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년 넘게 <동아일보>를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유신독재 정권 아래에서 광고 없이 국민들의 성원으로 <동아일보>가 만들어지던 것을 보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저는 태생적으로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삶에 연륜이 쌓이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권력과 각을 세우는 신문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볼 때도 있었습니다만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난 토요일(5일)에는 <동아일보>로 직접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습니다만, 토요일이라 담당자가 없으니 월요일에 전화를 걸어달라는 이야기만 듣고 전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TV에서는 매일 같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좀 더 심층적인 내용을 알고 싶어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신문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보고 있는 <동아일보>에는 1면이나 2면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그것도 아주 작게 경찰의 공식 발표 이외에는 실리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회의 공기라고 자처하는 <동아일보>의 요즈음 행태입니다. 대형 광고주가 최고 권력인 청와대보다 무서운 모양입니다. 권력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던 이들이 왜 김 회장과 한화 앞에서는 그렇게 작아지는 것입니까? '남의 말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속담을 생각하면서, 시간이 지나가서 묻혀 버리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
권력 앞에서 당당하던 <동아>, 자본 앞에선 왜 작아지나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고 문화주의를 제창한다'는 회사의 사시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재벌이 조폭과 공생관계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 과연 민족의 표현기관이고 문화주의를 제창하는 <동아일보>가 할 짓입니까?
누구 때문에 그 흔한 심층기사, 대담기사 한 번 내지 못합니까? 수사 중인 사건이라 그런다고요? 언제는 수사 중인 사건이 아니라서 그렇게 신문 지면을 할애해가면서 연일 폭로성 기사를 터뜨렸습니까?
이 기회에 바로잡고 갑시다. 솔직한 이야기로 사회 어느 구석에서든 조폭들과 연계하지 않고는 입신양명하기 어려운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 아닙니까? 조폭들을 알고 있는 것이 명함이 되는 나라, 이런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입니까?
재계 서열 10위권에 있는 분들이라 조폭 중에서도 전국구 조폭과 연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를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바라고 싶지도 않습니다. 돈이 있으면 양지의 권력도 얻고 음지의 권력도 함께 쥐고 흔드는 나라, 이런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는 아니지 않습니까?
조폭이, 자라나는 미래의 동량지재인 청소년이 선호하는 직업이 된 지 오래입니다. 조폭이 되면 이렇게 대기업 회장님과 자연스럽게 공생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데 뭐하려고 밤새워 공부하겠습니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의 구악을 털어버리고 갑시다. 그러려면 대형신문들, 힘 좀 내주세요. 한화한테 무슨 약점이라도 잡혀 유독 이 사건에서 침묵하고 있습니까?
<동아일보>, 창피하지 않습니까? 절대 권력 앞에서도 당당한 <동아일보>가 왜 이렇게 작아집니까?
다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