벅지까지 절단한 왼쪽 다리에서 조금씩 뼈가 자라서 아픈가봐, 그래서 약을 먹고 있는데 내가 못된 년이지. 사고 당하고 낳은 아들이 군대를 갔다 왔어.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의족 한 번도 못했어. 절단한 다리가 너무 짧아서 의족을 낄 수가 없대. 억지로 끼고 하루만 다니면 의족을 고정하는 쇠가 사타구니를 벌겋게 만들어 놓으니까 그냥 한 쪽 다리로 다녀. 그런 아들인데 내가 짐만 되는 거야."(눈물을 글썽인다)
"큰 아들은 일찍 죽고 둘째 아들은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고 딸 셋은 시집가고 없잖아요. 할머니 갈 데도 없는데 왜 그러세요. 막내아들 사고 났을 때 할머니가 보상비도 받지 말라고 했다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하세요."
"사고 나던 날, 친구들이 자꾸 불러대서 나갔지.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공동작업 중이었는데 경운기가 전복이 되었어. 운전한 친구가 잘못 했지. 그 친구에게 보상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미 다리를 절단한 상태인데 보상금 조금 받는다고 다리가 다시 정상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내가 그만두자고 했지. 그런 아들인데 내가 왜 그렇게 아들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연신 눈물을 훔친다. 내 눈가에도 전염되고 만다.)
"아침마다 비 들고 와서 방청소 하고, 가끔 똥 싸면 그 옷을 빨아야 하는데, 그런 아들이 어디 있어요. 또 세상에 둘도 없는 며느리잖아요. 멀쩡한 남편도 버리고 도망가는 세상인데 다리 하나 없는 남편과 함께 살아보겠다고 트럭에 생선 싣고 동네방네 돌아다니잖아요. 지금 입고 있는 한복도 며느리가 아침에 손으로 빨아서 다리미로 말려서 입혀준 옷 아니에요. 그런 아들이 어디 있고, 그런 천사 같은 며느리가 지금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불쌍하고 안쓰러운 아들이고 고마운 며느리인데 내가 왜 그런지 몰라. 하루 빨리 하늘로 불러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거야."
아들 이야기에 자꾸 눈물을 훔치는 김씨 할머니와 그 말을 듣는 박씨 할머니 두 눈에도 눈물이 가득하다. 눈물을 감추려고 천장을 보지만 이내 들키고 만다. 연민의 마음은 이렇듯 이심전심인가 보다.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발걸음마다 할머니의 천사 같은 아들이 떠올랐다. 자라나는 뼈의 고통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한다는데, 최첨단 의학이라면 자라는 뼈의 고통은 물론, 뼈에 보조기구를 박아서 의족을 할 수 있을 텐데. 트럭으로 생선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것도 대형마트에 밀려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이라 의족은 꿈도 꾸지 못할 텐데. 어떻게 도울 수 없을까.
20억~30억 아파트 운운하는데, 단 몇 백 만원이 없어서 의족도 할 수 없는 사회, 가난하지만 천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유럽처럼 세금을 거둬서 해 주는 사회는 정말 꿈일까….
화창한 봄날에 고개가 자꾸 땅으로만 떨어졌다. 그 길가에서 장애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손수레에 무언가 잔뜩 실려 있었다.
"할머니 무엇을 그리 무겁게 실고 가세요?"
"아, 식품 도매상에 가서 가끔 허드렛일을 하는데, 유통기한 며칠 남지 않았거나 며칠 지난 오뎅이나 맛살 같은 것이에요. 끓여서 먹으면 아무 탈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려고요."
횡단보도를 건너 손수레가 할머니와 함께 덜거덕 덜거덕 걸어간다. 할머니를 뒤따르는 손수레가 점점 작아지더니 휘어진 골목길로 사라진다. 아파트 한 평만 국민 복지를 위해 세금으로 낸다면 손수레는 사라지고, 한쪽 다리가 없어 안타까운 우리의 시선도 사라질 것이다. 50평에서 한 평이 작은 49평, 70평에서 한 평이 작은 69평. 그 한 평이 얼마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