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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즈덤하우스
최근 각종 언론 매체에 빠짐없이 소개되고 있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자크 아탈리의 <미래의 물결>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개괄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담고 있어 국내에서도 비중 있게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흐름보다는, 이 책의 저자가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식의 티저(teaser 살 마음이 내키게 하는 광고)성 기사들이 많아 다소 아쉽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가 한국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지 정말 궁금했는데 직접 책을 읽어보니 언론의 보도가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자크 아탈리가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한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맥락, 즉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의 미래와 연결지어 이해할 일이지 한국만 따로 떼어내서 특별하게 언급하는 것은 다소 자의적이고 과장된 반응 같다.

실제로 이 책에서 한국은 경쟁국인 중국, 인도, 일본 등에 비해 특별히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더러 마지막에 수록된 '한국의 가까운 미래'(한국어판에만 특별히 수록되어 있음)도 8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한국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자크 아탈리의 깊은 통찰력과 날카로운 분석력 때문이다.

한국, 2025년 11대 강국에 포함... 그러나

그는 지한파답게 한국이 갖고 있는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이 미래의 주역이 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 둘째 사회적 불평등 완화, 셋째 개방적인 이민정책 등이다.

이중에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 사회적 불평등 완화, 교육개혁, 남북한과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해서 한반도를 물류 거점으로 만드는 방안 등은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구해 온 정책들과 방향을 같이 한다. 그래서 더욱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에 의하면 앞으로 한국이 이런 점들을 보완해 나갈 경우 2025년 무렵 11대 강국 '일레븐'에 포함될 거라고 한다. '일레븐'에 포함된 국가는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 그리고 한국이다. 자크 아탈리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일레븐'은 미국이 국가 채무 증가와 달러화 가치 하락, 타 국가의 성장에 따른 힘의 평준화 등으로 맹주로서의 지위를 잃어가는 틈을 타 국제사회의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할 거라고 한다.

자크 아탈리가 일레븐으로 분류한 나라들을 살펴보면 주로 미래 잠재력이 큰 나라들이다.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비롯해서 지역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될 지역 강자들(인도네시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그리고 여기에 실질적으로 '아시아의 미래'를 선도하게 될 극동 3국(한국, 중국, 일본)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자크 아탈리의 말이 100% 맞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어쩌면 11대 강국에서 20대 강국으로 확대될 지도 모르고, 11대 강국 중에서 일부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다른 나라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탈리가 예견한 커다란 흐름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열 번째 거점은 어디에?

이 책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인류가 상업적 체제(자본주의)를 이루며 사는 동안 그 중심지 역할을 하는 '거점'은 계속해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자크 아탈리에 따르면 지금까지 모두 아홉 번의 거점 이동이 있었는데 머지않아 열 번째 거점으로 이동할 차례가 다가올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아홉 개의 거점 도시는 어디일까? 순서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브루게, 베네치아, 앤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이제 머지않은 미래에 열 번째 거점도시가 그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한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은 로스앤젤레스가 거점도시 역할을 계속할 거라고 한다.

현재 가장 유력한 열 번째 거점도시 후보지로는 중국과 인도의 상업 도시들이 꼽히고 있다. 한때는 일본이 가장 강력한 후보였지만 일본 특유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결정적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실패 요인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열 번째 거점이 되는 데 실패한 이유는 첫째 전 세계 엘리트를 자국내로 끌어오는 데 실패했고, 둘째 개인주의를 진작하는 데 실패했고, 셋째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 역시 일본과 똑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 역시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가 백인에 대해선 나름대로 호의적이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것을 외국인에 대한 개방적 태도, 열린 마음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외국인 문제의 본질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외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장애인, 여성, 어린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미숙한 편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한국 사회가 그에 대한 학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KBS '미녀들의 수다' '러브 인 아시아' 등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상호 공존하기 위한 학습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외국인 유입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 마음가짐의 문제로만 접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늘날 양극화 문제는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의 이주민들이 끊임없이 부자 나라들로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부자 나라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인종 차별이 생기고 충돌이 생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 사회의 지층 아래선 외국인 유입으로 인한 불만에서 비롯된 극우 민족주의가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경우 외국인에 대한 개방적 태도, 열린 마음은 더 요원해진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정부, 국민, 사회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해외 인재들을 국내에 끌어올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외국인 유입 문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상호 공존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열 번째 거점에 도전할 기회조차 박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무엇에 달렸는가?

마지막으로 열 번째 거점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조건들이 더 있는데 그중에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서비스'(금융, 행정업무 등)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거점'은 예외 없이 서비스(아홉 번째 거점의 경우, 금융과 행정업무)를 산업화함으로써 세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미래학자들의 예언과는 달리, 미래에는 서비스 위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 산업화 도시, 즉 서비스 위주의 도시와는 오히려 정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들, 다시 말해서 서비스를 산업화하는 도시들이 등장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지금 한국은 중국, 인도, 일본 등과 열 번째 거점이 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우리가 반드시 거점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거점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미래가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거점 도시는 예외 없이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도전해야 할 것이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고, 우리는 이미 미래의 물결 속에 있으므로.

덧붙이는 글 | 자크 아탈리, <미래의 물결>, 위즈덤하우스, 2007, 양영란 옮김, 388쪽.
17,000원.


미래의 물결 - 자크 아탈리

, 위즈덤하우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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